9월에 읽고 싶은 몇 권의 책


아이의 발견으 참  좋은 책이다. 아이에 대한 긍정적 측명을 보여준다. 오은영 박사의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는 아내가 구입해서 벌써 읽었다. 읽은 소감은 최고.. 나도 읽을 참이다.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는 부모로서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읽을 참이다. 장정일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은 그의 책에 대한 기준이 뭔지 궁금해서 읽고 싶다. 훕스봄의 <혁명의 시대>를 자본의 시대를 읽었으니 그 다음 책으로 읽을 참이다. 만들어진 전통 또한 전통에 대한 그의 탁월한 통찰이 느껴지는 책이다.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마음의 여유를 위해서.. 


벌써 9월이다. 계획한 대로 열권 이상을 읽어야 할 텐테.. 잘 될지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8월에도 14권을 읽었으니 이틀에 한 권은 읽은 셈이다. 잘 되리라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직까지 알라딘만 모바일에서 서재글쓰기가 가능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잠을 설친다.
피곤하기는 말로다 못하는데 진작 잠을 자려면 잠이 통안온다. 힘들어.
하루하루 살아내가 쉽지 않다. 어제는 E씨와 대화하면서 에너지가 방전되고 말았다. 피하고 싶은 사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죽음을 부르는 독서


전에 <책이 되어버린 사람>이란 책을 읽었다. 특이하면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찜찜한게 하나 있었다. 왜 죽어야 하지? 왜 책이 되었다가 다시 사람이 되면서 시체로 버려져야 하지? 난 그게 못마땅했다. 책은 살리는 것이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그 책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독서클럽> 역시 스릴러처럼 독서클럽에 나오는 사람을 죽인다. 이게 뭐란 말인가? 난 이런 책을 좋게 평가하고 싶지 않다. 

















근데 묘하게 이런 책은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저주받은 책이라 거들떠 보고 싶지 않는데도 궁금해서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생각을 하니 저주 받은 책에 대한 이야기기 심심치 않게 소설 속에 등장한다. 장미의 이름 역시 저주 받은 책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웃음' 이었지만. <저주 받은 책들의 상인>에서도 책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지만 죽음을 코앞에 두고 도피하는 행각의 연속이다. 책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흑사병처럼...














<바람의 그림자>에서도 역시 비슷한 상황이 일어난다. 책을 죽이려면 작가를 죽여라. '책들의 잊혀진 묘지'라는 장소를 설정하여 책들의 무덤을 만들어 놓는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한단 말인가. 전쟁으로 인해 박물관이 불타고, 도서관이 불타는 모습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책을 불태우는 인간들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분서갱유 사건이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불타는 사건, 히틀러의 박물관 파괴 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겁함이다. 


한 때 우리나라에도 금서가 많았다.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읽으면 안되는 책들이다. 닳고 닳아 더이상 글자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돌려 읽었다. 금서지정 역시 책들의 무덤일까? 책을 읽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리라? 


금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대 속에서 금서가 가지는 혁명성이 생각 난다. 성경이 그랬고, 걸리버 여행기가 그랬고. 심지어 돈키호테조차 금서 였다고 하니 믿기지가 않는다. 그럼, 허클베리핀의 모험은? 역시 금서였다. 지금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들은 죽음까지는 아니지만 고통이란 대가를 지불해야하는 책들이었다. 


독서에도 대가를 지불하다니. 이처럼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이 어디있단 말인가? 하여튼 오늘 책들의 반란을 깊이 생각해볼 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막을 건너다.


인생은 종종 사막으로 비유 된다. 전에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을 읽고 많은 공감을 했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한 시간 속에서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걸어야 한다. 사막을 건너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사막은 고독과 자기와의 싸움이다. <당신에게는 사막이 필요하다>를 읽어보라. 사막은 본성이고 진심이다. <사막을 건너야 사른이 온다>는 자기를 알지 못하는 것이 시간낭비라 말한다. 먼저 자기를 찾아야 한다. 사막을 건너야 비로소 인생을 살아낸다. <사막에 숲이 있다>를 읽으면 사막의 고독 속에서 풍요로운 숲을 보는 꿈의 이야기를 듣는다. 난 가끔 저자의 엉뚱한 발상에 안타까우면서도 끝까지 지구를 지키려는 그녀의 몸부림이 아름답게 보인다.
















김경수의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외 없는 인생이다>를 읽고 진짜 사막은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지금 여기는 아닌지 생각해 본다. 그래 가끔은 미친척하고 사막으로 뛰어 가야 한다. 죽음과 한계의 경계를 맞닥뜨려야 삶의 진정한 풍요를 알지 않을까? <사막의 꽃>, 아름 다운 인생을 본다. 
















삭막하기 그지 없는 사막에서, 아무 것도 없는 사막에서 나를 보고 인생을 발견하고 삶을 통찰하다니. 기막힌 일이 아닌가. 함께 할 수 있는 동행만 있다면 사막도 건널만한 재미도 있는 것이다. 사막이 답이다. 사막을 건너자. 그리고 사랑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