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부르는 독서


전에 <책이 되어버린 사람>이란 책을 읽었다. 특이하면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찜찜한게 하나 있었다. 왜 죽어야 하지? 왜 책이 되었다가 다시 사람이 되면서 시체로 버려져야 하지? 난 그게 못마땅했다. 책은 살리는 것이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그 책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독서클럽> 역시 스릴러처럼 독서클럽에 나오는 사람을 죽인다. 이게 뭐란 말인가? 난 이런 책을 좋게 평가하고 싶지 않다. 

















근데 묘하게 이런 책은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저주받은 책이라 거들떠 보고 싶지 않는데도 궁금해서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생각을 하니 저주 받은 책에 대한 이야기기 심심치 않게 소설 속에 등장한다. 장미의 이름 역시 저주 받은 책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웃음' 이었지만. <저주 받은 책들의 상인>에서도 책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지만 죽음을 코앞에 두고 도피하는 행각의 연속이다. 책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흑사병처럼...














<바람의 그림자>에서도 역시 비슷한 상황이 일어난다. 책을 죽이려면 작가를 죽여라. '책들의 잊혀진 묘지'라는 장소를 설정하여 책들의 무덤을 만들어 놓는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한단 말인가. 전쟁으로 인해 박물관이 불타고, 도서관이 불타는 모습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책을 불태우는 인간들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분서갱유 사건이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불타는 사건, 히틀러의 박물관 파괴 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겁함이다. 


한 때 우리나라에도 금서가 많았다.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읽으면 안되는 책들이다. 닳고 닳아 더이상 글자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돌려 읽었다. 금서지정 역시 책들의 무덤일까? 책을 읽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리라? 


금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대 속에서 금서가 가지는 혁명성이 생각 난다. 성경이 그랬고, 걸리버 여행기가 그랬고. 심지어 돈키호테조차 금서 였다고 하니 믿기지가 않는다. 그럼, 허클베리핀의 모험은? 역시 금서였다. 지금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들은 죽음까지는 아니지만 고통이란 대가를 지불해야하는 책들이었다. 


독서에도 대가를 지불하다니. 이처럼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이 어디있단 말인가? 하여튼 오늘 책들의 반란을 깊이 생각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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