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데미트 (Paul Hindemith, 1895-1963)는 20세기 작곡가로 드물게 음악가와 청중의 소통, 음악가의 사회적 책임등을 강조한 작곡가였다. 대부분의 현대음악가들이 자신의 음악을 청중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른바 '초월'하고 청중을 신경쓰는 것은 저급한 상술이라고 비난까지해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했던데 반해 힌데미트는, 작곡가도 청중도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고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 연주회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기때문에 연주회라는 공간은 다소 불편하다. 자기 주장만 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이 불편함을 최대한 이용해서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이 옳다고 힌데미트는 믿었다. 내겐 이 말이 참 감동이고 설득력있다.

젊었을때 잠깐은 전위적인 곡을 써서 독일 아방가르드 선두에 있었으나, 드뷔시의 죽음 (1918)을 계기로 그의 음악적 입장이 바뀌었다. 한 음악가의 죽음, 그가 남긴 아름다움, 음악의 숭고함 등을 느끼고는 음악이 새로움을 보다는 고귀한 예술을 추구해야한다며 옛재료를 사용하는걸 꺼리지 않고 완성도 높고 깊이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애썼다.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 큰 목적이었던 20세기 전반 조류에 그는 휩쓸리지 않았다.

독일인이였지만 오페라 화가 마티스의 반나치 색채 등을 이유로 나치의 미움을 받아 1940년 미국으로 망명한다. 쇤베르크는 1933년, 스트라빈스키는 1939년에 각각 미국으로 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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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다...
무슨무슨 박사, 어느대생, 누구 엄마, 어디 사원, 어느집 딸.... 이름은 많은데
그 이름들을 다 빼고나면, 자기 이름까지 빼고나서 맨 나중에 남는것,
그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다.

불가에서는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열반에 드는 상태가 있다고 들었다.
기독교에서는 부활을 말하는데 영과 몸이 영원히 사는 것, 하지만
이 세상의 몸으로 사는 것은 아니라고 되어있다.
내가 생각해도 부활했는데 이력서 들고 다니듯 세상에서 한 일들을
새 몸과 영에 붙이고 다닐 것같지는 않다. 심지어는 내 이름도 무의미할 것같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란것도 사람의 언어로 하는 세상일이라
딱히 부활해서도 알라딘에서 책 사 읽으며 뭘 하고 있을 것같지도 않다.

결국
모든 것을 다 빼고 마지막 남는 내 영혼이라는 것은
내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내가 보는 하나님은 사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
내게 마지막 남는 나 또한 사랑 그것뿐일 것같다.

열반이란 무, 공의 상태라고 하던데.... 그게 아마 자아없이 세상에 흡수되는 상태가 아닌지.
사랑이란것도 아마 내가 너같고 네가 나같아 신과 모든 영혼들이
완벽한 일치와 조화에 있는 상태일 것이다.
이 땅에서 이름 모으기에 열중해 사랑을 없애버린 사람이 있다면
부활했을때 영혼을 찾아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랑이 목말라서 이 공상 저 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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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학교에서 공부 못하는 애들뿐만아니라
사회에서의 능력이 희미한 사람들도 꼴찌다.
경제가 어려워서 요즘 난리다. 얼굴색이라도 다른 사람을 대통령 시켜보면 뭔가 다를까할 정도로 다들 힘들다.
 잡 인터뷰 하기로 했던 학교들이 포지션이 없어졌다며 인터뷰를 취소한 것이 몇 번이라고 한다.
이럴때마다 일터에서 짤려나가는 사람들.

그래서 다들 그런다.
어떤 상황에서도 버티려면 실력밖에 없다. 최고가 되어야한다. 최고를 짜를리는 없지 않은가.
나도 그런 소리 들으며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나는 내가 그 안전한 상위그룹에 속하는 길로 가고 있다고
막연히 생각하면서 살았고, 거기다 한 술 더떠서 내가 그 꼴찌들을 도와주고 그들을 위해서 살리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요즘, 학교에서 사실상 짤리고나서 드는 생각....
이 시스템에서는 언제나 일등과 꼴지가 존재할텐데
꼴찌가 존재하고 필요와 상황에따라 그들은 대열에 붙었다 떨어졌다하고
그들의 삶이 바람따라 흔들리는 것이 당연한가?
그런 경쟁시스템을 인정하면서 다들 일등이 되길 꿈꾸면서
그 와중에 일등이 꼴등을 돕겠다고 자선을 베푸는게 아름다운가?
경제, 사회적으로 얼마나 효율적이고 불가피한일인지 난 모르겠지만
꼴찌가 되어보지 않았다면 모를 막연한 불의같은게 일어난다.
꼴찌도 사람이고 게으르고 무능해도 사람인데...

게다가...
성실과 열심이라는 미덕을 쫓는 뒤에는 일등이 되고싶다는 꿈이 들어있다.
일등이 도덕적으로까지 미화되고 내 존엄성은 내 능력만큼이다.
꼴찌는 무엇으로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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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이가 놀러왔다.
그 애가 움직일때마다 냄새가 난다.
나이가 들면서 코가 더 예민해지는걸까? 아래층에서 노는 아이 냄새를 맡고 있다니...
어린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면서 냄새에 유난히 더 신경을 썼다.
외국 아이, 괜히 지저분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데 낯선 냄새까지 나면 한 번 더 안아줄 것도 멀리하지 않을까해서.
세탁소를 하는 분 말씀이 옷만 들어봐도 어느 나라 사람 옷인지 안단다.
마늘같은 양념은 몸에 들어가 피부로 냄새를 풍긴다고 하고.
우리가 매일 먹는 것, 거기서 나는 냄새, 거기에 젖은 옷, 몸.
매일 하는 짓, 생각, 거기에 젖은 표정, 눈빛....
근원을 바꿔야 결과가 바뀔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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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 화장실에는 재작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며칠전에 얻어다 놓고 몇 줄씩 읽고있다. 전경린이란 이름을 보고 전혜린이랑 무슨 관계가 있나 싶어서 찾아보니 전혀 무관. 대신 전혜린 (1934-65)의 동생 전채린(1939-), 전채린의 남편이자 요절한 천재 감독 하길종(1941-79), 그 동생 하명중(1947-), 전채린과 하길종의 아들 신경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한 특이한 집안의 가계를 꿰었다. 
전혜린은 아직도 무슨 주술처럼 내머릿속에서 떠나지않는다.
처음알고 눈물 흘린지 20년이 다되어가는데 그동안 단 하루도 내 원대로 그 원대로
순간을 지속하며 미친듯이 살아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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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9-03-2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혜린, 그리운 이름이군요.
고등학교때 처음 만난 이름이니 벌써 30년쯤 흘렀습니다.
저도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을 받았었는데, 지금은 그 분의 무엇에 내가 그렇게 감동받았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흔히들 말하지요. 우리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 밖에는 없다고.
지금 딛고 선 이자리에 백프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참 어려운 일입니다.

paintsilence 2009-03-22 18:22   좋아요 0 | URL
어려워서 동경하는건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