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가토 - 2012년 제45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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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다>로 처음 발견한 권여선 작가의 신작 소식에 가슴이 설렜다. 그녀의 글은 아주 우아하고 또 깔끔했기 때문에 한권 한권 읽어갈수록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되었다. 방금 검색을 해보니 <푸르른 틈새>라는 2007년작 장편소설이 있었구나. 내가 놓친 건 이 책뿐이지 싶다.

 

<레가토>는 내가 작가의 첫 장편이라고 생각하며 읽은 책이다. 단편을 쓰는 것과 장편을 쓰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막연히 단편을 쓰던 사람이 장편을 쓰려면 플롯, 글의 호흡 등등을 많이 고민해야겠구나 했을 뿐이다. 단편에서 느낀 작가의 장점들이 많이 드러났는데 미묘한 심리를 포착하는 것이나 은근한 위트 같은 것이다. 반면 이야기가 끝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특히 마지막은 급하게 마무리 되는 듯한 느낌도 좀 받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떠나서, 이 책은 간만에 나를 울게 만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별로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니기에 책을 보고 우는 일이 참 흔치 않은데 광주사태를 그리는 대목에선 눈물이 났다. 주인공들이 지나온 세월이 참 거짓말처럼 비극적이라, 그냥 픽션이었다면 차라리 과장되었다고 생각할 부분들도 실제 일어난 일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평소 담담하게 이야기를 해온 작가도 이 주제를 다루려니 담담하기가 어려웠나 싶다. 386세대가 본다면 크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나는 운동권 말기? 세대로서 얼핏 들어온 운동권의 과거사를 조금 엿본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느낀 격한 분노와 정의에 대한 희구는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모든 것을 다 알아버렸다는 시니컬함으로 대표되는 지금의 젊은 세대를 보며 그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그들의 자녀가 다시 우리의 다음 세대가 되고 또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 필연적인 순환. 이런게 레가토이고 세월이겠지.

 

옮겨 적고 싶은 구절, 재미있는 구절들이 많았는데 표시를 해두지 않아 아쉽다. 인상깊은 작가 후기를 만나기도 힘든 법인데 멋진 구절이 있어 그것만 적어둬야지.

 

 

시간의 겹침은 음의 겹침과 달라, 붉은 베일과 푸른 베일이 바람에 휘날려 찰나의 보랏빛을 만드는 마법처럼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소녀의 보드라운 발뒤꿈치를 깨무는 뱀 아가리의 본능처럼 잔혹하기도 할 것이다.

 

기적은 단순하다. 소설가란 글을 한 글자씩 한 문장씩 한 문단씩 한 챕터씩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벽돌공이라는,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사실을 내가 뒤늦게 늦깎이로 겪었다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소설이 우등상은 못 받아도 개근상은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제껏 나는 개근상의 가치를 사유할 기회를 박탈당해왔다. 그건 내가 어려서부터 우등상을 너무 많이 받아왔고 그 경험에서 우등상이 별로 대단한 것이 못된다는 결론을 얻기보다 최고의 우등상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탓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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