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봄도 없이 여름이 되려 하고 있다. 봄, 말만 들어도 얼마나 설레는 말인지! 봄이 온다고 기뻐하던 때가 바로 며칠전인데 이젠 반팔을 입은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계절이 되고 말았다. 물론 여름도 좋아하니까. 짧은 옷소매 가벼운 면의 질감, 차가운 아메리카노. 가벼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하는 나에겐 그야말로 호시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런 계절,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런 황금기엔 어딘가를 가야 하는 것 아닐까? 맑은 하늘을 집 베란다 창으로만 구경하는 건 고문이자 스스로에게 짓는 죄가 아닐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야무지게 주말마다 돌아다니고 있다. 오늘처럼 월요일이 되면 지독하게 피곤하지만, 뭐 어때. 난 추억 뜯어먹고 견딜 수 있다고 중얼거리며 사진첩을 복습한다.

 

주말의 짧은 시간을 쫓기듯 놀러 다니는 나와는 차원이 다른 여행가들이 많다. 요즘은 여행기가 워낙 인기라 각 지역마다 여행 에세이스트가 없는 곳이 없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정말 부러운 직업인데..ㅠ 자유롭게 여행하고 그 기록을 남기고, 그게 또 다음 여행을 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해 주는 완벽한 사이클.

 

장기여행에 대한 갈증은 나날이 커져만 간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선 더욱, 갈 수 없다는 현실이 더 나를 갈망하게 만든다. 금기는 욕망을 키우는 최고의 촉매제라고 할 수 있으니, 시간은 많았지만 돈이 없었던 학생시절보다 더욱 여행을 그리게 된다. 그리고 여행 에세이를 들춰보는 일이 늘었는데(전에는 별로 보지 않았다) 일종의 대리만족인가 싶다.

 

<인생의 낮잠>은 사실 여행 에세이인지도 모르고 펼쳐든 책이다. 대충 수필이겠거니 하고 집어들었는데 책날개에 저자 사진은 '방랑자'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겼다. 아 이책도 리뷰 쓰고 싶었는데 게으름을 이기지 못했으니. 하고 싶은 말은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는 거다. 웃는 개에 대한 에피소드가 좋았고 그 외 발리에 얽힌 이야기들은 다 좋았다. 최근 발리 얘기를 많이 보게 되네, 아 발리 가고 싶다.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에서는 '코스모스 그림자 뒤에는 늘 누군가 숨어 있다'가 마음에 들어왔다. 소외된 사람들의 교감, 용기를 잃은 사람에게 찾아온 엽서,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코스모스 밭. 사람은 살아있어도 늘 똑같은 농도로 살아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떤 시절에는 뜨거울 정도로 살아가다가 어떤 때는 시체나 다름없이 살아가기도 하고. 내 인생에서 가장 살아있는 순간은 언제였는지 생각해 본다. 그게 현재가 되어야 할텐데.

 

후지와라 신야의 책을 읽다보면 인생의 굽이굽이를 다 지나온 사람의 혜안이 보인다. 체념 같기도 하고 수용 같기도 한 그 무엇. 직장에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내 친구는 양희은씨가 라디오 상담에서 자주 하는 말 "그래, 그럴 수 있어"를 되뇌이며 참는다고 한다. 이 여행기들은 "그래, 그럴 수 있어"의 다양한 변주이자 약하고 아름다운 사람과 사물들에 대한 관찰기다. 몇 편은 에세이라기보단 소설에 가깝다는 느낌도 있지만.

 

여행이 사람의 틀을 크게 만들어주는 것일까? 나는 아직 넓어질 부분이 꽝꽝 남아있는데.

아. 여행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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