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개정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은희경 작가를 떠올리면 고교시절이 생각난다. 당시에 한국 여성작가들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신경숙, 공지영, 은희경 작가의 책을 전작하다시피 읽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은희경 작가의 책을 가장 좋아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새의 선물>을 이번에 읽은 건 내가 생각해도 의외이긴 하다. '~해야 한다'의 마음으론 절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신조가 있기 때문에 평소 게으른 독자이긴 하지만, 거기다 '책의 인연설'까지 믿고 있으니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는 책도 읽지 않은 결과를 낳았겠지. 나는 책과 사람 간에도 인연과 때가 있다고 생각해서 아무리 좋다고 추천을 받아도 내가 스스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절대 보지 않는다. 그리고 이유없이 끌리지 않는 책들도 절대 보지 않는다. 그저 게으른 사람의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태도가 책읽기를 재밌는 취미로 유지시키는 큰 도움이 되긴 한다.

어쨌거나 그런 이유들로 이 책을 이번에야 읽게 되었다. <책에 빠진 TV>(맞는지 모르겠다. 하성란작가가 하던 프로인데)에서 작가들이 나와서 본인이 좋아하는 구절을 읽어주는 부분이 있는데 그곳에서 은희경 작가가 이 책의 이 부분을 읽는 것을 보고 한번 보고 싶어진 것이다.

건조한 성격으로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다혈질인지도 모른다. 고통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나는 무궁화호를 보고 있다.

90년대가 되었어도 세상은 내가 열두 살이었던 60년대와 똑같이 흘러간다.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무궁화호를 보고 있다.

나는 쥐를 보고 있다. 수챗구멍과 변소 구덩이를 오가는 쥐의 태연하고 번들번들한 작은 눈, 긴 꼬리의 유영, 그리고 그 심각하지도 비루하지도 않은 회색의 일과들을. 

 

이 구절의 책의 맨 마지막 부분인데 은희경 작가의 소설을 관통하는 삶에 대한 시선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문득 생각하면 인생은 자신을 돌아봐줄리 없는 누군가를 열심히 짝사랑하는 것과 닮아있다. 상대방이 무심코 한 행동에도 우리는 큰 의미를 부여하며 저 몸짓이 나에 대한 호의는 아닌지 또는 강한 거절의 의미는 아닌지 고민한다. 실제로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영원히 알지 못한채. 이 소설의 화자, 진희는 이러한 생의 진실을 열두 살에 깨달은 조숙한 아이다. 자신이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태생이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생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냉정한 눈으로 관찰하고 고통을 피하기 위해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다. 자신을 극복하려는 진희의 노력은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에 루카스/크라우스 형제의 그것과 닮았다. 고통을 똑바로 직시할 것. 그리고 아무렇지 않을 때까지 그것을 들여다볼 것. 그건 꽤나 가혹한 훈련이다.

어느 날 나는 지나간 일기장에서 '내가 믿을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긴 목록을 발견했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는다 말인가. 이 세상 모든 것은 다면체로서 언제나 흘러가고 또 변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사람의 삶 속에 불변의 의미가 있다고 믿을 것이며 또 그 믿음을 당연하고도 어이없게 배반당함으로써 스스로 상처를 입을 것인가. 무엇인가를 믿지 않기로 마음먹으며 그 일기를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삶을 꽤 심각한 것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나는 그 목록을 다 지워버렸다.

이제 성숙한 나는 삶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 어린애의 책무인 '성숙하는 일'을 이미 끝마쳐버렸으므로 할 일이 없어진 나는 내게 남아 있는 어린애로서의 삶이 지루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기대할 것도 실망할 것도 없는 삶이라는 게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나 역시 '인생은 느끼는 자에겐 비극이지만 생각하는 자에겐 희극이다'라는 경구를 믿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 수록 고통을 피하는 일이 동시에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기회도 차단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드는 게 나쁘진 않은 것이, 이런 깨달음을 얻을 때다. 상처받기를 두려워하고 남이 버리기 전에 먼저 떠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던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여리고 나약한 존재라는 걸 받아 들이는 것. 그래서 인생이 나를 돌아봐주지 않아도 바보같이 계속 기대하고 또 실망하기도 하면서 삶에 색깔을 더해가는 게 진짜로 사는 법 아닌가 싶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진희보다는 조금 더 강해져 있다고 할 수 있겠지. 삶이 우연의 연속이고 어쩌면 아무 의미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공포를 받아들이면서도 냉소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니까.

 

그리고 좋았던 구절들.

 

내 고통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알기로 세상을 서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상처받게 마련이다. 영원하고 유일한 사랑 따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서정성 자체가 고통에 대한 면역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이란 언제 변할지 모르며 특히 젊은이를 변심하게 만드는 일은 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 그러므로 상대가 나를 사랑할 때 내가 행복해진다면 그것은 상대의 사랑을 잃을 때 내가 불행해진다는 것과 같은 뜻임을 깨닫고 그 사랑이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한편 그것이 사라질 때의 상실감에 대비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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