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접한 것은 역시 <상실의 시대>였다. 고등학교 때 그 책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풍문으로 듣기엔 야하다?고 해서 직접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에 이미 무라카미 류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야해봤자지'라고 생각했다.
하시시가 난무하는 류에 비하면 하루키는 모범생 같은 느낌이니까. 어쨌거나 첫느낌은 썩 좋지 않았다. 책을 이해했던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A랑 B랑 자고 다시 A랑 C랑 자고 또 자고 자고 자고...' 이런 무한 반복처럼 느껴져서 보다 덮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결론은 누가 누구랑 잤다는 거야? 뭐 이런 느낌.

첫 단추를 잘못 꿰어서일까. 그 후 하루키 추종자를 여럿 보면서도 좀처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수년 후엔가 우연히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보게 되었고, 뭐 여러가지로 악평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에게는 좋았다. 그래서 다시금 <상실의 시대>를 읽어보았고 그간의 오해?를 조금은 풀게 되었다. 최근에 <1Q84>도 꽤 성실히 보았는데 재밌었고 주변에 소개도 좀 했더랬다. 고작 3작품을 보고 하루키에 대해 말하는 건 어이없는 일이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인연이었다. 

 

 

 

 

 

 

 



나이가 조금씩 먹으면서 세상 모든일이 인연이다. 뭐 이런 주의에 빠져들게 되었는데 신비주의까지는 아닐지라도 종종 맞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직업만 해도 어떤가. 내가 10을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을 누군가는 1의 노력으로 얻곤 한다. 사람은 더 그렇다. 노랫말 같아도 '사랑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있지'. 나에게는 책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려해도 읽지 못한 책들이 있다. 영원히 서문을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책도 있고, 아무 생각없이 집어들었는데 그 자리에서 다 보는 경우도 있다. 수년째 사두고 먼지만 듬뿍 씌우다가 어느 날 저녁 갑자기 꺼내 보게 되는 책도 있다. 인연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다시, 하루키 얘기를 하자면 하루키의 소설은 나와 인연이 없었다. 앞으론 또 모르지.  

 그래도 수필만은 정말 좋아한다. 하루키의 수필로 국내에 번역된 책은 많지 않은 걸로 안다. 여러가지 읽어봤더니 겹치는 부분이 나오는 걸로 봐선 같은 내용을 다르게 엮어서 출판하는 경우가 많은가보다.     
  

  

 

 

 

 

 

 

 

기억이 가물하긴 하지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아마 <세라복을 입은 연필>, <랑겔한스섬의 오후> 이런 책들의 글을 묶어서 새로 낸 책이지 싶다. 하루키의 수필은 볼 때마다 이유없는 청량감이 있다. 일단 글길이도 아주 짧고 내용도 단순하기 이를데 없다. 두부를 좋아한다거나 야구를 관람한 것 뭐 이런 식이다. 그런데 그 느낌이 좋아서 계속 보게된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인데도 스트레스 해소 겸 기분전환용으로 다시 집어들게 되는데는 다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인생관은 단순하게, 남눈 신경쓰지 않고, 제대로 사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점은 나와도 정말 유사한데, 다만 나는 마라톤을 하거나 하루에 몇 시간씩 책상에 앉아 꾸준히 글을 써내려가는 집념은 없다. 혼자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을 인생의 원칙으로 삼아 혼자 즐겁게 놀 수 있어야 남과도 즐겁게 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하루키처럼 사는 남자가 있으면 내가 대시해 볼텐데 뭐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하면서 키득거리며 보는 재미가 있다.  

 

   
 

'인생이란 그런거야'나,  '그게 어쨌다는 거냐'하는 말은 인생에 있어(특히 중년 이후의 인생에 있어) 두 개의 중대한 '키워드'다. 체험적으로 말해서 이 두개의 말만 머릿속에 잘 아로새겨두면 대개의 인생 국면은 큰 탈 없이 무난히 넘길 수 있다. 

가령 기를 쓰고 역의 플랫폼 계단을 뛰어올라갔는데 전동차 문이 싹 닫혀버리거나 하면 몹시 속상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인생이란 으레 그런거야'라고 생각해버리면 된다. 곧 전동차의 문이란 대체로 눈앞에서 닫혀버리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그렇게 납득해버리면 되는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별로 속상할 것도 없다. 세상이 그런 원칙에 따라 그런 방향으로 흘러갈 뿐이란 얘기다. 

 하지만 그 전통차에 못탄 덕분에 약속한 시간에 늦는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그게 어쨌다는 거냐'하고 자기 자신을 향해 타이르면 된다. 시간 따위란 인간이 편의상 구분해둔 것에 불과하다. 약속 시간에서 한 20분가량 늦어봤자 그런 건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확장 경쟁이나 신의 죽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이 '그게 어쨌다는 거냐'의 정신이다. 

다만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면 마음 편하게 살 수는 있지만 인간적으로는 우선 향상이 없다.

 
   

이런 식의 유머가 좋은 거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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