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겨울 MT를 가기로 했던 날, 나는 그 며칠 전부터 지독한 감기에 시달리고 있었으므로 미리 불참의사를 밝혔다. 집요한 동기들은 우리 기수 전원참석! 의 깃발을 휘날리며 나에게 괜찮으면 오라오라 종용했고 아파서 그런거지 정말 가고 싶기도 했던 터라 나는 사실 매우 갈등했다. 그러다 결국, 약을 먹고 조금 괜찮아진 틈을 타 그래그래 일단 가자, 마음 먹은 나는 후발대에 합류하기 위해 급하게 청량리역으로 내달았다. 빠른 걸음으로 약속시간에 겨우 맞춰 도착한 내 열띤 붉은 얼굴을 보고 사람들은 뭐야, 너 아프다더니 꾀병 아니냐? 하는 농담으로 내가 온 것을 대대적으로 반겨 주었지만 바로 다음 순간, 모두 나의 목소리에 경악했다. 간만의 외출에 찬 기운을 몰아쳐 들이킨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적절히 쉰 목소리를 유지하던 나의 목은 갑자기 종이 찢어 지는 소리를 내더니 곧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급격하게 잦아들었다. 그리고 '괜찮아요' 라고 말하려던 나는 그저 입모양만 벙긋벙긋 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넌 절대 가면 안된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진작 말하지 그랬느냐, 미안하다 등등의 말을 쏟아내며 입술만 달싹달싹 움직이는 나의 등을 돌려세워 택시를 잡아 주었다.
어떤 모임에 꾸준히 나오고 활동 잘 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서 일주일 간 연락도 안 되고 코빼기도 볼 수 없게 되면 사람들은 당연히 걱정하면서 이것이 어디 가서 박혀있나 찾을 것이다. 며칠 후 털레털레 나타난 그 사람이 '실은 좀 아팠어요' 라고 말하면 아아, 그랬구나, 많이 아팠니, 이제는 괜찮니 위로와 격려가 쏟아진다. 하지만 그것은 초창기 잠적에만 해당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도 가끔씩 혹은 자주 그러한 두문불출한 반복되면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러려니 한다. 그래서 지어진 나의 별명은 '잠적쟁이' 뭐 그런 거 였다.
사람들은 나의 외모만 보고 나의 건강을 판단한다. 나는 둥글둥글하게 생겼고 살도 쪘다. 결정적으로 혈색이 죽여주게 좋다. 그러니 어디가 찢어져서 피가 철철 난다거나 하는 직접적인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한 나는 항상 튼실해 보인다. 그래서 겉모양에 절대 부합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나의 속병들은 어느 순간 스스로 양치기 소년이 된 듯한 꺼끌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러니 나는 아프면 안 되었다. 영원히 아픈 사람이 되기 싫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 오른쪽 다리가 아팠다. 그런 와중에 서재에서 다른 분이 쓰신 글을 보고 혼자서 매우 흥분하여, 아무래도 내 고관절이 수상하다, 내가 그 이름도 어려운 질병(대퇴골두의 무혈성괴사)에 덜컥 걸린 것이냐, 병원에 가야겠지, 수술도 해야하나 어쩌나 어쩌나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쇼를 했는데 결국 어제 나를 찾아온 것은 종합감기 선물세트였다. 온 몸이 오실오실 거리면서 골이 띵하고 맑은 콧물이 펑펑 샘솟고 알알한 콧속을 중심으로 전신을 향해 스멀스멀 퍼져가는 뿌옇게 어지러운 기분.
하지만 기침 감기로만 발전하지 않는다면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뭐 나는, 원래 괜찮은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