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알라딘 서재를 알게 된 후 이곳저곳 잘 꾸며진 서재들을 방문하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서로 참 따뜻하게 엮여져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알라딘에 처음 블로그가 생겼을 때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려니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며 가끔 일기 비슷한 글이나 끄적이던 나에게, 그 모습은 나의 무지함에 일격을 가하는 동시에 문득 부러움으로 다가왔고 그 순간적인 기분에 와락 고무된 나는 그 날로 은밀히 물밑작업에 착수, 비록 남들처럼 멋지거나 훌륭한 서재는 아니더라도 페이퍼도 쓰고 리뷰도 많이 올려서, 유일하게 활동하던 인터넷 동호회 하나를 맘 속에 잠궈둔 이 후 냅다 방구석에 처박았던, 내 관계맺기의 가능성을 다시 넓혀보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계획이 생각으로만 그쳤다는데 있다.
일단 서재의 핵심인 리뷰를 쓰자면 우선 당연히 책을 읽어야 하는데, 몇 달 째 정서산만이 극을 달리면서 책을 한 권 읽는데 (젠장)몇 주일씩 걸려버리니 도저히 건덕지가 없었다. 그래서 예전에 읽은 책이라도 다시 쓱 보고 리뷰를 쓰리라 하며 책꽂이에서 한 권 씩 꺼내보며 고르는데, (젠장)내용이 기억나는 게 없어 그것조차 새로 다시 읽어야 할 판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페이퍼에 집착하리라 마음을 가다듬고 모니터를 노려보며 손가락 운동을 열심히 해댔지만, 소소한 일상을 멋진 글로 승화시키는 능력은 원래 없으니 기대도 안했지만, 글 하나 쓰는데도 계속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막 이틀씩 걸려버리고 하니 슬슬 만사가 귀찮기 시작했고, 결국 책도 안 읽히고 글도 안 써지니 혼자 허부적대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잠이나 자게 되고, 한 순간이나마 넘쳤던 희망과 불굴의 의지는 반복된 좌절과 번뇌 속에 그렇게 조금씩 마모되었다.
내가 다른 서재를 내 서재보다 더 자주 들랑거리며 글들을 읽어대는 동안 난 그저 유령처럼 둥실 날아다니며 일부러 발자국은 안 남겼다. 아니 못 남겼다고 하는 편이 더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사소하게나마 인사를 남기는 것은 그 서재 주인에게 제 서재에 한번 오셔도 좋지요, 하고 말을 건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코멘트를 달고 싶다가도 왠지, 밥이나 반찬은 커녕 물한모금도 없는 집에 손님을 부르는 것 같은 마음이 자꾸 들어 그저 나중에 한 상 차리면, 하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으로 계속 미루기만 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결정적인 문제는, 나의 산만함이나 게으름, 소심함 같은 단점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 자체이다. 관계맺기에 서툴고 그 서툼에 지친 상태, 마음이 닫힌 상태에서는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을진데, 나는 그저 벽 뒤에 숨어서 가끔씩 벽 위로 손이나 내밀어서 나 여기 있다네 같은 짓거리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늘상 그랬듯 포기가 빠른 나는, 처음의 의지 같은 것은 싹 다 잊어버리고 어차피 혼자만의 공간이라는 둥, 내성적 성격의 한 경지인 내게 천지사방으로 열려 통하는 블로그라는건 원래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둥 하며 다시 게으름 속에 스윽 침잠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문득, 가끔씩 이 곳에 오는 사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대체 언제까지 숨어있고 싶은 건지 조용히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뻔뻔한 자식이 대답을 안한다. 그래도, 아마 오래는 아닐 것이라 믿으면서, 가상으로나 실상으로나 내가 누군가에게든 미안한 일은 하지 않는 모습이 되기를 계속 다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