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7월
품절


헝가리 사람들과 영국 사람들이 국적을 내세우는 것은 교만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특히 인생의 가혹한 순간에 적어도 어떤 특별한 것의 일부라는 감정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런던에서 한동안 같은 집에 살았던 친구 케빈이 어느 날 밤 삶에 지쳐서 배터시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을 만류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케빈이 뛰어내리지 말라고 그 남자를 설득한 논거는 <당신은 영국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런 비슷한 상황에서 독일인에게 <당신은 독일인이라는 것을......>이라고 말하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뛰어내릴 것이다. 무엇보다도 영국 사람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불쾌한 상황에서도 고개를 똑바로 쳐들고 걷는 <자존심>일지 모른다.-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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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멈춰 선다. 한 번도 멈춰 선 적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바쁜 사람들이 여기저기 멈춰 서 있다. 생전 처음 멈춰 서보는 것처럼 스스로 어색해하면서도 행복하게 멈춰 선다. 나는 멈춰 섬을 멈추고 한 발 물러나 내남직없이 바쁜, 어쩌면 바쁜 척이라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멈춰 섰다 움직였다 하는 걸 바라본다. 나의 멈춰 섰던 시간은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순간도 그리움이 되면 길어진다.

 내가 박완서에 새삼 반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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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훔치다 - 김수남이 만난 한국의 예인들
김수남 지음 / 디새집(열림원) / 2004년 2월
품절


혼이로다 넋이로다 무주공산 삼원혼량
혼이라도 다녀가요 넋이라도 다녀가요
사람은 죽어 귀신이요 귀신은 죽어 품은 혼령
품은 혼령은 부모님의 영혼
오시는 것을 누가 보며 가시는 길을 누가 알랴
꿈결 같은 세상살이 헌신같이 저버리고
사람 죽어 범이 되고 범은 죽어 꽃이 되네

...

저승길이 머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길이로구나
북망산천이 얼마나 멀길래 한 번 가면 다시는 안 오느냐
사람이 죽어지면 천금지금 이불포단 삼아
황토석침을 돋우베고 홍디를 울고 삼아
잠대 송잎을 쓸어 밟아 밝은 샛별 등불 삼아
두견새로 벗을 삼아 다방솔로 정자 삼고......-105-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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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 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별에 닿을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수단이라면 콜레라, 담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수단 일지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고흐를 주제로 한 마음에 안드는 책 중에서 단 하나 마음에 꼭 든 대목.

고흐는 참 찬물 한 모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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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한번 보자. 매우 괴로운 상황에 처한 한 남자가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조지 왕조 시대에 지은 시청의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보라고 준 잡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남자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다가 18세기 무렵 누군가가 세심하게 공을 들여 꽃줄이 서로 얽히는 복잡하면서도 조화로운 무늬로 그 천장을 디자인하고, 흰색, 광택이 나는 파란색, 노란색을 섞어 칠을 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천장은 이 남자가 자신에게서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특질들을 담고 있다. 천장은 묘하게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하며, 섬세하면서도 분명하고, 형식적이면서도 허세가 없다. 이 작품을 위임한 사람들도 그 못지않게 실용적인 사람들이었을 텐데, 이 천장에는 감상을 덜어낸 심오한 달콤함이 있다. 아이의 얼굴을 부수며 퍼져가는 미소 같다. 남자는 동시에 이 천장에 그가 갖지 못한 모든 것이 담겨 있음을 깨닫는다. 남자는 일에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에 말려들었으며, 늘 피곤하고, 얼굴에는 시무룩한 표정이 새겨져 있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난폭하게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사실 하고 싶은 말은 자기가 힘들다는 것뿐인데. 천장은 남자의 진정한 고향이지만, 그곳으로 돌아갈 길을 찾을 수가 없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일 때 비서가 대기실로 들어오더니 그를 회의실로 안내한다.
이 남자의 슬픔을 보다 보면 또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가 아름다운 것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우리 인생이 여러 가지 문제로 가장 심각할 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낙담하는 순간들은 건축과 예술로 통하는 입구를 활짝 열어준다. 그러한 때에 그 이상적인 특질들에 대한 굶주림이 최고조에 이르기 때문이다. 정신이 잘 정돈되어 너저분한 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콘크리트와 나무로 이루어진 널찍하고 텅 빈 공간에 햇빛이 환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일이 모두 정돈이 잘 되어 있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 로버트 애덤 홈 하우스의 천장 밑에서 살고 싶은 갈망을 느끼지는-심지어 그것을 보고 눈물까지 흘리지는-않을 것이다.

 

행복의 건축 157-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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