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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욕망
최봉영 / 사계절 / 2000년 8월
평점 :
절판
최봉영 교수의 지속적인 관심의 배경은 서구의 생각과 말과 글로 구성된 철학을 우리가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하느냐는 것이다. 그의 독특한 아이덴티티, 즉 엄격한 유교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문을 학습하며 사서삼경을 읽고 커서는 서양학문을 하며 한국사회의 지성으로 살아야했던 배경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가 왜 이 작업에 그렇게 몰두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을 위해 그는 서구인들의 방법을 빌려 한국사회의 성격을 논하기도 하고, 조선시대를 해석하기도 한다. 어떻게 본다면 독특하고 고유한 작업이며, 어떻게 본다면 이미 대세가 결정나버린 이 시점에서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 작업일 수도 있다.
우리가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주체와 욕망>은 그의 저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업으로 평가받아야할 것이다. 내가 최교수의 저술을 '저술'이라 부르지 않고 '작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의 저작들이 하나같이 수학공식을 증명하는 듯한 분위기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치밀함이고 어쩌면 성실함이지만 어쩌면 철두철미하게 핵심논리를 찾아가는 단순함일 수 있는 이 '해석'을 그저 글을 쓴다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 불성실한 독서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나는 최교수를 존경한다. 나는 오로지 그의 책을 통해서 그를 만나지만 그가 한국 근대지성사에서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지언정 역사가 기억할' 한 사람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이 책의 독자들은 저 유명하신 이름들, 칸트, 데카르트, 쇼펜하우어, 헤겔...칼 맑스, 미셀 푸코 들이 수행했던 그들 나름의 분석작업을 한국인이 그저 번역하고 추정하고 '누가 그런 이야기 했더라'라고 되읊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글을 통해서 '세상이 이렇고 인간이 그렇더라'고 하는 '선언(!)'을 듣는다. 이 놀라운 경험 앞에서조차 우리는 '이런 류의 사람은 약간 또라이 아냐?'라고 고개를 젓도록 교육받고 길들여져 왔다.
그의 독특한 이론, 한 단면을 들여다보자. 지구에 사는 인류들은 그가 보기에 4가지 정도의 세계관으로 분류할 수 있다. ① 통체-종속자(whole-subordinator) ②개인-합체(individual-assemnlage) ③통체-연기자(whole-destinator) ④ 통체-부분자(whole-positioner)
①은 하나의 신에 속한 인간이라는 세계관으로 비유할 수 있다. 바로 카톨릭, 이슬람 등의 절대신을 믿는 집단들이 여기에 속한다. ②는 하나하나의 개인들이 모여 거대한 집합체를 만들었다는 서구적 근대의 세계관이다. ③은 시간의 거대한 흐름 앞에 연기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인간이라는 인도적, 불교적 세계관이고 ④는 바로 우리가 살고있는 유교문화권이 우주와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언뜻 괴변처럼 들릴 수 있는 저 해석은 성리학적 질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채 조선의 비루한 역사적 유산만을 물려받은 오늘날의 세대에게 당연히 엉뚱한 소리로 들릴 것이지만, 그들이 바로 ②번의 세계해석을 학교교육으로 주입당하면서 나머지 세계관을 성장의 환경에 따라 자기의 선택권에 상관없이 섭렵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이 해석을 좀 달리 보지 않을까?
이 책은 그가 철학교과서를 내고 싶어 쓴 것은 아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담론이 어처구니 없이 서구적 주체 - 사실 우리의 문화적 이성으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음에도- 에 경도되면서 주체의 한 표현인 욕망만을 주체의 유일한 목적인 것으로 극단화하는 것을 못박고 싶었던 것이다. (이건 내 해석이지만)
저자의 의도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한국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적절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인간과 세계'라는 서구적 철학주제를 '수학적으로' 정리했다는 것, 이것을 경험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수고는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