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여자 (2disc) - 할인행사
장진 감독, 이나영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 장진 희극의 절정기

 

  지금 장안의 화제는 김정은이다. 좀 헝클어진 것 같은 이 배우는 영화면 영화, 광고면 광고, 드라마면 드라마...거의 못하는 것이 없다. 거기다 시트콤이나 코미디에 어울릴 것 같은 대사와 표정을 멜로물에 들이대도 다 인정이 될 정도로 넘나드는 경계가 자유롭다. 편하게 느껴지면서도 재미있고 적당히 예쁘고...싫어하기 힘들다.

 

  장안에 화제가 된 김정은을 어쩌다 한 번씩 채널 돌릴 때마다 보는 나로서는 내가 드라마에 익숙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드라마를 웬만하면 싫어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 끼어드는 좋은 소재를 놓치는 셈이라 그렇고, 괜히 남들과 달라보이는 것도 불혹이 넘은 나이에 이제는 부담스럽고...

 

  그러나 나는 컴컴한 극장에서 젊은 연인들 사이에 영 어울리지 않게 혼자 쑥 끼어들어 영화를 보는 이 취미를 버릴 수가 없다.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이리저리 뒤척이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좌석에서 두 시간 여를 스크린에 집중하다 불이 환하게 켜지면, 역시나 방 바닥에 뒹굴뒹굴 하면서 도라마를 보는 것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나는 정말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아직 극장에서 김정은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김정은도 꽤 많은 영화를 찍었고, 최근에는 『가문의 영광』이나 『나비』에도 출연했으며, 새로 나온 영화 『내 남자의 로맨스』도 분명 김정은의 영화인데 나는 그 영화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의 영화는 대체로 코믹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기가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사실 아직까지는 그의 영화를 내가 신뢰할 수 없다는 점도 이유가 될 것이다. 나는 언제쯤 그를 영화관에서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언제나 김정은이 출연한 영화를 별 주저함 없이 선택할 수 있을지...차비와 군것질까지 쳐서 만 원대에 달하는 비용과 쉽게 낼 수 없는 기회와 시간을 과감히 김정은에게 투자할 확신이 언제 생길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확언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코믹한 대사나 연기가 만약 장진 감독의 그것이라면, 나는 아무런 이유를 달지 않고 찾아갈 것이다.

 

  어제 본 영화 『아는 여자』가 그런 경우다. 정재영이라는, 인상 꽤나 쓰고 욕 꽤나 잘하는 주연배우가 멜로물의 남자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생각을 못했고, 그 상대가 아직 애기 티가 나는 이나영이라는 것까지 고려하면 아주 오랜 시간 볼까말까 고민을 해야 했을 이 영화를 나는 덜컥 예약하고 보러 갔다. 사실, 마눌님과 함께 보려고 이 궁리 저 생각을 하며 미루고 있었던 참인데, 이러다가는 개봉관에서 끝나 버리겠다는 생각에 하는 수 없이 결단을 내린 셈이다.

 

  결과는?

 

  역시, 안 보면 후회하는 몇 안되는 그의 영화들과 같은 수준, 언제나 균질의 품질을 유지하는 그의 능력을 입증하고 있다.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 『묻지마 패밀리(각본/제작)』에 이어 『아는 여자』는 장진 희극의 절정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저절로 들게 한다. 꾸미는 것 같으면서도 꾸밈이 없는 여백의 미학까지 가미된 이번 영화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더더군다나 이 영화는 지극히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의 영화들에 이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막 나가는 사내들과 간첩과 킬러들이 멜로를 느끼게 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웠다면 이번 영화는 야구선수와 그를 짝사랑하는 "어떤 여자"의 러브스토리로 구성된, 겉보기에는 식상한 주제의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엄청나게 웃어댔고,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면서...그러면서도 이 유치한 멜로에 푹 젖었다.

 

  멜로물에 푹 젖으면 그 결과는 어떠한가?   

 

  극장에 혼자 온 남자가 영화를 보면서 멜로물에 빠지면 여 주인공이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나는 이나영이 그렇게 예쁜 줄은 몰랐다. 양동근과 『네 멋대로 해라』에서 나온 모습을 가끔 본 적이 있었으나 그냥 광고모델이라고 생각했던 이 "배우"가 이렇게 연기를 잘 하는 줄도 몰랐다. 나는 정말 두 시간 동안 푹 빠져서 팬이 되어버렸다. 아~~~ 아름답다...

 

  나는 예전에도 『킬러들의 수다』에 나왔던 공효진을 보며, 저 아이가 한 연기 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내 생각은 맞아들었다. 알고보니 실력있는 배우였던 것이다. 이나영도 지금 생각하니 얼굴만 앙증맞은 것이 아니라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그 나이에 그런 연기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지천에 널린 "잘 빠진 미인 탤런트"들의 한숨 나오는 연기들이 반증할 수 있다.

 

  장진 영화의 매력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드는 그의 "이야기 풀어가는 방식"과 배우들의 특징과 기질을 아주 적절하게 잘 녹여내는 "배우가 연기하는 방식"에 있다. 보통의 경우에 이 두 가지가 들어맞으면 관객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웃어제낄 수 있고, 이게 잘 맞지 않으면 억지 웃음이 된다.

 

  장진의 경우에는 8:2 정도로 들어맞는 경우가 많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거부감을 느끼는 장면이 없지 않다. 사실 모든 코미디 영화들이 그런 면을 가진다. 모든 사람이 다 웃도록 하는 재주는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시대에나 가능한 것이고, 결국 코믹영화의 성공비결은 이 비율을 얼마나 높이는가 하는 것에 달려있다. 보통의 관객이라면 7:3이 되어야 코미디를 코미디로 인정할 수 있고 까다로운 관객이라면 8:2를 요구한다.

 

  불행하게도 보통의 관객이 7:3을 요구하는데 보통의 코미디 영화는 6:4를 넘어서지 못하니, 사람들은 코미디를 보고 속았다, 돈 아깝다, 시시하다, 코미디는 역시 저질이다, 다시는 코미디 안본다... 이렇게 되어버린다. 이런 결과를 피해가려면 감독들은 코미디로 일관하기 힘들다. 코미디 영화에 다른 장르가 섞여 들어가는 것도 다 이런 이유다. 안전하게 가자...그러다 보면 코미디의 질서가 없어지고 만다. 결국 코미디는 없어진다. 그냥 코믹한 액션, 코믹한 멜로, 코믹한 괴기...

 

  장진의 영화는 안전함 보다는 위험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의 도전은 때로 실패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7:3에 다다르고 가끔씩 8:2를 넘어선다. 나는 아마도 그의 절정기가 지금이 아닐까 생각한다. 9:1까지 갈 수 있을까? 9:1과 10:0에는 별 차이가 없다. 완벽한 코미디...그것이 가능할까? 기대하며 지켜볼 일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yonara 2005-06-07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극적이지 않지만, 여운이 있는 작품... 정말 장진 감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이제 봤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