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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에는 신하가 셋이 있었다. 조선의 신하는 지금 우리가 보는 관료와 정치인을 합한 존재들이었고, 사회적 존재로는 지식인의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그들은 지배계급이기도 했다. 조선에는 서양 귀족들의 오블리스 노블리제를 몸으로 실천한 세 명의 신하가 있었다. 물론 그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성리학적 명분에 입각해 자신의 생애를 살다갔지만, 우리 역사에서 조선이라는 탁한 물을 온 몸으로 펼쳐간 신하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나는 그 중 셋을 같은 반열에 올릴 수 있을 뿐이다.
그 하나는 정도전이다. 자신을 개국의 기획가로 설정한 이 사람은 무인 이성계를 앞세워 썩은 냄새가 나는 고려말의 상황을 개편하고자 했다. 물론 공과는 있으나 그의 노력의 결과로 조선은 일단 우리 역사에서 그저 스쳐지나가는 이름이 아닌 나라 이름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 그가 나라를 세웠다. 그 다음은 김종서였다. 세종의 충신이었던 김종서를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것은 아마도 그의 비극적 최후를 우리 텔레비젼 드라마 기획자들이 꽤 자주 대하사극으로 만들었기 때문일 터이고, 종종 4척 단신인 그를 왕권을 위협하는 깡패장군의 모습으로까지 묘사해가며 수양대군과 대결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했던 군주인 세종의 심복이었다. 그가 나라를 이었다.
김종서의 말년은 조선이라는 성리학의 나라가 얼마나 그 명분을 위반하며 더러운 냄새만 남은 위선의 나라로 변했는가를 웅변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우리는 조선에서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피비린내나는 '종교적 정치전쟁'의 모습을 본다. 그들은 그렇게 나라를 말아먹기 시작했고 조선은 망해가고 있었다. 이미 망해가는 나라를 닫아야했을 세 번째 신하는, 그러나 죽어가는 그 나라를 살려놓는다. 피폐한 살림과 허약한 국방으로 명나라와 함께 가버렸어야 했던 조선은 이 세번째 신하 때문에 극적으로 기사회생한다. 행복한 결말인지 비극적 최후인지 모르겠으나 그의 죽음으로 조선의 마지막 신하를 잃었다.
그리고 그는 무인으로서는 최초로, 마지막으로, 비록 죽은 후이나 영의정의 반열에 오른다. 수백년후 정조임금은 자신이 왕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에게서 찾는다. 조선이 아직까지 존재할 수 있음은 오로지 충무공의 공이라는 그의 고백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더 후에 충무공 이순신이 죽음을 걸고 싸웠던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고 그 식민지에서 일본군 장교가 되어 조선 독립군을 토벌하던 사람이 조선의 후예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 자신과 이순신을 비유하고 등치시키기 시작하면서, 우리 나라의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아주 나이 많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름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듯한 이순신은 그래서, '구리 이순신'이 되었다. 나도 구리 이순신을 배우며 충무공 찬가를 부르며 현충사와 한산도를 수학여행 하며 자라난 그 세대 중의 하나여서 '이순신 따위'를 읽을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 지난 10년을 고민하지 않았다. 그건 다 아는 이야기였다. 2001년 새로 만난 이순신, <칼의 노래>라는 소설이 들려주는 이순신은 나의 기이한 그리움과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했던 여러 전기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게 해주었다. 당파싸움을 헐뜯기 바빴던 카야마 미쓰로(이광수)의 <소설 이순신>으로 끝날 뻔 했던 문학적 이순신의 위기를 우리는 김훈씨로 해서 넘겼다.
이 책에서 나는 마치 진정한 이순신의 실체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이것이 소설이라는 자각을 수시로 하지 않았다면,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져 나오지 못했을 것이었다. 허구에 대한 이런 몰입의 위험함 때문에 소설을 웬만해선 읽지 않는 나는, 해마다 내가 뽑은 올해의 책 반열에, 2001년에 내가 정한 책으로 이 책을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