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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 개경의 비밀
한재수 지음 / 옛오늘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황도 개경의 비밀』은 '고려사'에 있는 김관의의'편년통록'을 골격으로 그 숨겨진 내용을 찾는 작가의 작업을 담아놓았다. 한재수라는 건축가는 이 신화적 내용을 근거로 개성이라는 도시가 고려의 황도로 성립하게된 배경을 찾아낸다. 신화처럼 나타나있는 호경이라는 왕건의 조상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를 찾아가면서 그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다. 신라의 성골장군이었다는 가당치 않은 신분이 왜 중요한지를 찾아들어가면 거기에는 고구려 멸망후 버젓이 지역세력을 이루고 고구려의 후계로 활동하던 후고구려와 보덕국이 나타나고 그들의 해체와 패서인 집단의 이동, 발해의 성립과 같은 고구려 이후의 민족이동이 드러난다.
작가는 여기서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백두산에서 송악으로 이동하는 호경이라는 집단의 성격이 왜 해상세력의 그것과 어우러질 수 밖에 없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들, 그러니까 고구려는 애초에 해상세력이었고 평양은 바다의 도시였던 것이다. 바다의 도시들을 가진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면서 신라는 경주를 중심으로 한 내륙국으로 그 정체성을 잡지만 수천년을 이어온 바다의 세력은 언제나 꿈틀대며 이 비정상적인 상태를 극복하려고 해왔고, 그 결과물이 결국 고려의 건국으로 이어진다는 가정인 셈이다.
하다 못해 장보고 이전에도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한 황해를 장악하는 세력은 고구려의 후예들이었다. 한 때 이정기는 자치국가를 수립하기까지 했고 그 맥은 장보고와 고려로 이어진다. 결국 당나라는 고구려를 해체했을지언정 그 에너지를 무력화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편년통록의 이 신화는 천년황도 서라벌이라는 그 시대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방향을 제시하는 이데올로기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주장이 내게 새로운 것은, 나 역시 고려의 건국세력이 해상세력이라는 점을 동의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본원의 세력을 백제로 생각해왔던 점에 수정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 설화는 분명 백두산에서 내려온 호경이라는 왕건의 조상을 이야기했고 이 설화가 주장하는 바대로라면 백두산족의 연원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터인데 해상세력과 고려왕족이라는 틀에 묶여 이 중요성을 놓치는 바람에 호경의 근원을 찾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가는 호경의 지위와 그가 왜 백두산에서 송악으로 이동해야하는지를 세심하게 추적하고 있다. 덕분에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이라는 상당히 오래된 시간대로 올라가 백두산의 호경집단이 성립하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찬찬히 읽어가다보면 우리가 너무 쉽게 놓쳐버린 삼국통일(?) 이후의 상황들이 흥미롭게 되살아난다.신화가 밝히고 있는 호경 이후의 왕건조상들은 하나같이 해상세력이다. 당나라와 서해안을 오가는 이 해상세력의 출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은 연구들이 나와있다. 결국 문제는 시조였던 호경이었고, 이 엉뚱한 호경의 설화를 사람들은 애써 무시했던 것인데, 작가는 이것을 중요성을 건축학자 답게 지형과 도로, 즉 당시 사회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연구해 가설을 제시한 것이다. 이 가설대로라면 결과적으로 호경은 이 설화에서 결코 빠져서는 안될, 왕건의 본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밝힌 한반도 개성을 중심으로 한 K자의 이동로는 현재까지 유효한 교통로이다. 작가는 다양한 지도와 모형을 통해 제3자들이 바라본 우리 땅의 기능을 묘사한다. 왜 한반도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이 지도를 보면 저절로 느껴진다. 토끼모양의 한반도만 지겹도록 봐온 우리에게 이 다양한 방향의 지도들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한다. 반경 1000km 내에 인류의 1/4이 살고있는 한국의 수도 서울을 우리는 과연 어떤 식으로,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저 고려사람들만큼이나 넓게 생각하고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