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폴리테이아 총서 1
최장집 지음 / 후마니타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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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최장집이라는 이름은 '역사적 결단'과 떨어져서 기억하기 힘들다. 그 말도 안되는 '역모'사건 이후로 최장집의 이름은 한국 정치학계의 가늠자로 기능하고 있다. 그를 지지하는가, 아니면 그 반대편에 서있는가. 사건 자체가 말이 안되는 모함이었으므로 그를 편가름의 기준으로 삼는 것 자체가 덜떨어진 대한민국의 상징이라는 점을 애써 강조할 필요는 없겠다.

이 책은 그 덜떨어진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을 애써서 분석하려는 그의 외사랑으로 시작한다. 정치학의 여러 이론들을 적절하게 배치하며 한국사회를 특수성이 아닌 보편성으로 이해하려고 하지만, 애써서 그럴 필요없이, 이곳은 장미꽃이 피어나지 않는 '쓰레기통'인 것을 겪어본 사람들은 모두 알고있다. 똑같은 넘들이 똑같은 짓을 하면서 영남호남을 갈라 피터지게 이간질을 시키는 그런 곳이라는 것. 무게가 다르고 종류는 달라고 결국 알고보면 그치들의 보수성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가 꽃이라 착각하는 그 화려한 민주화의 결실들은 하나같이 해방공간만도 못한 좁은 이념의 한계 속에 정치 엘리트들의 활동공간과 자산을 불려준 그들만의 승리였을 뿐이다. 그 냉정한 현실을 의식하고싶지 않건만, 최장집은 따갑게 지적한다. 그는 오히려 박정희 정권 하에서의 '성공'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경제적 성공이 왜 정치적 권위주의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최장집의 이름으로 그의 책을 고른 사람들에게 이처럼 속 쓰린 부분이 어디에 있으랴.

그러나 냉철하게 그를 곱씹고 있으면 해답은 너무 빤하다. 오늘날 보수정당의 치장을 위해 아우라를 넓혀놓은 이념의 스펙트럼 만큼만 한국 정치의 이념성향과 갈등의 영역이 넓어질 수 있다면, 정치발전은 의외로 쉽다. 그렇다, 싸움판이 커지고 싸움의 주제가 다양해지면, 똑같은 그치들이 지역을 갈라 민족의 역사를 소모하는 21세기형 파당싸움을 중단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양명학도 쓰고 서학도 쓰고, 사문난적을 폐하여야 하는 것이다.

정체되고 타락한 정치를 괴로와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정치에 내 이름 석자가 빠진 것을 완강히 항의해야한다. 너와 나의 이름이 하나의 세력이 되고 그 세력이 모여 싸움을 걸어야 한다. 그 흔해빠진 시민사회는 그렇게 형성되는 것이고, 정치는 그렇게 발전하는 것이다. 돌려달라고 할 필요도 없다. 헌법에 보면 우리는 이미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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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 개경의 비밀
한재수 지음 / 옛오늘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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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 개경의 비밀』은 '고려사'에 있는 김관의의'편년통록'을 골격으로 그 숨겨진 내용을 찾는 작가의 작업을 담아놓았다. 한재수라는 건축가는 이 신화적 내용을 근거로 개성이라는 도시가 고려의 황도로 성립하게된 배경을 찾아낸다. 신화처럼 나타나있는 호경이라는 왕건의 조상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를 찾아가면서 그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다. 신라의 성골장군이었다는 가당치 않은 신분이 왜 중요한지를 찾아들어가면 거기에는 고구려 멸망후 버젓이 지역세력을 이루고 고구려의 후계로 활동하던 후고구려와 보덕국이 나타나고 그들의 해체와 패서인 집단의 이동, 발해의 성립과 같은 고구려 이후의 민족이동이 드러난다.

작가는 여기서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백두산에서 송악으로 이동하는 호경이라는 집단의 성격이 왜 해상세력의 그것과 어우러질 수 밖에 없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들, 그러니까 고구려는 애초에 해상세력이었고 평양은 바다의 도시였던 것이다. 바다의 도시들을 가진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면서 신라는 경주를 중심으로 한 내륙국으로 그 정체성을 잡지만 수천년을 이어온 바다의 세력은 언제나 꿈틀대며 이 비정상적인 상태를 극복하려고 해왔고, 그 결과물이 결국 고려의 건국으로 이어진다는 가정인 셈이다.

하다 못해 장보고 이전에도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한 황해를 장악하는 세력은 고구려의 후예들이었다. 한 때 이정기는 자치국가를 수립하기까지 했고 그 맥은 장보고와 고려로 이어진다. 결국 당나라는 고구려를 해체했을지언정 그 에너지를 무력화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편년통록의 이 신화는 천년황도 서라벌이라는 그 시대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방향을 제시하는 이데올로기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주장이 내게 새로운 것은, 나 역시 고려의 건국세력이 해상세력이라는 점을 동의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본원의 세력을 백제로 생각해왔던 점에 수정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 설화는 분명 백두산에서 내려온 호경이라는 왕건의 조상을 이야기했고 이 설화가 주장하는 바대로라면 백두산족의 연원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터인데 해상세력과 고려왕족이라는 틀에 묶여 이 중요성을 놓치는 바람에 호경의 근원을 찾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가는 호경의 지위와 그가 왜 백두산에서 송악으로 이동해야하는지를 세심하게 추적하고 있다. 덕분에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이라는 상당히 오래된 시간대로 올라가 백두산의 호경집단이 성립하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찬찬히 읽어가다보면 우리가 너무 쉽게 놓쳐버린 삼국통일(?) 이후의 상황들이 흥미롭게 되살아난다.신화가 밝히고 있는 호경 이후의 왕건조상들은 하나같이 해상세력이다. 당나라와 서해안을 오가는 이 해상세력의 출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은 연구들이 나와있다. 결국 문제는 시조였던 호경이었고, 이 엉뚱한 호경의 설화를 사람들은 애써 무시했던 것인데, 작가는 이것을 중요성을 건축학자 답게 지형과 도로, 즉 당시 사회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연구해 가설을 제시한 것이다. 이 가설대로라면 결과적으로 호경은 이 설화에서 결코 빠져서는 안될, 왕건의 본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밝힌 한반도 개성을 중심으로 한 K자의 이동로는 현재까지 유효한 교통로이다. 작가는 다양한 지도와 모형을 통해 제3자들이 바라본 우리 땅의 기능을 묘사한다. 왜 한반도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이 지도를 보면 저절로 느껴진다. 토끼모양의 한반도만 지겹도록 봐온 우리에게 이 다양한 방향의 지도들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한다. 반경 1000km 내에 인류의 1/4이 살고있는 한국의 수도 서울을 우리는 과연 어떤 식으로,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저 고려사람들만큼이나 넓게 생각하고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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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과 고구려가 죽어야 민족사가 산다
김성호 지음 / 월간조선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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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과 고구려가 죽어야 민족사가 산다』라는 김성호씨의 책은 그의 전작들인 비류백제의 기원과 한일 성씨의 기원에 이어지는 책이다. 그러나 그 연구들에서 특별히 더 나가지 않은 내용으로 책을 낸 의도가 좀 의심스럽다. 아니나 다를까 이 제목으로 월간조선이 발행했다!

단군과 고구려의 계승자로 자처하는 북한에 비해 남한이 정통성이 있다는 비유를 김성호씨의 씨성으로본 민족구성에서 빌려오고 있는 것이다. 가소롭기 그지 없는 월간조선의 발상법에 정말 계속 웃음만 나온다. 김성호씨가 자기 입으로 조갑제씨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으니, 설령 순진해서 당한 것이라 해도 이 책임은 김성호씨도 져야한다.

고구려와 단군을 계승했으면 남북한이 다 한 것이고 계승 안했으면 다 안한 것이지, 이제와서 북한이 단군릉이니 뭐니 하니 북한은 단군과 고구려의 계승자라고 '인정'하는 그 사고방식에서부터 문제다. 오히려 김성호씨는 비류백제가 바로 전통적인 왜족이라고 밝힌 사람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구성은 왜족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니, 일선동조론인가? 조갑제는 일선동조론/기마민족론자인가?

2000년전에 벌어진 종족간의 이합집산을 20세기 민족사에 연결하려는 시도는 좀 고급스럽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나는 그 점에서 오히려 씨성을 근거로 한반도의 다양한 종족적 연원을 밝힌 김성호씨의 연구가 '단일민족론'을 해체하는 효과 때문에 그에게 주목한 것이다. 월간조선의 조갑제씨가 생각하듯, 우리는 신라의 후계이고 북한은 고구려의 후계라서 신라가 정통이라는 바보같은 생각은 좀 버려야하지 않겠는가. 갑제씨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려말선초에 집단적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왜구'의 정체를 밝힌 김성호씨의 『씨성으로 본 한일민족의 기원』을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조갑제씨는 아마 오족왜인 출신이니까 기마민족하고는 상관없을 것이다. 왜 남의 조상을 들먹거리며 난리인가, 박혁거세의 후손으로서 경고하는 바이다.

전작들에 후한 평가를 주었던 나는 이 책이 좀 난감스럽고 아프다. 특히 '김유신 암살론'에 가면 역사적 상상력을 넘어서는 억측이 난무하는데, 여기에 오면 정말로 아프다. 그리고 아쉽다. 고대사의 비밀의 열쇄인 '왜족'을 밝혀내는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한 김성호씨가 좀 오버한 감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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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이학문선 1
안토니오 네그리 & 마이클 하트 지음, 윤수종 옮김 / 이학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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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버스에 지하철을 연이어 타고 서울역에 다 와서 <제국>을 모두 읽었다. 알라딘을 뒤져보니 작년 12월23일이 구매일자로 나온다. 책을 내 손에 놓은지 약 3개월만에 읽은 셈이다. 이 두꺼운 책을 모두 읽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엄청난 보람(!)을 느껴야겠지만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 너무 먼 미래의 모습이어서일까 아니면 그 핵심적 개념을 이해하기에 나는 완고한 20세기의 사람이어서일까. 어쨌거나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자인하며 책을 덮었다.

그러나 뭉클뭉클 솟아나는 느낌을 어쩔 수는 없었다. 노동이 바뀌었고 권력이 바뀌었다. 제국은 대중의 저항을 따라잡으며 그 힘으로 생존하고 있다. 저항이 멈추는 순간 제국은 에너지를 잃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 저항을 풀어놓을 수도 없다. 소통과 힘, 산 노동, 생체권력, 잡종, 기계인간...무기력할 듯한 추상어들은 식탁 위에서 다시 살아나 춤추고 있었다.

부패한 낡은 관행을 무너뜨리며 돌풍을 몰고온 인터넷 모임 노사모, 관료로 시작했지만 한국 영화계를 전 세계에 알리는 진짜 영화계의 따뜻한 아버지로 바뀌어버린 김동호씨, 집에서 회사일을 하던 아버지와 회사에서 내 문집을 만드는 나, 찰스핸디가 주장하는 '코끼리와 벼룩'의 시대... 아무런 관계가 없을 이 사건과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난 나에게는 하나의 궤적으로 얽혀들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제국이다.

아직 그 모습의 구체성을 인지하기에 너무 많은 것들이 캄캄한 어두움 속에 있긴 하지만, 이제 서서히 새벽이 올 것이고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면 우리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아마 그 때가 되어서야 나는 이 책의 '진짜 서평'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기까지는 이 가슴 뭉클한, 이해할 수 없는 감동의 기억만을 간직해야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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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그리 정신
찰스 핸디 지음, 노혜숙 옮김 / 생각의나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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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평점에 대해 한 마디 해야겠다. 별 세 개라는 것이 이 책의 가치를 평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순전히 내가 이 책을 이해한 정도를 표시한 것이다. 차라리 더 어려웠다면 이해하기 쉬웠을 이 책은 매우 평이하고 담담한 글로 몇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것을 일관성 있게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에 일관된 주제가 있다면 '희망이 있는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라고 억지로 붙여놓아도 좋겠다. 저자의 목소리는 경제학자 답지 않게 매우 잔잔하다. 마치 최고경영자의 은퇴후 회고록을 보는 듯한 느낌이지만 거기에 비한다면 지극히 사회적인 교수의 목소리가 배어나와 정체성을 느끼게 해준다.

반면 경제철학자라는 그의 직업에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경영학자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나는 상당한 혼란을 느끼는 모양이다. 아마 선입견이겠지, 경제학자가 회사와 기업과 효율과 효과를 이야기하고 혁신과 생산성과 창의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뭐 그리 특별한 일이더란 말인가. 그것은 경영학이라기보다 경제학이 더 가깝다...왜 너는 아담스미스와 슘페터와 칼 맑스만이 경제학자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영국 노동당이 펼치려는 '제3의 길'과 비슷한 최소한의 윤리와 책임이 있는 자본주의의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기업의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는 조직을 읽다가 다시 환경문제와 사회적 분배의 실패 이야기를 듣다가 또 다시 혁신기업의 사례를 읽는 이 기이한 탐험이 나는 너무 낯설다. 아마도 그만큼 이 책이 독특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종종 그의 한 마디는 천민 자본주의에서 허덕이는 대한민국의 국민(시민이 아닌)인 나에게 천국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할 정도로 건전하고 따스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대안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거기에는 지금의 자본주의를 길러낸 극단의 효율과 최고의 추구에 대한 당연한 반성이 생략된채 혁신적인 최고의 기업이 사례로 나오면서 대안적인 기업모델로 제시된다. 정말 내가 모자란 놈일까. 꽉 막힌 흑백론자일 뿐일까.

하지만 이 책을 꼭 나처럼 읽을 필요는 없겠다. 하나의 단면 단면을 본다면, 이 책은 기업운영자들이 보는 경제지가 극찬하는 면도 가지고 있지만, 자본주의 비판과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온건한 개혁론자들이 써먹을 만한 많은 아이디어들이 함께 실려있다. 아마 미래에 대한 전망에 가면 자본주의적 효율과 건전한 자본주의의 유지가 결코 다른 문제가 아님을 확신하는 저자의 논지가 가슴에 와닿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나에게는 독특한 체험이다.

'영국 노동당보다 약간 좌파적인 시각'일 듯하다는 내 판단이 틀리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라지만 확신은 들지 않는다. 물론 자본주의를 절대신으로 섬기기는 사람에게나 급진적인 사회주의자에게는 한마디로 헛소리일 것이고, 최소한 오늘을 아파하고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 되돌이켜볼 아이디어가 많이 많이 실려있다는 점에서 '사람에 따라서는' 추천할만한 책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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