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기원 - 최첨단 경제학과 과학이론이 밝혀낸 부의 원천과 진화
에릭 바인하커 지음, 안현실.정성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부의 기원'이라는 제목은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와 비교해 시간적 방향을 달리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앨빈 토플러의 저작들이 현상계의 "물결"을 읽어내는 방대한 지식의 집적이라면 이 책은 그 물결의 "법칙"을 파고든다. 어려운 말로 천착한다. 그 법칙의 이름은 '복잡계 경제학'이다.


복잡하다는 의미가 주는 난해함과 피곤함에 이 책이 어울리는 점이라고는 그 분량의 방대함 말고는 없다. 그러나 이 두터운 책은 18개의 낱장과 4개의 큰 부분으로 나뉘어 난해함과 피곤함을 털어 내며 놀이공원을 뒤지는 듯한 흥미를 유발시킨다. 물리학과 생물의 진화론이 정치경제학과 경영학에 뒤섞이며 새삼스레 21세기가 지식통섭의 시대임을 실감케 한다.


고전파와 한계학파의 균형경제가 도달할 수 없는 가상의 이론세계였다는 점은 새삼스럽지 않다. 문제는 그 이론을 대체할 현실계 경제학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저자는 복잡계라는 자연계 진화의 이론을 들이밀며 움직이는 세상에 의식을 가지고 참여한 행위자들의 게임을 말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우연이라 믿어 온 부조화와 격변의 패턴을 해석하는 기반은 복잡계 물리학과 진화 생물학이다.


그리고 진화의 패턴은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에도 적용되는 법칙성임을 입증하기 위해 물리학과 생물학의 가정을 경제학 시험이 통과할 수 있을 것인지를 연역해 나간다. 진보와 혁신, 파괴와 퇴보는 직선적이지 않으며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던 패턴을 보여 준다. 거기에 선과 악은 없으되 분명 변화의 질서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인류가 생물로 진화해온 궤적의 흐름과 다르지 않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유형이 다른 여러 존재의 현상에 대해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결론은 담론을 넘어 기업과 사회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은 경제학일 터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생물의 진화와 자기복제의 선택단위인 DNA에 해당하는 것이 사람도 기업도 아닌, 시장에서의 "사업"임을 용감하게 주장한다. 놀라운 주장이다. 그러나 이 은유는 새롭지는 않다. 놀라운 것은 이 주장이 아니라 이 엄연한 사실을 200년 넘게 거부해온 전통경제학을 진리로 믿는 사람들이 지구를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전략이나 조직에 대한 컨설팅은 무난하고 금융시장에 대한 다소 전문적인 분석도 읽어 줄만하며 좌우대결을 끝장내는 최후의 결론에 대해서도 덤덤하게 수긍할 수 있다. 저자의 고백처럼, 당장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전에도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생각을 바꾸어 복잡계 경제학을 진리로 믿어야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던 셈이다. 


물론 논리적 극단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된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점을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 저자는 하나의 사상이 사회를 이끌 주류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을 따지며 복잡계 경제학이 그렇게 되는데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 진단한다. 저자의 소박한 현실전망이 이루어지기 전에 지구 생태계가 복잡계의 법칙에 따라 궤멸하는 것도 사실은 저자가 말한 법칙에 이미 소개되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우리 역사 바로잡기 1
이덕일, 김병기, 신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이런 류의 책에 "국수주의" 딱지를 붙이는 사람들을 알고있다. 반대하지 않겠다. 국수주의, "수"할 "국"이 있다면 말이다. 두 눈 빤하게 뜨고 나라의 정통사서인 삼국사기에 시조 주몽부터 나오는 고구려를 접수당한 사람들에게 "수"할 "국"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그 전신인 부여는 어떠하며 그 전신인 조선은 어떠한가?

 

왜 "고조선"이라고 부르는가? 그 나라의 이름은 "조선"이다. 이성계가 세운 나라를 "후조선" "근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한 명칭이다. 자신들을 황염(황제 헌원, 염제 신농)의 후손이라고 부르는 화교상들에게 우리는 치우가 우리 종족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고 하며, 민족의 개념을 적용하기가 어렵지 않느냐고 한다. 깡패 앞에서 지성을 논하는 꼴이다. 대화는 상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족속의 역사가 영광스러운 지천년의 고대를 자랑한다는 헛소리를 하고싶은 것이 아니라, 우리 족속들에게도 남 부럽지 않은 문화와 전승이 있음을 제대로 알자고 하는 것이다. 그 한가운데 "문제"로 서있는 것이 바로 옛 조선이다. 최근 정형진의 연구로 나타난 결과를 보면 환웅의 배달국(이렇게 부르니까 또 무슨 사이비 역사가처럼 느껴지는, 이 서글픈 자조...)도 역사적, 고고학적 근거가 충분히 있다. 하물며 중국의 역사책에 나와있는 조선의 실체를 도무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우리의 태도는 심리학적으로 어떤 결벽증에 해당하는 것일까? (미국의 저명한 학자가 연구해서 하바드와 예일대학이 공인하고 옥스포드와 캠브리지가 동의면 아마 전국민이 믿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최근 들어 옛 조선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음을 느끼게 해준 "아주 오래된, 그러나 새로운" 사실들을 잘 정리한 입문서이다.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데 동의한다는 의미에서) 벌써 10년이 다 되가는 이야기지만, PC통신 유니텔에서 [고대사 X파일]이라는 잡문을 써가며 가졌던 의문들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어 이런 류의 책은 거의 본능적으로 접수해 분석하기 바쁜 내가, 오랜만에 맘 편하게 책을 읽었다, 그러니 "입문서"이고, 이 정도의 내용에 충격을 받는다면, 아직 많고 많은 것이 더 남아있다는 말씀만 드리겠다. 

 

아주 수세적인 입장에서 서술해도 역시 옛 조선은 1000년을 넘게 지속된 동아시아 고대의 최고 국가임이 틀림없는데, 이것을 미스테리로 불러야 하는 현실에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길 없어, "이병도 떼거지들을 벽돌로 때려 피범벅을 만들어 선지국을 만들어 먹어도 그 분이 풀리지 않는다"고 오랜 만에 되뇌었던 책이기도 하다.

 

이덕일이 역사를 문학화해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으로 성실한 역사가임을 느끼게 해준 최근작이기도 하다. (이 책 때문에 구입을 미룬 성삼제의 책에게는 다소 미안함을 느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가의 역할 - 장하준이 제시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발전과 진보의 경제학'
장하준 지음, 황해선, 이종태 옮김 / 부키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하준의 여러 책을 일관하는 발상과 논리를 정리했다고 볼 수 있는 책으로 시사적인 주제를 명백하게 제시하던 다른 책들의 이론판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파 정치경제학 시대의 논쟁을 21세기에 와서 다시 한다는 것이 좀 서글프기는 하지만 정치경제학에서 정치를 떼버리려고 그렇게 노력해온 신고전파와 신자유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책들이 케인즈보다 훨씬 위험해 보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신고전파와 케인즈를 대충 합쳐서 버무렸던 경제학 전공공부의 기억이 새로웠다.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이론적 배경인 시장과 가격마저도 국가가 그 기반을 만들어 내고 지키지 않으면 결코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이 명백한 사실을 "ceteris paribus ; The other things being equal"이라는 가정에 감추어 버리는 것이 과연 이성적이고 현실적인지, 묻고 답하는 과정이 매우 진지하다. 맑스주의로 대체되어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던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부활을 알리는 한국출신 경제학자의 "정치경제학 수고"라 할 만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2-16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탤리즈먼: 이단의 역사
그레이엄 핸콕.로버트 보발 지음, 오성환 옮김 / 까치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중동의 마니교와 옥시타니아의 카타리파 사이에 있는 밀접한 교의적 연관을 분석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눈이 번쩍 떴던 나는, 책의 마지막에서 미국에 지었다는 그 잘난 빛의 도시들에 대한 무시무시한 (911이라고 부르는)테러가 수 천년 전, 무슬림이 예루살렘의 템플십자군을 공격해 성전을 사수하던 그들을 내몰아낸 것과 맥을 같이 한다는, 그야말로 레토릭 수준에 가까운 결론에 이르면 짜증을 내며 책장을 넘기고 있다.

 

평면적으로 이 짜증의 원인을 서술하자면, 고대의 비의가 현대로 내려와 빛을 잃은 때문이겠다. 허나 이 두터운 책을 들고다니며 지하철과 화장실을 가리지 않고 읽어온 나에게 행콕과 보발의 전개와 추적과 결언은 허망함을 넘어서 내 밑바닥 정서에 깔린 식민지 원주민의 심기를 건드렸다.

 

카톨릭의 카타리파 대학살에 대고 분노한 인문주의자의 이름으로 그것이 하느님의 뜻인지를 물었던 행콕은, 카타리파와 헤르메스파와 르네상스주의자들과 템플기사단을 비롯한 각종 유사 이단들이 어떤 식으로 기독교와 섞이며 근대 유럽의 사상적 중추인 이성주의파 결사로 귀결되는지를 증명하느라, 또한 가치판단이 사라져버린 사건와 인물을 추적하며 이야기를 잇고 이어 그 계보를 입증하느라 어느 새 프리메이슨 브리태니커 편집인으로 변모하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깨닫지 못하고 감격에 차서 이스라엘의 건국을 프리메이슨의 영광으로 선언한다.

 

행콕과 보발의 시야에서 빛의 하느님은 사라지고 피라미드와 오벨리스크와 헬리오폴리스의 도시공학이 어떻게 파리와 런던과 워싱턴, 필라델피아에 구현되었는지를 지루하게 입증하는데 남은 힘을 다한다. 하긴, 이 잡학적  책이 처음 시작 때 말하려 했던 이단의 의미와 의의,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과 이념, 그리고 그 좌절은 어쩌면 이집트의 지혜가 유럽과 미국에 부활했다는 결말을 가정하였기에 찾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 정통과 이단은 분별없이 섞였고 이단은 이제 정통이 되어 다른 정통이었던 무슬림의 대반격을 맏이하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조지 W 부시가 프리메이슨 성경에 손을 얹고 대통령 선서를 했다는 뜬금없는 이야기에 이르면, 나는 나의 저술가 리스트에서 행콕을 지우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un6300 2022-10-14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역대 대통령이 다 프리메이슨 입니다. 미국을 건국한것이 기독교라고 기독교인이 말하는데 프리메이슨이 건국한 것입니다. 진실을 왜곡하면 안됩니다.
 
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
최봉영 지음 / 지식산업사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98년 처음으로 최교수의 글을 읽은 이후로,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그의 글을 좋아하고, 그의 글을 되새겨 읽는 것을 즐겨하는 것으로 팬이 되었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의식하는 문제를 나도 비슷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뜻에서, 한국사회에 사는 동시대인으로 내가 표출하고픈 문제의 현상과 그 발단, 원인을 찾기 위한 틀을 우리 역사와 우리 문화에 뿌리를 두고 제시하는 참으로 드물고 희귀한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것을 감사한다는 뜻에서 그의 팬이라고 해도 상관없겠다.

그러나 그의 팬이 된다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는 한국사회의 문제의 뿌리를 건성으로 건드리지 않는다. 외국의 저명하신 학자나 이론가를 끌어들여 이론적 정당성을 찾고자 하지 않으며 모호한 수치나 통계를 이용해 실험실의 가정을 현실로 가장하려는 "학자"스러운 행위를 그는 하지 않는다. 하여, 맨 몸을 드러내듯 이 생각과 저 습관의 민족사적 연원을 뿌리 뽑아 설명하는 그의 논리를 접하면, 식은 땀이 흐르고 소름이 돋는다. 그것은 비탄으로, 부끄러움으로, 낙망으로, 그리고 때로는 열망이자 대안으로 그와 함께 고민해야만 소회 한 마디를 할 수 있는 깊은 고민으로 남는 탓에 그의 팬이 된다는 것은 결코 즐겁지 않다.

존비어체계라는 아주 오래된 주제를 헐거운 분석으로 넘겼던 나에게 그가 준 이 한 권 책의 고민은 아주 오래 갈 듯하다. 나는 너무나 많은 차별과 억압을 비굴하게 참아왔으며, 나는 너무나 많은 차별과 억압을 오만하게 저질러 왔다. 나도 모르게 또는 알면서도 외면하며 그래왔다. 이것은 생생한 현실이고, 반복되는 그의 설명이 가슴에 못을 박듯 절절히 울린다.

나는 아무런 대안을 생각하지 못한 채, 그저, 아이들에게 조용히 말을 높여 불렀다. 울컥 눈물이 솟았다. 아이들이 아빠를 존경하며 부르듯, 나도 아이들을 사랑하며 높여 부를 수 있음을, 안다고 말하면서 이 작은 실천을 하지 않았었다. 대안은...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굴하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호혜평등의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