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에 관하여

- 누구나 읽어야 할 면역에 대한 모든 것


#3 오염에 대한 두려움


나는 일상적으로 손을 소독하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병원에서 회진을 돌 때마다 손을 반복적으로 씻느라 자주 손이 갈라졌던 아버지는 세균을 죽인다고 약속하는 물건이라면 뭐든 의심하고 보는 마음을 내게 심어 주었다.



아버지는 모든 세균을 죽여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세균을 씻어 내기보다 아예 죽이는 행동에서 십자군을 떠올렸는데, 옛날 한 수도원장은 어떻게 신자와 이단자를 구별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모조리 죽여라. 신은 제 백성을 알아보실 것이다.>


손 소독제가 무차별로 세균을 죽이는 와중에, 과학자들은 임신부의 소변에, 신생아의 제대혈에, 수유하는 산모의 모유에까지 트리클로산이라는 화학 물질이 들어 있다는 걸 발견했다. 항미생물제인 트리클로산은 치약, 구강 세정제, 데오도란트, 세척제, 세제, 기타 등등에 쓰이며 거의 모든 액상 항균 비누와 많은 손 소독제에도 들어가는 유효 성분이다.



우리가 트리클로산에 대해서 아는 건 그 물질이 낮은 농도일 때는 <좋은> 미생물과 <나쁜> 미생물의 증식을 둘 다 방해한다는 것, 그리고 높은 농도일 때는 그것들을 죽일 수 있다는 것뿐이다. 트리클로산이 하수에, 개천에, 심지어 정수 처리된 식수에 들어 있다는 것도 안다. 트리클로산은 전 세계 야생 어류에, 지렁이에, 큰돌고래의 피에 들어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생태계에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는 우리가 모른다.


불운한 생쥐들, 쥐들, 토끼들이 동원된 적잖은 분량의 연구를 요약하자면, 트리클로산은 인체에 그다지 해롭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평생 지속적으로 노출되었을 때의 장기적 효과는 아직 알 수 없다. 최소한 하나의 대형 화학 회사가 항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식품 의약청FDA은 트리클로산을 2008년 국가 독성 연구 프로그램에서 좀 더 조사할 대상으로 지정했다. 내가 그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독성학자 스콧 매스턴은 트리클로산이라는 주제에 심드렁한 편이었다. 내가 자꾸 조르자, 그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는 항균 비누를 안 삽니다. 그게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아무 이점이 없기 때문이에요.」


이미 많은 연구에서, 항균 비누로 씻는 게 그냥 비누와 물로 씻는 것보다 세균을 더 잘 제거하진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매스턴 박사가 넌지시 말한 바에 따르면, 트리클로산이 비누에 들어 있는 건 오로지 회사들이 세균을 씻어 내기보다 죽인다고 약속하는 항균 제품에 대한 시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트리클로산이 가하는 위험이 백신의 몇몇 성분이 가하는 위험에 견주어 어느 정도인지 따져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거의 지속적으로 트리클로산에 노출된 채 살고 있으며, 트리클로산은 그 물질이 담긴 제품을 쓰지 않은 사람의 소변에서도 검출된다. 반면에 우리가 백신을 통해서 미량의 다른 화학 물질에 노출되는 사건은 평생 몇십 회로 한정된다. 그러나 나는 이 생각을 좀 더 따져 보기 위해서 트리클로산에 연관된 위험을 과대평가하는 실수를 저지르긴 싫었고, 매스턴 박사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그는 <상대적 위험 평가란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운 문제죠>라고 동의했다. 그리고 내게 상기시켰다. 트리클로산이 인체에 가하는 건강상 위험은 아마 작겠지만, 아무런 효용도 없는 제품이라면 아무리 작은 위험도 용인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_ 『면역에 관하여』 출간 전 연재 4회에 계속



* 『면역에 관하여』 출간 전 연재는

   <열린책들 알라딘 서재>에서 단독 공개됩니다.


* [출간 전 연재] 글은 책의 본문 내용 중 편집을 거쳐 공개됩니다.

따라서 출간되는 책과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 위 책은 11월 말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 클릭 시 『면역에 관하여』 도서 페이지로 이동


출간 전 연재 EVENT

연재 글을 읽고 댓글을 남겨 주시면

연재 종료 후 추첨을 통해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


★ 당첨 확률을 높이는 방법!

    1) 연재글 공유 후 링크를 댓글로 함께 남긴다.

    2) 연재 회차 마다 읽고, 댓글을 남긴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고귀한 수영이 2016-11-17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과도하고 병적인 위생의식이 이롭고 해롭고를 떠나서 우리 몸의 어느정도는 있어야 할 세균을 완전히 없에음으로서 외부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그 어떠한 것도 남기지 않고 노출시키는 불상사를 야기한 거 라는 거군요. 하긴 오늘날이 너무 위생과 청결을 강조하지만 그렇다면 과거의 선조들은 어떻게 살았었는지를 다시한번 상기하고 많이 생각을 해야할 대목인거 같아요. 병적인 위생과 청결의식이 과연 우리에게 득인지 아니면 실인지... 결국은 양날의 검이라는 건지... 아무튼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이번 연재네요.

stillmyhero 2016-11-1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현대인들이 너무 과하게 깨끗(?)하려고 하는 건 아닌가, 너무 과하게 살균에 집착하는 게 과연 유익할까... 재미있는 내용 잘 보고 갑니다. 다음 편 기대할게요!

비니루 2016-11-17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균 비누와 트리클로산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네요. 어쩌면 보다 안전한 느낌을 위한 공포 마케팅의 일종인가 싶기도 하고요. https://twitter.com/vinylmoon/status/799257914821091333

ICE-9 2016-11-1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이야기를 읽으니 가습기 살균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네요. 원래는 사람의 건강을 위해 가습기의 나쁜 균을 죽이려는 것이었습니다만 그 균을 죽이려는 독성 성분이 오히려 보호해야 하는 사람의 목숨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죠. 요즘은 정말 이런 저런 소독제가 참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슨 성분으로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고나니 위생에 대한 과잉된 강박과 그것이 부추기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의 무분별한 습득에서 하루빨리 자유로워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샛별투 2016-11-18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고 나쁘고를 인간의 기준에서만 판단하는 것이 문제네요. 항상 우리의 오만함이 화를 부릅니다.

Chloe 2016-11-24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균 비누를 안 삽니다. 그게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아무 이점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혹시나하는거에
쓰다 안쓰다 하기도 한다는거가 웃픈...

하루한쪽 2016-11-28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균 비누가 아무 이점이 없다는 사실은 놀랍네요.... 일반 비누나 물로 씻어내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니 말예요.

https://www.facebook.com/hanabi.tschoe/posts/1869541093332588

carpe diem 2016-11-2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균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제품이 참 많은데 슬로우 데스란 책을 보면 화합물에 의한 항균이라 몸에 치명적이라 하더군요. 여기 이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어요. 게다가 아기 양수나 탯줄에도 화학물질이 있다니...아가를 기다리는 예비 엄마로서 무섭기도 하고 생활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네요

carpe diem 2016-11-2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균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제품이 참 많은데 슬로우 데스란 책을 보면 화합물에 의한 항균이라 몸에 치명적이라 하더군요. 여기 이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어요. 게다가 아기 양수나 탯줄에도 화학물질이 있다니...아가를 기다리는 예비 엄마로서 무섭기도 하고 생활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네요

carpe diem 2016-11-2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균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제품이 참 많은데 슬로우 데스란 책을 보면 화합물에 의한 항균이라 몸에 치명적이라 하더군요. 여기 이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어요. 게다가 아기 양수나 탯줄에도 화학물질이 있다니...아가를 기다리는 예비 엄마로서 무섭기도 하고 생활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네요

sorayosora 2016-11-30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균비누는 저도 안쓰게 되더라구요~
손세정제도 그렇고...
임신중이라도 그렇지만 원래도 아이도 저도 안쓰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