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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ete! - 정보 중독에서 벗어나는 아주 특별한 비밀
전병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정보의 노예
먼저 ‘정보 중독에서 벗어나는 아주 특별한 비밀’을 가르쳐 주겠다고 한 이 책이 정보라는 낱말을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정보라는 낱말이 가진 원래 의미인 ‘생존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그를 둘러싼 정황에 관한 소식을 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책은 한 개인이 접하는 쉽게 말해 눈에 들어와 뇌로 전달되는 모든 것을 정보(개구리)로 정의하고 그 엄청난 양의 정보들 속에서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어떻게 찾고, 찾은 정보를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에 대해 경험을 토대로 꽤 꼼꼼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100년 안팎인 인간의 수명과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에 비교하면 현대 매체 정보의 양은 인간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있다는 것을 모두 공감할 수 있다.
“컴퓨터를 열면 정보가 우글거렸다. 거기에 멍하니 들여다 본 TV, 하루 종일 떠돈 인터넷, 선동하는 신문, 갑자기 끼어드는 휴대폰과 인스턴트 메신저, 중요한 순간에 걸려온 광고 전화까지 정보는 넘쳤고 시간은 모자랐다.”(14p)
컴퓨터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는 현대인은 자신이 그 모든 정보의 주인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매체와 정보에 사로잡힌 노예가 있다. 정보를 다양한 경로로 ‘자유롭게’ 접할 수 있다고 해서 정보의 주인인 것은 아니다. 필요한 정보와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구분 없이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입장을 주인이라 하긴 어렵지 않은가.
“여배우의 스캔들, 신기한 해외 토픽을 뒤적거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뭔가 시작하려고 마음먹고는 몇 시간 동안 웹서핑을 했다. 하지만 시작한 이유를 잊어버렸다. 점심 먹을 시간이다.”(44p)
소설 형식, 가상 인물
<Delete!>에서 저자 전병국은 소설 형식과 김인하라는 가상의 인물로 정보를 지배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는데 이런 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소설 형식을 통한 재미, 부드럽지만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엔 날카로운 독설을 아끼지 않는 김인하를 통해 자칫 명령이나 훈계로 들려 기분 나쁠 수 있는 책 전체의 내용을 차분하면서 진지한 가르침으로 보일 수 있게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구조는 지루하지 않게 쓱쓱 읽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Delete!>의 서가 위치
요즘 서점가에서 대세인 처세/자기 계발 서적과 <Delete!>를 비교한다면 어떨까.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강자가 되어 약자를 통한 잉여 가치를 어떻게 많이 착취할 지, 어떻게 하면 착취당하는 약자가 아니라 착취하는 강자가 될지, 자신보다 강한 착취자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의 환상을 주입하고 잠시 성공의 꿈에 취하게 만드는 처세/자기 계발 서적은 개인 집단,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데 <Delete!>는 개인과 정보의 관계에 대한 해결책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다르다. 그리고 다르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언급을 빼면 사상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별다른 주의 없이 읽을 수 있고 현재, 정보에 시달려 피곤하거나 미래의 계획을 짜는데 불필요한 정보들이 거슬린다면 <Delete!>를 통해 불필요한 정보와 필요한 정보를 구분하고 활용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Delete!>도 불필요한 정보일 수 있다
<Delete!>에서 김인하 교수는 멈춤–목표 설정–몰입–위임의 네 단계를 ‘정보의 운명을 즉시 결정 한다’는 원칙으로 가르친다. 각 단계를 1주일씩 실행하며 변화하는 제자는 마침내 정보의 불안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책의 뒷부분엔 ‘한 순간의 번뜩임’에서 끝나지 않도록 실천 워크북을 담고 있다.
다만 이미 정보에 시달리는 경험을 통해 자기 노하우를 가졌거나 확실한 목표를 갖고 그것만을 향해 몰입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Delete!>는 그 자체가 불필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시집처럼 자신의 상황에 맞게 읽어야 한다. 내 경우 몇 가지는 이미 알고 있던 ‘지혜’였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것이고 대부분 새롭게 배우는 지혜여서 그 지혜를 통해 앞으로의 계획을 짜 나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Delete!>의 오점 중 하나
저자 전병국씨는 <Delete!> 58페이지에서 얼마 전 <그리스 로마 신화 4권>을 출간한 번역가이자 신화학자인 이윤기씨의 “내 번역을 평가할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있지만 그럴 시간이 없어요. 이를 테면 <장미의 이름>을 분석해서 내 번역을 비판하려면 적어도 5개월은 걸릴 텐데, 우리나라엔 그런 노력을 들일 사람이 없어요.”라는 말을 인용했다. 그러나 <Delete!>가 출간되기 4년 전인 2000년 3월에 이미 철학자 강유원씨가 “<장미의 이름> 번역본 중 3백여 군데의 부적절한 번역, 빠져 있는 부분 및 삭제해야 할 부분을 지적했고, 이에 번역자 이윤기는 <장미의 이름> 신판을 다시 준비하기도 했다.” 강유원씨의 원고는 <장미의 이름 읽기>라는 책으로 2004년 출간되었고 <장미의 이름> 3번 째 개정판 하권의 끝엔 이윤기씨가 강유원씨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있으며 강유원씨가 지적한 부분이 간략하게 나와 있다. <Delete!>도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