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 / 오래된미래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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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한 자기 해석

시는 가까이하기 부담스러운 현학적인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인생을 살면서 안팎으로 느끼는 감흥을 갈고 닦은 언어로 유려하게 표현한 것이다. 시를 쓰는 이는 인생의 갖가지 상황, 이를테면 광활한 자연에 대한 숭고함, 사랑하는 이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누군가의 죽음, 희생에 대한 감흥을 표현하면서 그 감흥의 정서를 추스르고 읽는 이는 이런 감흥을 공감하는 동시에 그 감흥을 통해 상황에 대한 정서를 추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소주의 쓴 맛에서 인생을 느낄 수 있는 정도쯤 돼야 시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는 게 아니다. 시를 접할 때의 상황이 시에 대한 감흥의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동시처럼 학급에서의 우스운 상황이나 연필과 지우개 같은 일상적으로 자주 접하는 사물을 의인화한 시도 존재하는 것이다.


보다 깊은 감흥

‘뱀’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로 유명한데 이 시를 접하려면 현대 예술을 접할 때처럼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뱀은 길다’가 이 시에 존재하는 물질로서 가시적 언어의 전부다. ‘뱀’이라는 시의 존재는 중고등학교 재학시절 시에 대해 배우며 우스개로 “이런 시도 있다”고 말하는 선생님을 통해 처음 알았다. 졸업한 이후로도 이 시를 쓴 쥘 르나르는 안중에 없었고 오직 시를 생각하면 ‘뱀은 길다’만 기억에 남아있었다. 이런 ‘뱀’이라는 시를 이해하려면 쥘 르나르의 생과 그 배경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이해는 앞서 말한 것처럼 현학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감흥을 위한 개인적인 것이다.


시간이 흘러 ‘뱀’보다 더 짧은 시를 알게 됐는데 이 시는 아예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시적 언어는 없지만 그 감흥은 시대 상황과 맞물리는 울림으로 존재한다. 황지우의 <묵념 5분 27초>가 그것이다. 이 시는 제목만 있다. 왜 제목만 존재하는지 제목 자체에서도 알 수 있지만 시를 썼을 당시 시대 상황을 알면 그 감흥은 더 한다.


이렇게 시는 상황에 대한 감흥을 담아 언어로 노래한 것을 말한다.


치유와 쾌감

“시는 인간 영혼의 자연스런 목소리다. 그 영혼의 목소리는 속삭이고, 노래한다.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삶을 멈추고 듣는 것’이 곧 시다. 시는 인간 영혼으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 그 상처와 깨달음을. 그것이 시가 가진 치유의 힘이다”(138p)


“시를 쓰면서 나는 내 자신이 치유되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139p)


시를 쓰고 읽는 과정을 통해 낱말 하나하나의 상황에서 감흥을 느끼며 정서를 추스르는 것이다. 치유와 함께 시를 접할 때 느끼는 쾌감의 원인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쾌감은 시의 내용에 공감하고 언어 표현에 잠겨 짜릿하고 멍한 느낌이거나 세상 어떤 일도 해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일 수 있다. 이런 감흥의 쾌감은 기술적으로 갈고 닦은 언어의 표현과 시적 이야기 전개 속 반전, 상황의 애절함을 통해 전해진다. 이 세 가지가 잘 버무려진 시도 있고 한 가지만 느낄 수 있는 시도 있지만 모두 존재하지 않으면 어떤 감흥도 시에서 느낄 수 없다.


보다 깊은 감흥을 위해 시의 낱말을 분석하거나 한용운의 ‘님’이 국가를 상징한다는 현학적인 해석은 할 필요 없다.


“교사들이 분석해 주는 시를 들으면서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시를 곤충처럼 날개를 찢고, 더듬이를 잘게 부수고, 등껍질을 다 벗겨내 마침내 죽게 만드는 행위임을 느꼈다. 훗날 내 손으로 직접 시집을 사들고 와서 혼자만의 방에서 조용히 소리 내어 시를 읽었을 때, 비로소 시는 ‘나에게로 와서 하나의 의미’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시를 접하며 공감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시를 몇 번이고 소리 내 읽거나 쓴 시를 사랑하는 이에게 읽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접하고 느끼는 것이 시다.


싫어하는 시

좋은 시와 나쁜 시를 나누는 문학적 기준과 무관하게 나는 명령조로 쓴 시와 사회성을 잃고 방황하는 시를 싫어하고 멀리한다. 감흥이라는 정서적 기제에 취해 사회성을 잃은 시는 싸구려 명상 서적 같은 한 순간의 잡음일 뿐이다. 깨달음을 주려고 명령조로 쓴 시 또한 관중을 자꾸 의식하는 가수나 연기자처럼 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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