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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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은 레이첼 카슨이 “1962년 여름 동안 <뉴요커(New Yorker)>지에 연재했던 내용을 묶어 (같은 해) 9월에 발표한 책”이다. 이 책은 인간의 근대적 생활방식이 복합적인 환경문제를 초래했으며, 그 근대적 생활방식의 영위를 위해―농산물 생산량 유지를 포함해서―인간이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자연 생태계를 훼손하는 수준을 넘어 파괴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생태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등장한 화학물질이 우리 환경을 삼켜버리면서 전혀 새로운 공중보건 문제가 대두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류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 동안 위험한 화학물질과 접촉하게 되었”고,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사람을 제외하고 이런 오염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스스로 초래한 문제에 직면했다. 그리고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남산 입구에 있는 약수터에 들렀다. 친구는 약수터 한 쪽에 걸려있는 빨간 바가지에 졸졸 흐르는 약수를 받아 개운하게 마셨다. 아주 개운하고 시원해 보였다. 그러나 빨간 바가지를 제자리에 걸어놓는 순간 친구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불쾌한 듯이 아직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은 약수를 땅에 주르륵 뱉어내고는 침을 뱉었다. 바가지들에 밀려 <경고문>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대장균 검출, 음용 금지” 애초에 오염된 대기를 지나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를 산을 타고 내려오는 물을 마시는 게 찝찝한 나는 약수를 마시지 않았다. 친구가 그 약수를 마시기 전에는 나이 지긋한 노인 두 분이 시중에서 구입한 큰 생수통 두 병에 약수를 가득 채워 갔다.

생각해보면 이미 지구 생태계와 자연 환경 오염에 대한 문제는 복합적으로 크고 넓게 분포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경험들을 일일이 늘어놓는 것은 무의미하다. 레이첼 카슨은 이 책에서 생태계 파괴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 자문하면서 독성 화학물질의 잔류 허용량을 폐지하는 것, 식품의약국 조사관을 대폭 늘리는 것, 시장에서 거래되는 화학물질에 대한 교육 실시, 비화학적인 방법 개발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해결책이 근본적인 생태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보다는 독성 화학물질을 사용하게 된 초기의 배경 즉, 인간이 자연과 인간 자신의 유기적인 관계를 잊고 산업 활동을 하기 시작한 지점에 생태계 파괴의 근본 원인이 존재할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을 모르고 확장하며 “진실을 발겨야 할 과학이 ‘이익과 생산이라는 현대적인 신을 섬기기 위해’타협점을 찾고 있”는 상황을 놓고 레이첼 카슨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위와 같은 주먹구구식 해결책을 제시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의 흥미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책이 있다면, 현실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책도 있다. 《침묵의 봄》은 인간이 자연과 지구의 입장을 고려하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을 편집하는 편집자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라고 느낄 수 있을 때 최대한 빠르게 책을 출간해야 한다. 그리고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와 사건에 대한 경과 혹은 결과를 출판사 블로그, 홈페이지, 책의 개정판 등을 통해서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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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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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의 혁명’은 보다 큰 범주에서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수히 많은 사건들의 근본적인 원인 구조를 바로 보는 ‘사회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 경찰이 시민을 때리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시민이 경찰을 때리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본다면 서로 맞았으니 단순하게 공평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신문사들이 서로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가치판단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 문제에 대한 개인 및 단체들도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가치판단을 하게 된다. 이를테면 여름 땡볕과 장마 속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실에 대한 언론사들의 왜곡보도에 대해서 널리 알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사실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사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편파적인 왜곡보도를 서슴지 않는 언론사들의 보도를 수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역학관계는 변함이 없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실을 왜곡하는 것에 대한 질타가 아니라 그 사실을 왜곡하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밝혀내는 것이다.

개인의 좁은 범주에서 사람은 “믿음, 소망, 가치관”에 의해 특정 문제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게 된다. 개인의 좁은 범주가 엮여 사회라는 넓은 범주가 되면 그 사회의 주된 가치판단은 그 사회가 어떤 경제적 체제(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 경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 특정 문제에 관한 근본적인 원인은 물질적 관계, 즉 자본에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본을 소유한 자들의 ‘자본 권력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이 책 《신문 읽기의 혁명》의 핵심은 언론 자본의 권력 구조와 그 권력에 의한 신문 ‘편집’의 강제와 왜곡에 대한 이해다. 재미는 있지만 신문을 비롯해 언론에 대한 이 책의 다른 내용들은 핵심내용에 따른 분석과 신문을 주체적으로 읽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다. 이 책의 핵심이 담긴 문장을 내 나름대로 ‘편집’해서 인용하겠다.

“‘객관적 거리’를 두고 있다는 이미지 때문에, 우리는 종종 신문 또한 사회 속의 존재라는 당연한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그러나 신문은 그가 속한 사회 속의 여러 상호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더 나아가 신문은 언제나 그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긴밀한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실제 신문 기사를 인용하면서 언론 자본의 권력 구조에 따른 신문들의 기사 왜곡과 편파 보도를 비교적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신문의 권위에 눌려 맹목적으로 신문을 읽는 독자들에게 신문 읽기의 변화에 대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래서 10월 25일 토요일, 광화문 시내의 가판대에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을 구입해 표제와 기사 편집 시의 비중을 살펴보았다. 모든 신문의 1면 기사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기사는 “금융위기”로 인한 코스피 지수 1000선의 붕괴에 대한 기사였다. 다루는 사건은 같았지만 1면 표제는 각 신문마다 조금씩 달랐는데 가령 <조선일보>는 “공포가 <코스피 지수> 1000 무너뜨렸다”를 표제로 하고 있고, <경향신문>은 “코스피 대폭락 1000선 붕괴”를 표제로 했다. 분명히 <조선일보>가 사용한 단어와 <경향신문>이 사용한 단어는 차이가 있다. 1면 톱기사의 표제와 발맞춰 <조선일보>는 앨런 그리스펀이 자신의 이론에 허점이 있었고, 금융위기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기사의 표제는 “‘경제의 神’ 고해성사하다”로 했고 중간 제목은 “18년간 FRB 의장으로 군림했던 앨런 그리스펀…이젠 금융위기 부른 주범으로 美청문회선 온통 성토 · 비난…“백년 만에 한 번 있을 신용 쓰나미 저도 충격…잘못 있었습니다”로 했다. <조선일보>를 제외한 다른 신문들이 “그리스펀 반성”과 같은 표제를 쓴 것과 달리 <조선일보>는 “고해성사”, “군림”, “경제 위기를 부른 주범”, “…잘못 있었습니다”와 같은 선정적인 표제를 사용했다. 신문을 입체적으로 읽어보자면 1면 기사의 표제의 “무너뜨렸다”와 앨런 그리스펀에 대한 기사의 표제로 볼 때 <조선일보>는 마치 현재의 금용위기가 누군가에 잘못에 의해 초래된 것으로 보일 수 있게 왜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 2008년 10월 25일



<경향신문> 2008년 10월 25일


시간을 조금 더 할애하면 위와 같이 표제만을 비교하는 단편적인 비교가 아니라 전체 지면과 사설의 관계, 언론사 자본 권력 구조까지 고려한 입체적인 신문 읽기가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렇게 신문을 읽는 이유는 왜곡되고 편향된 가치판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 《신문 읽기의 혁명》에서 제시한 문제 해석의 틀은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한 기본 틀로 적용할 수 있다. 신문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도 이 책의 핵심 주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그 때문이다. 편향된 보도와 사실 왜곡을 서슴지 않는 언론은 혐오스럽다. 악취가 나는 언론 정보의 쓰레기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는 각자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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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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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로리딩’에 적극 동참하고자 하는 독자다. 이 서평은 순수하게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서평을 넘어 내 개인적인 책 읽기 방식과 읽을 책을 선정하는 과정 그리고 텍스트라는 사고의 유산에 대한 내 반성이 담긴 글이 될 것이다. 더불어 히라노 게이치로가 주장하는 슬로리딩은 무엇이며, 효율적으로 읽을 책을 선정하는 방식은 무엇인지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내 생각을 쓸 것이다.

기존의 텍스트에 대한 주장들이 텍스트의 내용 이해에 치중했다면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리딩은 텍스트의 내용 이해뿐 만아니라 내용 이해를 돕는 ‘읽기 방식’을 도모했다는 차이와 장점이 있다. 저자 히라노 게이치로에 따르면 ‘슬로리딩’은 “한 권의 책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는 것”이다. 텍스트를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삶의 다양한 굴곡에 텍스트에서 비롯되는 상황들을 적용해보는 예행연습과 같은 단계까지 고려함과 동시에 자칫 한 권의 책에 빠져 잃기 쉬운 현실성과 주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비판적 읽기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슬로리딩이라고 히라노 게이치로는 주장한다. 이런 텍스트를 장악하고자하는 독자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책 읽기의 방식은 보통 다양한 주제의 많은 책을 빠르게 읽고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식인 ‘다독’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히라노 게이치로는 다독과 속독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으며 한 권을 공들여 읽는 것이 다독보다 텍스트에 대한 장악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느긋하고 여유롭게 한 권을 공들여 읽고 읽기가 지겨워지면 바로 책을 내려놓는 읽기 방식인 것이다.

느긋하고 여유롭게 깊숙이 들여다볼 한 권의 책을 어떻게 선정해야 할까. 읽을 책을 선정하는 과정은 지인(교수와 선생을 포함)의 추천, 출판사의 홍보를 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런 책들은 대개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호기심, 흥미와는 무관한 것들일 때가 많다. 이를테면 내 경우에 서점에서 세계화에 관심을 갖고 책을 찾아보다가 더 눈에 띄는 다른 주제의 책을 읽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결국 세계화에 대한 내 호기심과 흥미는 내 안에 응어리진 채로 남아 조급한 책 읽기를 부추긴다. 물심양면을 낭비하지 않고 책을 선정하는 방식은 이렇다. 자신의 호기심과 흥미가 동하는 책을 구입하고 그 책에 등장하는 그 책에 영향을 준 책 혹은 책의 저자가 흥미롭게 읽고 소개하거나 추천한 책, 그 책의 주제와 맞물려 있는 다른 주제의 책들을 스스로 찾아서 읽는 것이다. 책은 하루에도 몇 십 권씩 쏟아져 나오지만 자신의 호기심과 흥미에 주의를 기울여 책을 선택하고 읽어나간다면 그 한 권의 책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리딩은 비단 책 읽기뿐 아니라 인간관계나 여행 같은 상황에도 얼마든지 적용 가능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과 피상적이고 유연한 관계를 맺느냐가 한 사람 대인관계의 척도가 되고 있고, 얼마나 오래, 먼 곳을 다녀왔느냐가 여행의 질적, 양적 충만함의 척도가 되는 시대에 한 사람을 알아가고 그 사람과 깊이 사귀는 것, 한 곳에서 그 곳만의 정취를 느끼는 것은 훌륭한 정신적, 물질적 유익함으로 남을 것이다.

한 사람을 깊이 사귀고 그 사람에 대해 정확히 알아가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한 권의 책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읽을 책을 선정하는 과정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책을 읽고 나누는 담론의 상황에서 책 이외의 자기 삶을 토로하거나 자위하는 것이 아닌 책에 담긴 텍스트의 이해를 나누는 것에 집중할 수 있고, 생산적인 결론을 도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반적으로 한 권의 책에 대한 담론의 상황에서 책 내용 이상의 것을 알기 위해 저자의 현재 상황, 대립되는 주장이나 견해가 담긴 책 혹은 그 책의 주제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런 담론의 범주를 벗어나는 습관이 오히려 한 권의 책에 대한 생산적인 담론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책 이외의 것은 책에 담긴 텍스트를 정확히 요약하고 상황을 만들어 토론한 이후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앙꼬 없는 찐빵처럼 텍스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담론은 불필요한 시간낭비가 될 뿐이다.

슬로리딩을 주장하는 책을 읽으면서 속독하고 있는 나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양과 피상적인 이해에 만족하게 되었다. 정확한 이해와 응용, 다른 사람에게로의 전달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차분히 읽고 꾸준히 읽어야 한다. 읽어서 남 주고 읽은 이에게 배워야 한다. 느리게 사는 것은 손해 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사는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지음), 김병욱(옮김), 뿌리와이파리, 2008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348978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지음), 이언숙(옮김), 청어람미디어, 2001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72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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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3 - 나의 식인 룸메이트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2
이종호 외 9인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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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3>은 10개의 한국 공포 소설로 이루어져 있고, 10개의 소설 중 첫 번째 소설이 신지수의 「나의 식인 룸메이트」이다. 나는 이 서평에서 「나의 식인 룸메이트」의 줄거리 전부는 다루지 않을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끝까지 잃지 않은 관심의 초점은 오로지 ‘공포는 무엇인가’였다. 공포는 어디서 비롯되고 어떻게 발생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찾기 위해 「나의 식인 룸메이트」를 충분히 오독했다. 「나의 식인 룸메이트」의 모든 상황이 오독한 내 추측과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추측은 공포의 일면을 드러낸다.

「나의 식인 룸메이트」에서 주인공 나의 룸메이트인 식인 괴물은 주인공 나의 또 다른 자아임을 드러내는 표지들을 소설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식인 괴물이 주인공 나의 또 다른 자아임을 밝히는 과정은 이 소설이 공포 소설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괴물의 무자비한 살육이 주는 공포보다는 주인공 나가 현실에서 느끼는 감당하기 힘든 증오와 분노를 식인 괴물이라는 다른 자아로 뿜어내고 행동하는 과정이 더욱 공포에 가깝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서, 주인공 나는 회사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생존의 위협과 자신보다 잘난 동료에게 느끼는 열등감으로 꽉 찬 불안과 증오의 인생을 살고 있다. 술에 취한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자신의 오피스텔 앞에 도착한다. 그리고 나는 자신의 손으로 열쇠를 돌려 자신의 오피스텔 문을 열고 식인 괴물과 처음으로 대면한다. 이는 주인공 나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와의 첫 만남을 상징한다. 그리고 나는 직접 열쇠를 돌렸다. 즉 불안과 증오를 이기지 못하고 또 다른 자아에게 자신을 내주고 말았다. 이는 주체적이라기 보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단서, 식인 괴물이 주인공 나에게 말한다. “내가 원하면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다. 그리고 어디든 갈 수 있지. 넌 나를 벗어날 수 없어.” 자아는 분리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는 몸체는 주인공 나 하나기 때문에 나 이외에 누구도 그 식인 괴물을 볼 수 없다. 그리고 주인공 나는 자신에게서 도망갈 수 없다.

세 번째 단서, “내 자신이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괴물과의 계약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주인공 나가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식인 괴물과의 관계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인공 나가 취한 상태에서 열쇠를 돌리는 스스로의 행동을 통해 식인 괴물과 만났을 때 식인 괴물은 이미 한 사람을 먹어 입가에 시뻘겋게 피가 묻어 있었다. 그 피는 증오와 분노를 이기지 못한 주인공 나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식인 괴물에게 먹혔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나와 식인 괴물은 애초에 계약관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공포

일본 작가인 이즈미 교카의 「외과실」이라는 작품에서 백작 부인의 그 지독한 인내의 감정과 행동은 공포를 자아낸다. 공포는 순간적인 위협과 잔인함이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아득함과 답답함이다. 역설적으로 그 아득함과 답답함은 간결한 상황에서 비롯된다. 어떤 방법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한 상황이 그것이다.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은 증오와 분노에서 비롯되는 생명의 위협 또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인내에서 시작한다.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공포와 직접적인 공포는 다르다. 간접적인 공포는 발생 이유가 위와 같지만 직접적인 공포는 생명의 위협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생명의 위협을 제외한 공포들은 모두 허구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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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거짓말 사전 - 남자들이 자주 쓰는 사악한 거짓말을 파악하는 법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 지음, 김희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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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거짓말 사전’이라는 제목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남자들의 거짓말 유형과 그 거짓말이 꼭 남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 ‘유치하고 한심스러운 그러나 귀여운 남자들의 거짓말’ 혹은 ‘인간들의 덜떨어진 거짓말’ 정도가 이 책의 제목으로 비교적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시 제안한 제목처럼 이 책은 가볍고 유쾌해서 책 속 내용 이상의 함의를 찾거나 정의하는 건 시간낭비일 수 있다. 다른 함의를 찾는 것보다 저자 베리시무의 문장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 책을 가장 쉽게 이해하고 즐기는 방법이다. 베리시무는 “우리 남자들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만일 어쩔 수 없이 한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들, 여자들을 위해서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해 “그 덜떨어진 소년이 바로 당신이다. 지금 당신이 보이고 있는 그 모습은 꾸며진 모습이다. 당신은 바보짓을 잠시 쉬고 있는,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바보 종합 세트’일 뿐이다. 유치하고 한심스러운 것만이 남자의 ‘진정한’ 모습인 것이다.”라는 끝 문장으로 이 책을 간단하게 정의하면서 독특한 일관성을 유지하며 책을 끝마치고 있다. 베리시무는 남자들의 허영심과 자존감의 유지, 보수에서 비롯되는 거짓말이 얼마나 유치한 것인지 그리고 그런 거짓말을 하는 남자가 얼마나 바보 같은지 반어적 표현들로 비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거짓말을 하다보면 내가 하는 거짓말이 진실이라고 착각하고 결국 그 거짓말이 진실이라고 믿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접하는 세계 또한 입력되는 거짓말(선택적 지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을 ‘선택적 지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선택적 지각의 과정에서 자신에게 거짓말을 입력하게 되는 것이다. 이 왜곡된 상태로 입력된 거짓말은 입으로, 글로 출력될 때도 거짓말이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출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 가지 간단한 이유가 있다.
1. 눈앞의 난관을 피하기 위해
2. 귀찮아서
3. 이상적인 내 모습에 가깝고 싶어서
4. 타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네 가지 거짓말을 하게 되는 이유를 보면 결국 거짓말은 어떻게 둘러대고 핑계를 대봤자 타인을 위해서(여자들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거짓말은 온전히 자기만족을 위한 욕구에서 비롯된다. 거짓말로 ‘꾸며진 모습’에 만족하고자 하는 욕구 자신의 이상적인 욕구와 현실의 불일치, 그 간극을 메워주는 것이 거짓말이고 그 간극을 메우려는 욕구가 거짓말을 출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욕구에서 비롯되는 거짓말이 있다면 선의의 거짓말 혹은 일상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자잘한 상황들을 유연하게 비껴나가기 위한 거짓말도 있다. 그만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상당히 왜곡되어 있으며, 그 왜곡된 상황들에 잘 대처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애인과 데이트가 있을 때, 사람들은 괜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일이 있다거나 친구를 만난다거나 하는 일상적인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더 이상의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는 과학기술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처럼 거짓말은 현실 상황들을 더 비틀어 아프게 만들 뿐이다. 선의의 거짓말이든 악의의 거짓말이든 거짓말이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는 지점들이 있게 마련이며 이 책의 첫 이야기 「오늘 밤 저녁 초대는 정말이지 가고 싶지 않군」에서 그 지점을 찾을 수 있다.

가볍게 읽고 유쾌하게 웃을 수 있으며, 한 번쯤 우스개로 써먹을 수 있는 상황들이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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