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비가 차분하게 공을 돌리는 영상을 보며 내게 물었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 사람인 걸까? 삶의 바깥에서만 볼수 있는 장면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행은 나를일상으로부터 분리해줄 것이고, 비로소 한 걸음 뒤에서 나를 관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뒤로 여행을 몇 번 더 했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았다. 나는 대체 누구일까? 이 여행이 끝나면 정답을 찾을 수있을까? 종착지에 원하는 모양이 아닌 내가 서 있을지도모른다. 여행의 미묘한 매력도 거기에 있다고 느낀다. 기대하지 못한 것들을 마주하는 일. 위기의 순간에 기댈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없다는 사실이 주는 긴박감. 벼랑끝에 몰려야만 드러나는 가장 나다운 행동들. 어쩌면 나는 나를 관찰하기 위해 배낭을 다시 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P57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규칙에 균열을 내보고 싶었던 거다. 틈을 벌리고 그 속에 들어가 구경한다. 내가 너의 곁에 있고 싶어서 지키고 있는.
언의 약속은 무엇이었나. 혹은 감추고 있는 본성은 어떤 것이었나. 때로 스스로 낸 균열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곤 한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서 버려야 했던 행동이나말, 감정이 쌓여 무겁게 삶을 짓누를 때 배낭을 싸는 이유다. - P106

"이제 돌아서면 나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 말아요. 모 두 내가 자처한 일이에요. 대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잘해주세요. 공항에서 지내는 동안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보세요. 세상은 알아서 돌아갈 테지만, 그 안에서 변하는 건 늙어가고 죽어가는 사랑하는 사람들뿐이니까요. 당신은 후회하지 않기를바라요. 신이 늘 그대와 함께하기를." - P227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출국장을 지나며 작은 인생을 살기로 마음 먹었다. 선택이란 건 오묘해서 스스로 결정하는 것 같지만,
주변 환경이나 시대의 흐름에 영향 받기 마련이다. 온전한의지와 선택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단지그 순간에 최선의 선택을 고려할 뿐이다. 그러니 언젠가 삶을 돌아보며 나에게 물을 때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때 그래야만 했나?
그래야만 했다. - P230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일은 이곳에 올라오지 않을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은 잊을 수 있지만, 그리움은차곡차곡 쌓인다. 언덕에서 내려오며 무언가를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봐야 몇 개의 문장과 단어로 하루를 쉽게 함축해버리고 말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늘너머에 있는, 시선이 닿지 않을 곳을 평생 바라봐야 할 운명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바라봐야 할 하늘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더 가까운 그리움이 가장 멀리 있는 그리움부터 잡아먹을 테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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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키하라 씨, 당신은 지금 ‘어딘가로 가고 싶어하고 있어요. 지금 이곳‘에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고 말이죠. 하지만 당신은 ‘이곳‘을 떠날수 없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상처를 안고 사는 거죠. 다리가 아프면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되니까. 아무 데도 안 보내려고 안 가도 된다고, 뇌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 P167

아무리 소중해도 어차피 사라지고 없는 것에 대해 묻는다는 것은 누군가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어째서 지금 내게 없는지를 원망하는 것과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제 놓아버리자고 생각한 것이다. 이제 와 누군가를 원망해도 이미 사라지고 없는 그곳에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기때문이다. - P179

"이번 일로 깨달았지요.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는 걸 내가 노인이란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손자 놈이 다 커서 혼자 살아갈 수 있을때까지는 팔팔하게 살아 있을 자신이 있었는데, 이렇게 맥없이 쓰러질줄은 전혀 몰랐다오." - P191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삶이라는 여행은, 가족이라는 여행은, 영원하다.
비록 잡은 손을 놓고 작별을 고하더라도 우리들은 분명 같은 하늘을 여행하는 여행자, 한 무리의 물고기인 것이다. 눈을 감는 날, 나의 눈은 아이들의 눈을 통해 같은 시선으로 지평선에 새로이 떠오르는 태양을 다시 볼 것이기에 - P206

마지막 순간은 살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없이 찾아온다. 이 소설-그 마지막 순간에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언젠반드시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세상에 사는 모든 이를 위한, 평범한속에 반짝이는 순간을 그린 이야기였다.
- P208

고양이잖아요. 어느 날 사라지고 없더라고요. 저한테 츠키하라 잇세이는 그 길고양이였어요. 가끔 겹쳐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잇세이가 그만두고서야 생각했어요. 먼저 말할걸 그랬구나, 하고요. 제가 그런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 말을 걸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하고요."
후회는 먼저 오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다며 츠카모토가 웃었다.
"먼저 말을 걸었어야 했다………" - P214

아마 자신도 누군가가 지켜주길 바랐던 것 같다. 커다랗고 따스한 손을 가진 누군가가. 이젠 괜찮아, 내가 지켜줄 테니 울지 마, 그렇게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주변에는 그런 ‘누군가‘도 ‘영웅‘도 없었다. 잇세이도 고양이를 지켜주지 못했다.
"이제 괜찮아." - P237

가족과 촬영 현장 식구들에게 속으로는 늘 고마워하고 있었어요. 모두를 사랑했고 신뢰했거든요. 혼자 각본을 쓰면서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릴 정도로요. 하지만 저는 그것을 표현할 줄 몰랐어요 아니, 그냥 게을렀던 거예요. 누군가를 위해 말을 하는, 자신의 수고와 시간을 아끼고있었던 거예요."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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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동굴에서 꺼내줄게.‘ 옛날에 이런 말을 한 친구가 있었다. 누가 봐도 ‘너를 위해주고 있어‘라는불편한 말투. 선량한 친구를 자처했지만, 그건 누군가에게 내줄주먹만 한 자리조차 없는 정민에게는 곁을 내놓으라는 협박과도 같았다.
"그런데 동굴도 나쁘지 않잖아요. 그렇죠?"
여자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 정민은 여자에게서 이유 모를안전함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손으로는 여전히도자기를 감싸 쥔 채로, - P20

"매번 같은 시간에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 날씨와 계절에 따라 돌봐야 할 기물이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배우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아까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요.  - P115

중심 잡기라는 건, 어쩌면 가장자리부터 살펴야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동안 정민은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다. 쉽게손을 놓았고, 쉽게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말 한마디에도 토라졌으며 깊은 굴속에서 나오지 않았고 다가오는 사람을 경계했다. 타인에게 내어줄 주먹만 한 공간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촘촘히 걸어놓은 외딴 전시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시선을 받지도 못하고 팔리지도 않는 마음들은 정민의 전시실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 P130

그런데 그곳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맥락 없는 사건의 연장선과 같았다. 마치 점묘법으로 전혀 다른 색들을 마구잡이로 찍어냈지만, 작업을 다 마치고 열 발짝 뒤로 물러서 작품을 봤을때 하나의 고즈넉한 풍경이 나오는 것과 같았다. 때로는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사건이 불가항력적인 순간의 감정으로 인해 쉽게 연결될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 원인과 결과로 사이좋게 짝을 이뤄 그다음 걸음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다. ‘낙관‘과 ‘글‘처럼, - P178

기식은 자기가 가진 비슷한 무게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골롤히 생각했다. 상실세스푼과 죄책감 두스푼, 막막함 한꼬집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지긋지긋함 반 컵도. 이런 것들이 잘 버무려져 씹을수록 텁텁한 이야기가 기식에게도 있었다. - P182

그저 두려웠던 것이다. 난독증이 나으면, 다시 그 사무실로 돌아가 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정민은 자신의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것도 두려웠지만, 지극히 정상이 되는 것도 두려웠다. 병을붙들고 있는 것은 아직 조금 더 쉬어도 된다는 허가증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정민은 ‘쉼‘에 대해 어떠한 허락도 필요치않았다. 언제까지 쉬고 언제부터 일어설지는 자신이 정할 일이었다. 자신의 속도를 헤아려 스스로 휴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을 때야말로 사람은 진정 성숙해지는 걸지도 몰랐다. - P186

"저도 제가 선택하고 싶어요. 무엇이 됐든요."
준의 시선이 점점 땅으로 향했다.
"내가 남들보다 길게 공부하고 헤매면서 깨달은 게 뭔 줄 알아? 길은 절대 한 번의 선택으로 좁혀지지 않는다는 거야. 지금의 입시는 어린 나이에 벌써 길을 확정 지으라는 게 아니야. 오히려 길을 넓혀 주는 시작일 수 있어. 넌 앞으로 더 많은 선택을 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지금의 선택을 섣불리 판단하지 마. 멈추지 않고 나아가기만 한다면 네가 원하는 샛길이 분명 나타날 거야. - P198

"그건 루저들의 자기합리화 아닌가."
지혜가 자조했다.
"자기합리화라니! 내 경우만 봐도 그래. 나는 지금의 자리에서 행복하기 위해서 ‘적당히‘ 하기로 했어. 주변의 소중한 사람과 나 자신을 챙길 수 있을 만큼 적당히 바쁜 직장에서 일하고적당히 벌고, 적당히 즐기고………. 이런 날 보고 남들은 욕심없다고 해. 그런데 어쩌면 ‘적당히‘라는 게 가장 큰 욕심이지 않을까? 나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적당히‘라는 선을 지키기 위해서 힘껏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거거든. 이건 선택의 문제야."
- P206

"도자기를 굽는 건 마음을 굽는 것과 같아요. 뭉툭하고 못생긴 흙을 손으로 다듬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수록 예뻐지고소중해지죠. 꺼내 보기도 싫은 못난 마음도 계속 시선을 주면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보이잖아요. 미움만 있는 줄 알았던 마음 안에 애정과 연민...……… 다양한 감정이 꾸깃꾸깃 숨어 있어요. 그러면 그 못난 마음도 소중해지는 순간이 와요." - P212

"주란아, 나는 이미 동굴에서 나오는 법을 알아 나오는 날을미루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닳을까 봐,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어. 그러니 동굴에서는 내가 알아서 나올게. 혼자 나오는 건 아니니까이제 내 걱정 하지마. " - P218

둘은 너나 할 것 없이 머릿속으로 고작 세 계절 동안 자신들에게 일어난 변화들을 일렬로 나열했다. 그 변화들은 원인과 결과가 불분명해서 일렬로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정리되지 않았다. 깊은 생각은 잠시 넣어두고, 이 변화를 어떻게 하면 더 즐길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 축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로 했다.
이 변화를 누리기만 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했다.  - P220

유독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날이 있다. 지금쯤 머리를쥐어뜯으며 다른 신인 작가를 물색하고 있을 편집장도, 또 다른후배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을 구 작가도, 기식과 통화를 하는정민도, 말을 잔뜩 하고 싶은 날이었다. - P248

정민은 오랫동안 꽉 쥐고 있던 주먹에서 힘이 스르륵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세상이 자신에게 매정하다고, 가끔은 폭력적이기까지 하다고 분통을 터트렸지만 결국 그녀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장 심한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감정에 자해하는 것만큼 매정한 것이 있을까. 자신의 마음에 스스로 칼질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이 있을까. 마음을 끄집어내어 구석구석에 말라붙은 악취 나는 땀을 말끔히 씻어낸 것 같았다. 그러자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삶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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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비사페트에서 지낸 경험에 의하면 새의 눈으로 조망하는 대신 벌레의 눈으로 아래에서 위를바라보고 이런 관점을 결합하려는 노력이 중요할 때가 있다. 이렇게 지역적이고 수평적인 집중연구를 통해상황을 3차원으로 탐색하고 개방형질문을 던지고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고민하는 사고도 의미가 있다. 다른 사람의 세계를 체화하고 공감하는 것도 가치가 있다.  - P54

ㅆㄱ.
그래서 인류학 시야가 중요하다. 인류학의 한 가지 장점은 낯선 ‘타자‘에 대한 공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것이다. 또 하나의 장점은 인류학이 낯익은 것(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낯익은 것‘과 ‘낯선 것‘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문화적 차이는 고정된 박스권이 아니라 변화하는 스펙트럼상에 존재한다. 하지만 핵심은 이렇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낯익은 것과 낯선 것이 어떻게섞여 있든, 항상 잠시 멈추어 니스의 금융인들이 묻지 않은 단순한 질문은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 문화에 대한 완전한 이방인으로, 혹은 화성인이나 어린아이로 들어온다면 내게는 무엇이 보일까?  - P121

나는 유일한 해법으로 언론이 인류학적 방법론을 빌려와서 인류학에서 ‘더러운 렌즈‘ 문제라고 일컫는 현상, 곧 저널리스트가 배양접시 위의 현미경(중립적이고 일관된 관철도구)처럼 굴지 않는 현상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나는 저널리스트들이 네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첫째, "우리의렌즈가 더럽다는 점을 인정한다. 둘째, 우리의 편향을 인식한다. 셋째, 세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해서 편향을 상쇄하려고 시도한다. 마지막으로 앞의 세 단계를 거쳐도 렌즈가 완벽하게 깨끗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명심한다."우리는 (나는) 웃지 말고 사회적 침묵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 P209

그런데 베운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집단으로 활동하는가? 어떻게 의식과 상징을 통해 공통의 세계관을 구축하는가? 어떻게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세상을 탐색하는가?
베운자는 금융인이나 경영인들이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인류학의 두 가지 개념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이다. 우리는 모두 사회적 패턴과 물리적 패턴의 산물이고이 두 요인이 서로를 강화한다는 개념이다. 다른 하나는 ‘센스-메이킹(sense-making)‘ 개념이다. 이를테면 사무실의 직원들과 다른 모두)이 결정을 내릴 때는 모형이나 지침이나 합리적이고 순차적인 논리만을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상대하는 다양한 자원에서 집단으로 정보를 끌어낸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아비투스와 연결된 의식과 상징과 공간이 중요하다. 배운자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사무실에서 하는일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세상을 어떻게 탐색하는지가 관건입니다."  - P243

금융인이라면 과학과 복잡한 수학을 기반으로 한 금융모형을 근거로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한다. 특히 ‘양적‘ 금융 전략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들이 어디에 앉는지가 왜 중요할까? 센스 메이킹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이 섰다. 트레이더들은 시장을 ‘항해‘ 하면서 사실상 두 가지 방식으로 사고했다.
간혹 21세기의 항해사가 GPS를 사용하듯이 모형을 기준으로 계획을 세우고 미리 정한 경로를 따랐다.
하지만 다른 광범위한 신호와 정보를 흡수하여 시장을 ‘항해‘ 하기도 했다. 트레이더이 화이트보드 앞에옹기종기 모여 있거나 바에서 어울릴 때 센스 메이킹이 일어났다. 또 서로의 대화를 엿듣거나 옆에 있는사람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을 때도 센스 메이킹이 일어났다. 오르가 제룩스의 수리기사들에게서 "진단은 서사과정"이라는 점을 깨달았듯이 베운자는 증권사의 "수다"가 "트레이더가 금융 모형을 사용할 때필연적으로 부딪히는 불확실성에 능숙하게 대처하는 데 필요한 사회 체계"를 형성해준다고 판단했다.
……………금융모형은 ‘카메라‘이기 보다는 시장의 ‘엔진‘이다. 사람들이 금융모형의 배후에서 거래하며 가격을움직이기 때문이다. 모형이 추적하는 대상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게다가 모형은 현지의 ‘물질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으므로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265쪽~266쪽 - P265

가상회의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온라인으로 코드를 작성하는 것처럼 기술관련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가 아니었다. 주요 문제는 엔지니어들이 주변 시야를 놓치고 대면회의에서 나오는 우연한 정보교환의 -회를 놓친다는 점이었다. IETF의 한 회원은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다. "온라인은 효과적이지 않다. 만나서회의할 때는 회의 자체만이 아니라 회의 이외의 사교 행사에서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른회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연한 만남과 잡담이 일어날 복도가 없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직접 만나야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
이들은 또한 허밍 의식도 치를 수 없었다. 회의가 가상공간으로 옮겨가자 응답자의 3분의 2가 가상공간에서 거친 합의를 끌어낼 방법을 찾고 싶다고 답했다.  - P272

하지만 그날 루니는 주주총회에서 시위자들의 항의와 질문을 경청하다가 그중 한 명이 명확히 의사를전달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시위자가 비판하는 이유를 알아보고 잠시나마 그 사람의 눈으로세상을 보고 싶어서 만남을 요청했다.
그래서 우리는 점심 식사 자리에서 조용히 만났고, 저는 그에게 왜 우리를 싫어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들었습니다. 서로 언성을 높이지 않았어요. 그분이 상황을 설명해줬어요. 대부분 제가 동의하지 않는 내용이었어요. 제가 생각해본 적도 없는 내용이었죠. 많이 배웠어요. 276쪽그는 이후에도 그 시위자를 대여섯 번 더 만났다. "그분의 말에 전혀 혹은 대부분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분의 말을 들어보고 그분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분이 제 관점을 일부 바꿔놓았어요.  - P277

그렇다고 이런 모든 모험을 위선으로 볼 수 있을까? 많은 저널리스트가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이런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승리를 거둔 셈이라고 보았다. 역사적으로 혁명이 일어나는순간은 소수의 헌신적인 활동가들의 어떤 대의를 품었을 때가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가 변화를 거부하는것은 위험하거나 무의미하다고 판단하는 때다. 투자와 비즈니스 세계의 주류가 활동가를 자처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조류에 이끌려가기 시작하자 ESG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 균형이 깨지고 급속도로 특정현상이 퍼지거나 우세해지는 현상)에 가까워지고 있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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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세월이다. 친구 역시 함께 보낸 시간과 소통의깊이로 헤아려야 한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바다 위반짝이는 윤슬같이 가벼운 대화로 깔깔거릴 수 있는 친구가있고, 알고 지낸 시간은 짧아도 마음속 깊은 얘기를 거리낌없이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있다. 모두 나를 양희은답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사람들, 더 챙기고 아껴주며 살 작정이다. - P30

집에 계시는 남의 집 엄마들이 부럽기만 하다가 머리가크고 나서야 엄마는 비교 대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대로받아들이고, 감사드려야 한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 없는 세상에서 엄마마저 없었다면 우리 세자매가 어떻게 살아낼수 있었을까. - P46

후회가 남지 않는 헤어짐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일까? 몇몇 친구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속에 담고 있었던이야기를 다 말했다고 한다. 자신이 속 썩였던 지난 일들을이야기하며 용서를 구하고,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그리고 엄마가 내 엄마라서 좋았다는 말을 전했단다. 모든 하고픈 말을 전하고 나니 가슴에 맺힌 것이 없더란다.
나도 울 엄마랑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문제는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된다는 거다.  - P52

김기운 아저씨와신상사아저씨, 이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은 희망 없던 깜깜 절벽의 시절 느티나무 같은 위로였다.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없다고, 뭐 엄청 대단한 사람이 우리를 위로한다기보다 진심 어린 말과 눈빛이 우리를 일으킨다는 걸 배웠다. 세상천지 기댈 곳 없고 내 편은 어디에도 없구나 싶을 때, 이런 따뜻한 기억들이 나를 위로하며 안 보이는 길을 더듬어 다시한 발짝 내딛게 해준다. - P67

가만히 보면 눈물도 여러 가지다. 슬프지 않은데도 눈물이 마냥 흐를 수 있고, 기뻐도 울 수 있고, 스스로 기특하고 대견한 나머지울 수도 있다. 문제는 객석과의 공명이고공감이다. 객석과 따로 놀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 눈높이를맞추는 마음으로, 노래가 가슴을 울리며 계속 메아리칠 수있다면………… 그게 바로 노래가 가진 힘일 것이다. - P99

지지 않을고백하건대, 별나게 겪은 그 괴로웠던 시간들이 내가세상을 보는 시선에 보탬을 주면 주었지 빼앗아간 건 없었다. 경험은 누구도 모사할 수 없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까. 따지고 보면 ‘결핍‘이 가장 힘을 주는 에너지였다. 이왕이면 깊게, 남과는 다른 굴절을 만들며 세상을 보고 싶다. - P117

털어내면 아무것도 아닌 상처, 비슷한 아픔 앞에 서면차라리 가벼울 수도 있는데 ・・・・・・ 상처는 내보이면 더 이상아픔이 아니다. 또 비슷한 상처들끼리는 서로 껴안아줄 수있으니까 얘기 끝에 서로의 상처를 상쇄시킬 수도 있다.
같은 값을 지워나가듯 그렇게 상처도 아문다.
왜 상처는 훈장이 되지 못하는 걸까? 살면서 뜻하지 않게 겪었던 아픔들을 수치스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대체 어떻게 아무런 흉도 없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은 제 겪은 만큼‘이란 말이 있다.
나는 내가 가진 상처 덕분에 남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다. 그러한 눈과 마음이 있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같다. - P138

용기 내어 뛰쳐나오는 결단을 내린다른 편지를 보면서 ‘아 어쩌면 이게 답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자기 사연을
‘남의 목소리로 들으면서 객관화가 되고,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가 그 얘길 들으면서 공감하며 응원해주는 것을 경험한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파장이 서로를 연대시키며 거대한어깨동무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세상을 묶어주는 띠가 되어 기댈 곳 없는 마음을 잡아주기도 한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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