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비가 차분하게 공을 돌리는 영상을 보며 내게 물었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 사람인 걸까? 삶의 바깥에서만 볼수 있는 장면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행은 나를일상으로부터 분리해줄 것이고, 비로소 한 걸음 뒤에서 나를 관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뒤로 여행을 몇 번 더 했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았다. 나는 대체 누구일까? 이 여행이 끝나면 정답을 찾을 수있을까? 종착지에 원하는 모양이 아닌 내가 서 있을지도모른다. 여행의 미묘한 매력도 거기에 있다고 느낀다. 기대하지 못한 것들을 마주하는 일. 위기의 순간에 기댈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없다는 사실이 주는 긴박감. 벼랑끝에 몰려야만 드러나는 가장 나다운 행동들. 어쩌면 나는 나를 관찰하기 위해 배낭을 다시 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P57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규칙에 균열을 내보고 싶었던 거다. 틈을 벌리고 그 속에 들어가 구경한다. 내가 너의 곁에 있고 싶어서 지키고 있는.
언의 약속은 무엇이었나. 혹은 감추고 있는 본성은 어떤 것이었나. 때로 스스로 낸 균열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곤 한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서 버려야 했던 행동이나말, 감정이 쌓여 무겁게 삶을 짓누를 때 배낭을 싸는 이유다. - P106

"이제 돌아서면 나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 말아요. 모 두 내가 자처한 일이에요. 대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잘해주세요. 공항에서 지내는 동안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보세요. 세상은 알아서 돌아갈 테지만, 그 안에서 변하는 건 늙어가고 죽어가는 사랑하는 사람들뿐이니까요. 당신은 후회하지 않기를바라요. 신이 늘 그대와 함께하기를." - P227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출국장을 지나며 작은 인생을 살기로 마음 먹었다. 선택이란 건 오묘해서 스스로 결정하는 것 같지만,
주변 환경이나 시대의 흐름에 영향 받기 마련이다. 온전한의지와 선택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단지그 순간에 최선의 선택을 고려할 뿐이다. 그러니 언젠가 삶을 돌아보며 나에게 물을 때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때 그래야만 했나?
그래야만 했다. - P230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일은 이곳에 올라오지 않을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은 잊을 수 있지만, 그리움은차곡차곡 쌓인다. 언덕에서 내려오며 무언가를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봐야 몇 개의 문장과 단어로 하루를 쉽게 함축해버리고 말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늘너머에 있는, 시선이 닿지 않을 곳을 평생 바라봐야 할 운명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바라봐야 할 하늘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더 가까운 그리움이 가장 멀리 있는 그리움부터 잡아먹을 테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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