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오기 전에 먼저 와서 공부하고 있던 대학원 동기한테 물은 적 있다. 거긴 평균 한달 생활비가 어느정도 드냐고. 그때 동기녀석의 대답은... 수준(?)에 따라 많이 차이가 난다..였다. 그땐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씀씀이에 따라 줄일 수 있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왔다. 허나 막상 살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했던 그 질문이 참 대답하기 뭐했던 막연한 질문이었겠다는거다. 왜냐하면 그 녀석말 그대로 우리의 눈높이에 따라 생활비가 많이 절약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좀 더 나은 품질의 먹거리를 생각할 주머니의 여유가 있다면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 흔히 말하는 '돈 좀 있는' 사람들이 간다는 유기농(organic)가게에서 계란한줄에 월마트보다 세배가 넘는 돈을 주고 사먹으면서 살수 있는 반면 우리처럼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헝그리(hungry) 유학생들은 그저 만만한게 월마트(WalMart)이다. 가격이 싼 것도 이유가 되지만 또 다른 이유는 그 안에서 필요한 대부분의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원스톱(one-stop) 쇼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차가 없는 경우엔 그런 월마트은 더 없이 유용하다. 여기 저기 안 들리고 한 걸음에 일주일치 장을 다 볼 수 있으니까. 헌데 그런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잇점만 아니라면 기실 월마트보다 더 싸게 파는 곳들이 참 많다. 그 대부분은 월마트같은 대형 체인점이 아니라 동네(local) 가게들이다. 우리가 살던 그 동네에서는 먹거리를 주로 팔던 알디(ALD)라는 가게나, 동네 야채가게, 일반 공산품은 Dollar Tree, Dollar General (우리로 치면 천냥하우스)에 가면 아주 착한 가격의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다. 물론 품질에 대해 그닥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허나 그런 가게들이 몰려있는 것도 아니어서 싸는 이유로 그 가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기가 가난한 유학생들에겐 결코 쉽지 않다. 길에다 쓰는 시간이랑 기름값등을 따진다면 그닥 효율적인 장보기가 아닌 셈이다. 허니 한곳에서 대부분의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월마트이 우리처럼 가난한 유학생들한테는 제일로 만만한 장터다. 지금도 우리는 월마트가 제일 편하다.
어느 동네든지 싱싱한 야채나 과일을 아주 싼값에 파는 동네(local)가게는 다 있게 마련이다. 한국에서 챙겨온 총알이 다 떨어져서 남편이 일년동안 아르바이트 했던 곳도 그동네 자그마한 야채 과일가게였다. 거기서 알게 되었다. 좀 상한 야채나 채소를 한묶음으로 모아서 1불에 내다놓으면 가난해뵈는 흑인들이나 중국학생들이 거의 다 사간다는 것을. 그 가게는 학교랑 가까이 있는데다 2불이나 3불어치만 사도 싱싱한 야채나 과일을 제법 한봉지 사갈 수 있어 차없는 가난한 외국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자주 애용하곤 했었다. 짐작컨대 부자들이 잘 간다는 유기농가게의 가격과 비교해 보면 이런 작은 동네 가게를 이용하는 것도 생활비를 크게 절약하는 한 방법이다. 허니 동기녀석의 말대로 아주 저렴하게 살려고 작정만 한다면 크지 않은 금액이라도 식품비에서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 수 있다.
기실 가장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는 건 '집세'에서다. 남편과 나는 아들내미가 없고 우리둘만 있었다면 트레일러하우스(trailer house: 자동차모양의 이동식 주택)에서 살았을게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지만 한달 집세가 삼백불정도라니 몫돈을 절약할 수 있었을테니. 허나 정작 거기서 살아본 이들에 따르면 전기세가 장난이 아니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얘기도 들었고 아이들을 키우기에 주변환경이 그닥 좋지 않다 싶어..가끔은 우리 수준엔 좀 과하다 싶었던 학교 아파트에서 쭈욱 살았었다. 학교 아파트 (on-campus)는 외부 아파트에 비해 안전하고 무엇보다 학교 전기시설을 이용하기 때문에 전기세같은 공과금(utiliity)이 아주 쌌다. 그때 우리가 살던 곳은 방 두 개짜리의 30 평 정도되는 평수였는데 집세는 작년에 550불 정도였고 여름에 트는 에어컨이랑 겨울에 히터등을 포함한 공과금은 전기세랑 전화세 인터넷과 케이블등을 포함해 150불정도였으니까 집세랑 공과금으로 한달에 최소 800불정도가 나갔다. 헌데 그 가족 아파트가 얼마나 널찍하고 무엇보다 아이들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었는지 다른 학교로 전학(?)을 와서야 알았다. 그러기 전까지 우린 학교 가족 아파트라면 다 그렇게 왠만하게 살만한 곳인 줄 알았으니까. 허나 지금 살고 있는 아랫동네로 이사와서야 알았다. 우리가 살았던 그 학교 아파트가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부족함이 없는 풀밭과 놀이터 그리고 안전한 동네였는지를.
그렇다고 지금 살고 있는 학교 아파트가 그리 형편없는 건 아니다. 경제적인 면으로 치면 아주 저렴하니까. 건물이 워낙 오래되어 낡고 넓은 놀이터나 같은 쉼터가 없어 좀 삭막해 보이는 주변환경에 적응하는데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한달 집세(550불)에 전기세뿐만 아니라 전화세, 인터넷이랑 케이블 비용까지 다 포함되어 있으니 너무 착한거다. 그거 하나보고 참는다..아침에 일어났을 때 어디선가 출몰한 바퀴벌레들의 흔적도.. 오래되고 낡은 문들도...처음엔 영 적응이 안 되더니 점점 익숙해져서 그냥 저냥 저렴한 맛에 살아지는 기숙사다. 만일 전화세, 인터넷, 케이블등 공과금을 있는 그대로 다 내야한다면 당분간 내 공부때문에 윗동네에서 따로 떨어져 살고 있는 남편이랑 나랑 사는 데 드는 한달 생활비에 허리가 휘청했을게다.
이런 가난한 우리보다 더 심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중국학생들이다. 그전에 살던 가족 아파트 기숙사는 평수도 제법 넉넉한 덕에 중국학생들은 그 한 집에서 두세가구가 모여 살면서 생활비를 절약한다고 했다. 물론 걸리면 쫓겨날 감인데 일단 입주를 하고 나면 그런 호구 조사는 안 하는 동네였으니 다들 눈감아 주는게다. 중국학생들 대부분은 학부생이 아니라 학교로부터 장학금을 받는 대학원생들이 많았는데...그럼에도 몸에 배인 절약정신에 집세랑 먹거리에서 절약한 돈을 중국 본토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생활비로 보낸다는 말에 우리는 외쳤다. 졌다 (you win)라고. 그런 중국학생들의 무서운 헝그리 정신은 잘 살고 넉넉한 이들한테는 찌질한 모습이었겠지만 늘 주머니가 가벼웠던 우리한테는 적잖은 위로가 되었던게 사실이다. 우린 적어도 저 정도는 아니잖냐..는 그 어줍잖은 안심같은거 말이다..
옷사는 데 드는 돈도 여기선 눈높이에 따라 충분히 절약할 수 있다. 여기서 정상가를 주고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적어도 유학생들중엔 드물다. 태어날 때 은수저물고 나온 있는 집 자제들이야 논외로 치고... 대부분이 거침없이 싸게 파는 세일을 기다린다. 남편과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옷들을 십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아직도 입고 있으니 그 상태가 좋을리가 없지만 일단 편안한게 제일인고로. 그리고 여기서 산 대부분의 옷들은 한 시즌 끝무렵 거하게 하는 할인세일에서 장만하거나 그도 아니면 중고품을 파는 굿윌(goodwill)에서 대충 사서 입곤 했다. 우린 굿윌의 꾸준한 단골이었다. 더군다나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들내미 옷들은 세일을 할 때 다음 해에 맞을 만한 칫수의 옷을 미리 사두었다가 입히곤 한다. 여기서 세일이란 그냥 50% 세일 정도가 아니라 얘네들 표현으로 clearance or crazy sale을 할 때를 말한다. 정상가로 40불넘게 했던 겨울 점퍼를 7불에, 한 여름에 20,30불하던 여름 샌달이 겨울 초입게 가면 5불도 안 되는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걸 아는데 누가 정상가를 주고 사겠는가. 그런 겁나게 착한 수준의 할인들은 우리같은 가난한 유학생들한테 아주 요긴함은 물론이다. 헌데 그런 세일을 수시로 광고도 없이 하는 경우가 많아 쇼핑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도 가끔 백화점(mall)을 한번 돌아보곤 했었다. 혹시 아이들 옷파는 가게들이 그런 세일을 하지 않나 해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아이들의 경우에 또래 아이들이 있는 가까운 한국이웃들끼리 서로 입던 옷들을 물려주는게 유학생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따뜻한 모습이다. 우리아들내미도 자기가 입던 옷을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자기도 이웃 한국형이 입던 옷을 물려받으면서 자랐으니까. 해서 가끔 아들 옷을 입은 동네 꼬마가 아들인 줄 알고 연신 불러댄 적이 한두번이랴. 그렇게 서로 물려주고 물려받으면서 아이들의 옷문제를 해결하는게 유학생 가족 사이에서는 아주 일상적인 일이었다.
우리의 단골 가게는 앞에서 잠깐 얘기했던 굿윌(Goodwill)이었다. 굿윌은 주민들이 기부(donation)한 옷이나 물건들을 받아서 파는 중고품가게다. 여러 주에 지점들이 있긴 하지만 그 상태가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걸 여기 남부에 내려와서 찾았던 굿윌가게에서 알게 되었다. 여기에 비하면 중서부 우리가 살던 동네의 그 굿윌가게 물건들은 여기에 비해 훨씬 깨끗하고 가격 또한 저렴했다. 그곳은 옷들뿐만 아니라 그릇이나 생활용품들도 판다. 만일 우리도 처음부터 여길 알아서 정착할 때 필요한 물건들을 굿윌에서 샀다면 좋은 물건들을 훨씬 싼 가격에 살 수 있었을게다. 해서 처음 온 유학생들한테 굿윌을 추천한다.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중고품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인식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아서 그런가 그리 즐기지 않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이래 저래 우린 굿윌 덕을 많이 봤다. 특히 아들이 책을 한창 읽을 무렵..도서관과 함께 굿윌에서 많은 책들을 샀다. 정상가로는 5불 넘는 책들을 깨끗한 상태로 1불도 안되는 60전에 살 수 있었으니까. 그곳에서 아들의 장난감도 솔찮이 많이 샀다. 대신 굿윌역시 필요한 물건을 찾기 위해서는 수시로 방문을 해줘야 한다.
해서 우리는 월마트에 장보러 가는 길목에 있는 그곳을 장보러 갈 때마다 수시로 들려 둘러보면서 아들의 책들이랑 장난감들, 아들의 옷들이랑 우리의 옷등을 비롯 여러가지 생활용품을 해결 할 수 있었다. 우리의 굿윌 사랑에 주위 친구들은 고개를 젓는다. 자기네도 한두번 둘러봤는데 우리처럼 재미를 못 봤다면서. 그때마다 우리가 해주는 얘기는..우리처럼 수시로 일상적으로 둘러봐야지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다고. 해서 우리가 이사올 때 아들이 커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책이나 옷, 장난감같은 물건들을 모은 서너 박스를 굿윌에 기부하고 왔다. 기부할 때 알았다. 기부한다고 해서 굿윌이 어떤 영수증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박스만 건네주면 그만이라는 것을. 그것을 받은 그곳 직원들이 옷을 세탁하고 정리한 깨끗한 상태로 매장에다 내다 놓는다. 지금도 기억난다. 굿윌에 들어서면 맡을 수 있는 굿윌 특유의 냄새를. 그건 아주 특유의 상쾌한 세제 냄새였는데 언젠가 굿윌에서 산 옷을 입던 아들이 옷에서 맡아지는 냄새만으로 "엄마..굿윌에서 산 옷이지요..."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허나 지금 사는 동네의 굿윌은 거의 찾지 않고 있다. 굿윌 물건의 수준은 그 동네의 사는 수준과 비례한다 싶다. 왜나하면 이전의 그 잘 사는 동네의 굿윌과 너무 다른 이동네의 이곳 굿윌을 처음 한두번 걸음해본 우리는 그 이후로 거의 찾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주민들의 기부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니 당연한 지도 모른다.
그렇다..우린 그렇게 눈높이를 내려서...물론 그전에도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긴 했지만..아주 저렴하게...알뜰하게 공부하는 사오년 길게는 육칠년 동안을 그런대로 해낼 수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물론 학비는 제외하고 말이다.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 내지는 조교일자리를 받기만 한다면 여기서 생활하는데 드는 생활비는 어떻게든 절약할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