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전에 예상은 했었다. 한국서 유학준비를 하는 동안 아무리 토플이나 지알이같이 학교 지원에 필요한 영어점수가 웬만큼 된다 해도 막상 가서 살면서 공부하는 동안 부딪히게 될 일상적인 의사소통에서 영어가 우리의 발목을 수시로 잡아챌 것이라는 것을. 그덕에 얼마나 많은 좌절감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것 정도는 굳이 미국땅에 가지 않아도 여기 저기에 줏어들은 충분한 경험담들 덕에. 더군다나 남편이나 나나 조동사 뒤에는 동사원형이 와야 하고 사형식 문장에 오는 동사는 수여동사여야 한다는 식의 성문종합식 영어가 익숙한 오래된 세대인터라 자칫하면 주객이 전도되어 영어가 공부를 하기 위한 수단(way)이 아닌 목적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했었더랬다.

남의 나라 땅에서 살면서 우리처럼 영어때문에 쓴맛을 겪어 본 이가 어디 한둘이랴. 이미 다 아는 것들인데도 영어문장으로 입밖으로 내보기가 쉽지 않아 말들이 혀끝에서 빙빙돌기만 하는 그 답답함을 느껴본 이가 우리뿐이랴.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래도 내깐에는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로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는 그 가락하나 믿고 어줍잖은 관광객 수준의 영어를 떠들어댔던 적이 있었다. 그땐 참 용감했었다. 지금보다는 적어도. 헌데 여기서 살아온 세월이 한해 두해 보태지면서 깨닫게 된다. 그 뒤로 보낸 시간에 비례해서 상승곡선을 그리며 유창해질 줄 기대했던 우리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면 내 영어실력이 그 처음에 떠들어대던 영어 수준에서 그리 많이 나아지지 못했다는 것을. 해서인지..언젠가부터 누군가가 미국 오신 지 얼마나 되냐고 물으면 대답 대신 그냥 씨익 웃고 만다... 그건 묻는 사람들의 대개가 여기서 산 짠밥만큼이나 영어를 잘 할거라고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물론 여기서 보낸 세월이 전혀 꽁은 아니다. 그렇게 처음에는 혀끝에서만 뱅뱅 돌 뿐 내뱉지 못하고 삼켰던 말들을 그래도 오랜 짠밥덕에 그런대로 주섬 주섬 얘기를 해대기도 하고, 수업 듣는데 백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뭔말을 하는지 알 만큼은 들리기에 하는 소리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상대방이 말 하는 것을 이해하는데는 영어실력과 함께 요구되는게 '눈치'다. 오래 산 만큼 비례해서 느는 건 그런 '눈치'다. 미쳐 작은 것 까지는 다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무슨 얘길하는지 예상할 수 있으니 답답한 신세는 면한 셈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누군가가 자동차 접촉사고가 났을 때 제일 먼저 자신의 차가 얼만큼 잘 못 되었고 얼마나 다쳤는가 보다 그걸 경찰이나 상대방에게 영어로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 선다는 말에 고개를 주억 주억할 만큼 공감에 또 공감하게 되는 걸 보면 아직은 내 나랏말처럼 입에 귀에 착착 달라붙지 않고 귀랑 입이랑 머리랑 여전히 따로 놀면서 엉키는 수준인 셈이다.   

영어랑 관련된 웃지 못할 해프닝들은 남의 나라 살이를 하는 이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몇박 몇일로 엮어낼 만큼 소소하게 많긴 하다. 그 중에서 기억나는 몇가질 끄집어 내자면 처음으로 대한항공을 타고 미국땅에 도착해서 미국내 비행기로 갈아타려고 들렸던 LA 공항내에서 겪은 충격이었다. 때를 놓쳐서 우리 셋다 많이 배가 고팠기에 한끼 때울 요량으로 맥도널드에 들렸다. 남편이 주문한다고 간지 한참 지나서야 햄버거랑 감자튀김을 갖고 돌아온다. 줄 선 사람들 많지 않던데 늦었냐고 했더니 남편이 대뜸 헛웃음을 웃어대면서 하는 말이 "나..참나..너 그거 아냐. 여긴 포테이토가 아니라 프렌치 프라이즈란다..프렌치 프라이즈." 무슨 말인가 했더니 햄버거랑 같이 나오는 감자 튀김을 하나 더 시키려고 "포테이토"라고 주문을 했더니 맥도널드 점원들 반응이 니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못 알아듣겠다는 얼굴로 다시 말해달라는 말만 몇번이나 반복해서 그렇지 않아도 영어에 약한 남편 무지 당황했단다. 그때 남편의 기분이 어땠는지 그날 이후로 수시로 공감할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뻥뻥 터지기 시작했다. 특히 남편의 경우처럼 자기깐에는 자신있게 말했는데 상대방이 여영 못 알아듣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오면 대부분이 등에 식은땀이 나게 마련이다. 우린 대개가 그네들이 우리가 한말을 잘못 알아 들을 수 있다는 쪽보다는 혹시나 우리 발음이나 액센트가 틀렸나 싶어 뒤따라 나오는 목소리는 첨보다 더 자신없어 지고 발음은 더 어색해지기 마련이다. 그때 남편 역시 혹시나 이 간단한 단어조차도 자기의 발음이 틀린건가 싶어 "포테이토" 라는 단어에서 나올 수 있는 억양과 발음들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대며 서너번 얘기해댔더니 그중 한명이 웃으면서 "오..프렌치 프라이즈.." 하더란다. 알고도 남는다. 그때 남편이 느꼈을 허탈감을.  

그 이후로 그런 류의 일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자주 겪고 듣는다.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남의 나라 사람들에 대해 배려할 줄을 모른다. 물론 대부분이 그렇다는 건 절대 아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무지 억울해 할 만큼 우리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친절한 이들도 많긴 하다. 대체로 외국학생들하고 가깝게 지내는 미국 사람들은 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게..특히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들한테 모국어와 전혀 다른 문장구조로 되어있는 영어를 한다는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해서 이들은 외국학생들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고 해도, 그네들의 낯선 억양에도 불구하고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며 대화를 주고 받는다. 헌데 앞에서 얘기했던 그런 류의 패스트 후드점에서 그런 일을 자주 당하게 된다는걸 보니 거기서 일하는 이들에 대한 편견이 저절로 생기게 된다. 대체 손님들이 주문할 수 있는 그 몇가지 안되는 빤한 메뉴들에서 상대방이 무슨 주문을 했는지 짐작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렇게 외계의 언어로 떠들어대는 것처럼 영 못 알아들을 수준도 아니건만.  허긴 억양도 발음도 형편없을 우리말을 진땀흘려가며 하려고 애쓰는 외국인들이 기특해서 그들의 덜된 말이 끝날 때까지 들어주고 그 어려움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되어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배려들을 그네들한테 기대하지 마라. 그렇게 우리가 미국땅에서 제일 먼저 받은 인상은 자기나라 말인 영어만 한다면 세계 어딜가도 불편함이 없을 이 나라 사람들이 버리지 못하고 있는 세계 공용어인 영어에 대한 턱없는 오만함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려고 조금만 귀를 기울이고 듣는다면 못 알아들을 말들이 과연 몇 개나 있겠는가. 더군다나 그 빤한 패스트후드점에서 말이다. 그건 순전히 태도나 마음가짐의 문제다. 내가 자꾸 패스트후드점을 얘기하는 건 학교 다니는 동안 제일 많이 부대낀 곳이기 때문이다. 어디 비단 패스트후드가게 뿐이랴.  예를 들어 우리 학교 학생회관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일하는 점원들중 몇명은 못 알아듣겠다는 자기들의 반응에 당황하는 외국학생들, 특히 아시안 학생들한테 때론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걸 한두번 봤겠는가. 그러다 한번은 커피를 마시려고 물을 시키는 한 동양처자 뒤에 줄을 서있있다. 그때 주문을 받던 흑인 남자 종업원이 워터를 달라는 그 처자의 말에 "왓(what)?"이라고 다시 되묻는다. 아주 불친절한 반응에 그 처자의 목소리는 쏙 기어들어 가고 그런 처자를 종업원은 쳐다보고 있는 거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내가 그 흑인 종업원에 태도에 더 열을 받아 오지랖넓게 나서서 물었다. 대체 그  간단한 '워터(water)'라는 단어를 어떻게 발음해야 못 알아들을 수 있는지..어떻게 그 빤한 메뉴에서 고른 워터를 듣고 니가 뭘 원하는지 영 모르겠다는 저런 얼굴을 할 수 있는지..이해가 되지 않아서 였다. 진짜로 얘가 무슨 말하는지 몰라서 그렇게 묻는거냐고..니네 메뉴에 워터라는 발음하고 헷갈릴 메뉴가 있냐고. 물론 나라고 제대로 된 영어로 따져댔겠는가. 열을 받으면 더 버벅대곤 하면서도 열받아서 묻는 내 태도에 질렸는지 그 종업원이 두말 않고 물 한컵을 갖다 주고는 내 뒤를 향해서서 넥스트(다음 손님을 향해)하고 소릴 지른다. 이건 결코 내 자랑이 아니다. 그건 내가 퍼부어댄 영어가 유창해서도 결코 아니고 그건 순전히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 내 아줌마 기질에 질려서 그리고 알아 듣고도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있는 걸 알고 있으니 할말이 없어서였을게다. 결국 아무 말 않고 물을 갖다 주는 모습에 오히려 그 동양처자 더 열받았을게다. 그렇다. 그 종업원은 못 알아들은게 아니고 못 알아들은 척 한게다. 그 처자는, 알고보니 일본처자, 그 이후로 가끔 학교에서 마주칠 때마다 우린 그때 일이 떠올라 웃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안면을 트고 지냈다. 

그렇다고 이렇게 당당할 만큼 영어를 잘 하느냐...면 물론 그건 아니다. 영어를 잘 하는게 아니라 여기서 소수인종(minority)로 오래 살다 보면 그렇게 무시 받지 않으려는 기질들이 강해지는 것 같다. 아직 10년이 지났어도 내 발음은 여전히 조형기식 버젼에 더 가까운 정도니까. 영어에서 그나마 짠밥에 비례해서 많이 나아지는 건 '듣기' (listening)가 아닐까 싶다. 영어를 배우는건 타고난 성격하고도 같이 가는 듯 싶다..남편과 나를 보면. 나보다는 선천적으로 상대방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고 촘촘히 듣는 남편의 영어 듣기 실력은 성격 급하고 덜렁대느라 상대방 말을 대충 대충 듣는 이몸보다는 여기의 짠밥에 정비례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더군다나 영어 듣기연습에서 교과서로 간주되는 티브이 보는 걸 아주 즐겨하는 남편이다 보니 지금은 이네들이 하는 왠만한 말들이 귀에 들어온다고 하니 아직도 그 경지가 요원하기만 한 난 마냥 부러워할 뿐이다. 티브이 보는 걸 안 즐겨하는 대신 내가 택한 방법은 소설같은 읽을꺼리들을 손에 들고 소리내서 읽는거다. 그렇게 이네들의 표현들을 내 나름 잔뜩 혀에 버터를 바른 듯이 읽다 보면 이네들의 표현도 익혀질 거라는 게 희망사항이다. 허니 말하고 쓰는 건 몰라도 듣기 실력은 여전히 후달릴 수 밖에 없다. 내 이 형편없는 듣기 실력덕에 여기 온 초부터 남이 하는 말을 대충듣고 엉뚱한 데를 긁어대기는데 빛나는 활약상을 보인 적이 어디 한두번이랴. 다 얘기하면 그렇고 한가지만 얘기하자면, 미국 온지 첫해였다. 그땐 남편이 수업때문에 학교에 가고 세살짜리였던 아들내미하고 둘이 집에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그것도 아주 문이 부서질만큼 세게...쾅쾅. 문을 여니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몇이 서있다. 그네들의 갑작스런 떼거리 방문에 이율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으니 그런다. 아니 내가 듣기로는 그랬단다. "buck control"이라고. 순간 당황했다. 뭐이..돈을 어케한다고. 해서 물었다. 왜 나한테 돈 어쩌구 하냐고. 했더니 아시안 아줌마의 동문서답에 할말을 잃은 아저씨들 할말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아주 천천히 다시 얘기해준다. 벅스가 아니고 버그 콘트롤(bug control)이라고. 우리말로 하면 집안에 벌레약을 쳐준다는 거였는데 난 그 "bug"를 "buck"으로 잘못 알아듣고는 큰소리 친게다. 그때서야 제대로 알아듣고 한참을 웃어댔었다...나만. 그 아저씨들은 안 웃고. 잘 모르면 가만히 있는게 중간에라도 간다는 말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어줍잖게 줏어들은 단어로 buck이 돈이라는 뜻도 있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왜 돈 얘기가 나오냐고 했으니. 내말을 들은 남편..위로랍시고 자긴 buck에 돈이라는 뜻이 있는지도 몰랐다며 때론 아는게 이렇게 병이 될 때도 있다고 웃어댔지만 난 아직도 그일을 잊을 수 없다. 특히 왜 돈얘기를 하냐고 외치던 내 당당함을. 

어디 듣는 것 뿐이랴. 많이 듣는 만큼 발음도 좋아지는 건 분명하다. 남편보다 덜 보고 덜 들으니 내 발음도 그냥 저냥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은 당연. 특히 다들 어렵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R과 L발음은 쉽지 않다. 이거랑 관련해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초반에 나가기 시작했던 미국교회를 다닌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였을게다. 한번은 한국에 있는 모대학 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서 단체로 이곳 학교로 단기 어학연수를 밟으러 왔다고 하기에 나를 포함해서 그 교회에 다니던 몇명의 한국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해서 다 같이 호숫가에 있는 한 공원에서 점심을 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먹기 전에 한 교회 남자집사님한테 기도를 부탁드렸다. "Can you pray for us before taking lunch?"라고. 헌데 내 부탁을 받은 그 남자 집사님 반응이 심상찮다. 내가 하는 얘기를 못 알아들었다는 얼굴이다. 흠..뭔가 잘못되었나 했더니 그 집사님은 기도(pray)를 부탁한다는 내말을 같이 놀자는(play)는 말로 들은게다. 이런 이런...이노무 r이랑 l..지금도 그 발음을 하려면 의식적으로 혀를 굴리고 입을 옆으로 더 늘리는통에 더 어색하게 들릴게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잠시긴 하지만 의식적으로 혀를 입천장에다 붙였다 굴렸다 하면서 R과 L 두 발음을 연습한 적도 있지만 그거야 단어 하나 하나일 때는 의식할 수 있지만 문장속에 있을 때는 그렇게 연습한 것들을 잊어버린 내 입에서 나오는 R과 L의 발음은 거의 차이가 없이 나온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언어에 대해 남편이나 나나 공통적으로 절감하는게 있다. 아무리 세월이 가도 영어에서 여전히 안되는 건 안 된다는 거다. 이런 데 학교 다닐 때 일년 미국 어학연수 다녀온 후배들한테 일년동안 배웠으니 잘 하겠다 싶어..농삼아..어디 영어한번 유창하게 해봐는 물정모르는 소릴 해댔으니...참 그때 그 녀석들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여기 와서야 그 맘들이 이해된다. 남의 나라 말을 배우는데 무엇보다 제일 마지막에 걸리는 건 다름아닌 '문화'의 차이다 싶다. 이네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언어에 대한 이해에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누군가 물었다. 수업시간에 손들고 선생님(teacher)하고 부르는게 예의없는 거냐고. 얼핏 듣기엔 선생님하고 부르는 거니까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지만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은 아주 기분나빠할 만큼 예의가 없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보다는 미스터(Mr.) 혹은 미즈(Ms)라고 부르는게 일반적이라니.. 이런 작은 예에서도 단순히 문법에 맞는 말을 할줄 안다고 해서 남의 나라 말을 잘 한다고 생각하면 섣부른 판단이 되는게다. 예 온지 얼마 안 되서 파리채를 찾으러 월마트에 가서 헤매다가 거기서 일하는 직원한테 파리채를 설명한 적이 있다. 안 되는 영어로 생각나는 단어들을 마구 연결시켜 떠들어댔다. 이건 날아가는 파리를 잡는 도구라고(it's akind tool to smash flies)... 내 덜된 영어를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던 그 직원이 알려준 건 "Oh..swatter."였다. 아주 간단한 그 단어를 몰라 그 넓은 매장을 돌아다니고 길게 설명을 해댔던거다. 그럴때면 참 허탈하다. 이렇게 우리의 발목을 잡는건 책상앞에서 읽게 되는 영어가 아니라 이렇게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또 다른 예는 직접 겪은게 아니고 아는 언니를 통해서 들은 에피소드다. 미국와서 아이를 처음 학교 보낸 한국 부모, 학교에서 brown bag을 갖고오라는 말에 브라운색의 백을 찾으러 월마트며 어디며 온동네를 헤매고 다녔단다. 헌데 여기서 brown bag이란 그냥 점심에 먹을 것을 싸갖고 오라는 말인데.. 첨 듣는 이들이야 알리가 없다. 허니 곧이 곧대로 브라운색 백을 찾아서 담아줬다고 하니.. 웃지 못할 일화다. 그런 일상적인 것들은 책에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살면서 부딪히면서 알수 밖에 없으니 자연히 잘못 잡히고 깨질 수 밖에. 한 나라의 언어를 익힌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가를 우린 여기서 살면 살수록 뼈속깊이 절감하기에 이곳에서 언더그라운드 인생인 우린 시간이 흘러도 안 되는 것 여전히 안 되는 거라고, 남의 나라땅에서는 사는 한 그런 건 어쩔 수 없이 포기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면서 그렇게 살고 있다. 다른 이들은 그런 미국문화를 제대로 흡수하겠다고 한국사람들보다는 미국사람들하고 어울려 영어를 조금이라도 잘 해보겠다고 애쓰는데 말이다.  
 
그런 영어의 문제는 어디 우리뿐이랴. 한국에서 갓 오신 분들을 보면 그런 모습은 더 절실하다.특히 공부하는 남편따라 오로지 내조만 하겠다고 오시는 여성동지들을 보면. 처음 여기 올 때는 한국에서 선생님이다 치과의사다 조각가다 해서 자기 분야에서 잘 나갔다며 좀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분들도 영어가 잘 안 되면 작은 일에서부터 큰일에 까지 영어를 잘 하는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게 되는 신세고 보면 일년도 안되서 목에 들어갔던 힘이 빠지고 스스로 무력감을 느끼는 분들을 많이 뵈었다.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대체 영어가 뭐길래...싶어진다. 다른 나라에 가서도 그 나라 말을 못 한다고 해서 저렇게 까지 움추려들까..다른 언어가 아니고 영어라서 그럴까..아주 사소한 표현들을 영어로 말하고 조금이라도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날엔 영어공부에 대한 의지가 불끈 불끈 쏟다가도 기껏 얘기했는데 상대방의 반응이 시원챦을 때는 그 의지가 한번에 바람빠진 공처럼 느껴지니...말 그대로 영어에 웃고 영어에 우는 신센게다. 언젠가 한국에서 아주 잘 나간다는 한분이 남편따라 이곳에 와서 지내다 한번은 아이가 아프다고 해서 학교에 가셨더란다. 헌데 아이를 조퇴시키야 되는데 그 말이 입에서 안 나와서 말도 못한 채 주춤대다 때마침 학교에 들렸던 한국사람을 잘 모르는 분인데도 붙잡고 도와달라고 했다며 한숨을 내쉬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더군다가 한국에서 갓 오셨을 때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갔던 그분에 대해 못마땅했던 이들의 입을 타고 내 귀까지 전해진게다. 말 그대로 영어에 관한 한 다 동병상련인게다. 어디 그런 일이 한둘이겠는가. 여기서 영어때문에 웃고 우는 일이.

그렇다고 영어 때문에 기죽어 살 필요는 없다는게 남편과 나의 생각이다. 언어는 우리가 여기서 공부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tool)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안되는 영어에 대한 합리화라고 해도 할 수 없다. 허나 수업시간에 번드르르하한 영어로 참으로 알맹이 없는 말들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 떠드는 미국아이들을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남편말대로 니들이 영어말고는 나보다 나은게 뭐있길래...하고 말이다. 그런 남편 답게 그는 강의 첫시간에 자기 수업에 들어온 아이들한테 자기의 영어 액센트나 발음때문에 불평할려면 수강신청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공표를 해버렸단다. 그건 그네들 귀엔 어색하게 들릴 지도 모를 영어때문에 정작 배워야 할 알맹이들을 배우지 못하게 될 거라는..아주 자신에 찬 얘기였을게다. 그런데도 수강신청을 취소한 아이는 하나도 없었고 이제는 다들 남편의 억양과 발음에 익숙해졌는지 잘 따라온다고 하니.. 우리가 해왔던 생각.. 태도에 달려있다는 거다. 남의 나라 언어를 그 나라 사람보다 못 하는 건 당연하다. 대신 우린 그네들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갖고 있다고 착각(!)이라도 해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자. 배우고 가르치는데 모자라는게 어디 언어뿐이랴. 남의 나라 말을 자기 말처럼 익힌다면야 더 없이 좋겠지만 우린 그렇다고 영어때문에 좌절하지 말자. 해서 우린 이네들이 듣기엔 덜된 영어라고 해도 자신있게 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어찌보면 짠밥에 비례해서 느는 건 눈치뿐 아니라 말 그대로 똥배짱인지도 모른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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