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돌리는 곳마다 끝없이 펼쳐져있는 옥수수밭이 지루하긴 해도 8년 사는 동안 이렇다 할 큰 사건사고 없었던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중서부 시골동네를 떠나 이곳 남부동네로 이사와 뒷늦게 시작한 나한테 공부 잘 끝내기와 함께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그건 다름아닌 여기서 무사하기...살아남기.
얼핏들으면 처절하게 들리지만 허긴 조금 과장되긴 했지만 그게 여기서 하루 하루 지내는 내 심정이다.

직장때문에 여기서 5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서 사는 아들이랑 남편은 이 험한(!) 도시에 혼자 남아있는 날 위해..혼자 적적해 할까봐..그리고 무엇보다 무사하게 하루를 잘 살았나..해서 하루에 몇번씩 전화를 주고 받는다. 특히 차를 갖고 어딜 나간다거나 늦은 시간에 밖에 있다거나 하면 어두컴컴하기 전에 집에 들어가라는 청소년지도용 멘트로 날 재촉한다. 허긴 그럴 만 하다. 처음엔 하루에 서너번 넘게 들려오는 요란한 싸이렌 소리에 대체 또 뭔일이 터졌길래..이 난리가 싶어 고개를 빼고 내다 보곤 했었는데..이젠 무덤덤해졌나보다. 싸이렌 소리엔 고개도 안 움직여지고 학교에서 단체로 보내주는 캠퍼스 사고소식에도..누가 또 총들고 주차장에 나타나 차를 털어갔구나..하고 흘려읽게 되었으니까. 일년사이에....내 알람은 이렇게 둔감해졌다.

물론 내 그런 무덤덤함이 섬짓하게 느껴질 때도 있긴 하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한귀로 흘린 저 앰브란스 소리가 나는 그 어딘가에 일어났을 일들을 상상해서 떠올려 보면 누군가가 총에 맞아 다쳤다거나 죽었을 수도 있고 차사고가 나서 심하게 다쳤을 수도 있고...최악의 경우는 만일 그 누군가가 내가 아는 누군가라면...그때서야 돌아보게 되었다는게 참 서글프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여기 온 일년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내 개인적인 일은 아니지만 이 동네에서는 좋은 일보다는 맘 아픈 일이 더 많았었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여기 온 첫학기..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 일년 전 가을학기가 거의 끝날 무렵...학교 기숙사에서 터진 총기사고였다. 그것도 우리가 사는 기숙사 아파트 바로 맞은 편에 살던 당시 공대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인도 남자랑 그집에 놀러왔던 같은 나라 친구 한명이 함께 변을 당한 사건이었다. 그 사건으로 한동안 이 주변은 흉흉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이 뜨고 기자들이 인터뷰하자고 문을 두들겨대고 같은 아파트에 살던 (대부분이 나처럼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은 어쩌면 자기자신들이 그 피해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불안해했고 같이 남의 나라에서 공부하러 왔다가 처참하게 변을 당한 피해자들의 일이 남의 일이라고 할 수 없을만큼 충격적이었다.

그 사건이후로 이곳의 안전이 안심이 안되서 그리고 내가 힘들기도 해서 지금은 아빠한테 가서 지내는 아들내미한테도 그일은 적쟎은 충격이었을게다. 비록 서로 잘 알지는 못해도 아침 학교가는 길목에 거의 매일마다 담배 한대 피워물고 집안에 들여놨던 화분들을 광합성시킨다고 햇볕에 내다 놓곤 하던 그 인도 아저씨가 돌아가셨다니. 그나마 간단한 눈인사나 하이..하는 아침인사만 나눴을 뿐인데도 아들과 난 한참 동안을 그 아파트 앞을 지나가거나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맘이 섬찟해 했으니까. 정작 남편을 보낸 그 각시의 맘은 오죽했을까. 더군다나 임신하고 있었다니.  

그 사건이 있던 날 밤 그 시간에...난 그 집쪽을 향해 난 창가에 앉아 그 다음날 아침부터 치뤄야 할 기말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남편은 가까운 동생네 집에 놀라가고 없었다. 아홉시가 좀 넘었을 때 조용하기만 하던 바깥에서 낯선 소리가 들리긴 했어도 설마 설마 했다. 실제로 총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고 멀리서 들리오는 땅..땅..하는 두번의 소리에 때마침 걸려온 남편한테 총소리 비슷한게 들렸다고 하니 이웃 아파트로 놀러갔던 남편은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며 별일 아닐거라고 했었다. 헌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 아파트가 방음시설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되어있어 집안에서 쐈다는 그 총소리가 바로 건너편에 사는 내 귀에도 어디선가 멀리서..들려오는 듯 햇던게다. 남편과 통화하면서 밖을 내다보긴 했었다. 그러다 방안의 불빛이 너무 밝아 밖이 잘 안 보여 실내등을 끄고 다시 내다봤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대신 어디선가 급하게 뛰어가는 몇개의 발자욱 소리들과 사람말소리들이 들려왔고..곧이어 서둘러 떠나는 듯 타이어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을 뿐...별 다른 게 없어 하던 공부를 계속 했다.

그러기를 한시간여 지났을까.. 갑자기 문밖이 시끌시끌하고 파란빨간 불빛이 창을 통해 번쩍번쩍해진다. 뭔일인가..하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가까이 지내는 한국이웃이 토끼처럼 놀랜 눈으로 바로 앞집에서사람이 죽어나가는데 뭐하냐고  묻는다. 사람이 죽었다니...하고 밖을 내다보니 이미 앞마당은 요란한 싸이렌을 켜댄 경찰차들로 가득 찼다. 그때서야 알았다. 그게 진짜 총소리였다는 걸. 정신을 놓은 듯해 보이는 인도 여자가 경찰의 부축을 받고 있었고 앞집은 노란선으로 차단되어있었다. 그때 그집 문가 밖으로 삐죽 나와있는 두개의 발들이 보였다. 힘없이 널부러져있는.. 눈이 마주친 경찰은 뭘 듣거나 본게 있냐고 물었다. 해서 사람들은 못 봤고 도망치는 발자욱 소리랑 차가 빠져나가는 소리만 들었다고 얘기해줬다. 발자욱 소리는 한명이 아니라 여러명이었다고. 난 그 증언을 오는 새벽녁까 찾아오는 경찰이나 기자들한테 몇번이나 반복해야 했고 기말시험공부는 둘째치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그 다음날 시험을 보러 가야했다. 사건은 한참을 가닥을 잡지 못한 채 오리무중이었다. 나를 포함한 이웃의 증언으로 범인이 한명이 아니라는 단서만 잡았을 뿐. 그 사건이후로 학교는 아파트 주민들의 안전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허술하기 짝이 없던 학교 아파트의 경비를 강화한답시고 씨씨티브이를 달고 경찰들이 수시로 순찰을 돌고 바로 뒷동네에 사는 좀 거친 이웃(?)들이 좀도둑질을 하러 수시로 넘곤 했다는 부실한 나무 담장도 튼튼한 걸로 바꾸는 등 우리 표현대로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열을 올렸다. 허긴 주립 대학에서 이런 일이 터졌으니 학교 망신이 아닐 수 없었을 게다. 누군 그랬다. 보복 살인일거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총으로 관자놀이를 쏴서 죽이냐고. 담장 하나만 넘으면 흑인들이 모여산다는 이 동네엔 이런 식의 사건 사고는 매일 매일 일어나는 일상이라고. 그나마 학교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이니 연일 신문에 나고 여론화되서 이렇게 외양간(?)이라도 고쳐주는 거라고 말이다.

듣자하니 힘든 박사공부 다 끝내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그 인도남자의 죽음은 같은 신세에 있는 많은 외국 학생들과 그 가족들을 허탈하게 했다. 게다가 남편과 남편 친구의 죽음을 신고한 사람이 다름아닌 임신한 그 남자의 아내였다니.. 그 처자는 또 어떻게 살아갈까...싶어 그 사람의 명복을 기린다는 모임에도 모두들 얼굴을 내밀었고 그 사람을 추모하는 사진 근처에 사람들이 갖다 놓은 꽃에도 한송이지만 맘을 보탰다. 그리고 나서 일년동안 그 집은 아무도 이사오지 않은 채 비어있었고 그 범인들이 잡힌 건 그 사건이 터지고 나서 일년이 지난 이번 여름이었다. 그전까지 온갖 추측이 난무했었다. 죽은 인도사람이 그 전에 좀도둑질하는 뒷동네 흑인청년들을 경찰에 고발한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그 일에 대한 보복살인일 지도 모른다고. 아니면 이 가난한 유학생 아파트에 뭐 훔칠게 있다고 들어와서 그렇게 두명이나 죽이겠냐고. 헌데 정작 잡혔다는 범인들은 좀도둑질을 하려고 맘 먹고 이곳으로 기어들어온 흑인 청소년들이었다고 한다. 겨우 돈 몇달러를 갖고 가려고 다큰 어른 남자 둘의 관자놀이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는 그 말에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나서 좀 잠잠하나 했더니 올 봄 이곳 한인 사회는 여기서 오랫동안 살던 한 한인가족의 자동차 사고소식에 휘청거렸다. 아이 둘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아침 등교길에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가 중앙선을 넘어 덤벼드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첫째 딸을 그 자리에서 잃고 둘째와 운전하던 엄마는 혼수상태로 만든 큰 자동차 사고였다. 상대차량은 밤새 술 먹고 그것도 무면허로 운전을 했다는 젊은 겁없는 흑인이었다고 한다. 비록 한번도 뵌적은 없지만 같이 자식을 키우는 부모맘이 얼마나 아플까...가슴이 먹먹해져 작지만 십시일반 모으는 손길에 같이 했다. 누군가 그랬다. 미국에서 제 명대로 못 살고 가는 대부분의 경우가 자동차 사고랑 총기사고라고.

여기 이사오긴 전에 살던 중서부동네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던 집사님들 부부가 계셨는데 그 두 분 역시 교통사고로 고속도로 위에서 돌아가셨다. 남의 나라땅에서 그렇게 고생 고생하시다 그나마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 살만 해 지셨다며 친하게 지내는 우리가 공부마치고 들어갈 때 즈음에 당신들도 같이 한국에 들어가 살고 싶다고 하셨던. 헌데 그렇게 한국에 가고 싶어하시던 이유중에 하나가 당신들이 연세 들어서까지 운전대 잡고 다니고 싶지 않아서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지는 여기서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운전을 하시는 걸 볼라치면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노인분들이 운전하시는 차는 티가 나는고로. 해서 옆을 지나칠 때도 조심 조심...때로는 불안할 때가 어디 한두번인가. 게다가 그 두분이 하시던 가게 옆에는 청력센타(hearing center)란 곳이 있었는데 그곳을 찾는 대부분의 손님이 청력에 문제가 있는 노인분들인데..자잘한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대부분의 이유가 노인분들의 운전 미숙에서 비롯된 사고라고 한다. 예를 들어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으셔서 그 센타를 박기도 하고 가끔은 두분이 하시는 가게 유리까지 박으시는 통에 그 청력센타는 허구 헌날 공사중이었고 그 이웃가게들도 적쟎은 피해를 본다면서 그런 모습들에 나중에 이곳에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하셨던 그 두분은 어느 겨울날 밤 술취한 백인이 운전하던 트럭이랑 충돌해서 어이없게 돌아가셨다. 이곳에선 필수품에 가까운 자동차가 눈깜짝할 사이에 영락없는 살인무기로 변하는 순간들인게다.

지금 사는 이 도시는 범죄율뿐 아니라 운전 험하기로 치면 여느 대도시 뺨친다고 한다. 해서 보험들때 여기 우편번호를 대면 보험료가 두배로 뛴다고 한다니 얼마나 사고 다발지역인지 짐작할만 할게다. 누구는 서울에 비하면 비할 바가 아니라고들 하지만 눈감고 운전해도 될만큼 사건 사고가 적었던 시골에서 운전하던 나한테 조금만 지체한다 싶으면 뒤에서 재촉의 빵빵이 들어오고 끼어들기는 비일비재하고 좀 늦게 간다 싶으면 뒤꽁지에다 차를 들이대는 겁없는 청춘들이 많은 이곳에서의 운전은 적쟎은 긴장과 부담이다. 해서 남편은 내가 차를 끌고 나간다고 하면 더군다나 밤길에 나선다고 하면 조심하라고 수차례 당부을 한다. 그렇게 안전운전을 늘 강조하는 남편의 당부가 아니더라도 이곳에서는 내 스스로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남편 말대로 자칫하면 살인흉기로 변하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는게 예전 살던 그 동네처럼 편하지 않다. 혹 낯선 골목에 들어섰다 싶으면 자동적으로 창문을 잠그게 되고 좀 거친 운전이다 싶으면 아예 길을 터준다. 여기서 공부를 마치는 목표말고 무사히 별탈없이 이 도시에서 지내는 목표가 있는고로. 

그리고 이번 여름엔 태풍이 여길 강타했다. 그 태풍으로 부러진 나무들이 바람를 타고 달려들어 주차해놓은 자동차 유리들이 부서지고 나무가 뿌리째 뽑혀 집을 덮기도 했다. 한 여름에 나간 전기는 열흘이 넘어도 들어올 생각을 안해 완전 수재민신세가 된 이 아파트 주민들은 먼저 전기가 들어온 어디론가 다들 피난을 떠났고 난 남편이랑 아들이 사는 동네로 피난을 갔었다. 태풍은 강력했다. 나무가지를 머리채잡고 휘둘리듯 불어대던 태풍은 내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남편과 아들한테 올라가는 고속도로에는 태풍때문에 넘어진 전신주들이랑 나무들이 여기 저기 도로를 막고 있어 돌아가야 했고 전기가 나가 신호등이 작동이 안되 차들은 연신 거북이 걸음이었고 문을 연 주유소를 찾아 헤매다 겨우 찾은 곳에서 차기름을 넣기 위해 한시간도 넘게 기다려야했다.

이렇게 적고보니 일년이 아니라 여기서 삼년은 더 산 그런 느낌이다. 시간이 지나고 이젠 또 평안한 일상이 돌아왔고 풋볼시즌인 요즘은 주말이면 다들 풋볼구경하느라 들썩 들썩댄다. 언제 전기가 나갔고 태풍으로 휘청거린적이 있냐는 듯말이다. 그 와중에도 남의 나라 살이하는 것도 서글픈데 어디서 칠지 모르는 날벼락은 피해야지...하는 외국학생들이 어디 나뿐일까. 뜸금없는 생각이 든 건 평소 즐겨찾는 커피집에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또 뭔 사고가 터졌는지 싸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아침을 뒤들어대고 있는데 이 커피집에 앉은 이들의 일상은 참으로 평안해뵌다. 누구하나 고개를 빼고 밖을 내다보는 이가 없다. 대체 이놈의 도시에서 사는 하루 하루동안 저 싸이렌 소리을 안 듣고 지내는 날이 며칠이나 될까..얼마나 둔감해지기에 저런 모습들일까...둔감해졌다고 하나 난 여전히 싸이렌이 도착하는 그곳에서 일어났을 사고에 맘이 안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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