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돈도 없이 유학은 왜 왔데?"

누구는 그렇게 얘기했었다. 우리가 아는 누군가가 돈 없어서 고생한다는 식의 뒷담화가 오가다 보면 으례 누군가의 입에서 툭 하니 던져지는 저 말을 들으면 우리가 바로 그 돈도 없으면서 더군다나 장학금받을만큼 똑똑하지도 않으면서 유학이런 걸 온 주제들이라서 그런가..입맛이 쓰다. 허나..현실적으로 보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돈도 없는데 누가 억지로 공부하라고 등떠밀어서 온 유학이 아닌바에야 그만한 고생할 각오는 하고 와야 하는거니까. 우리도 그랬으니까. 자기가 하고 싶어서 왔으니까 그 정도의 고생은 감내해야지..그렇게 고생할 지 예상 못했냐는 식의 그런 말들의 이면엔 유학이란건 주머니가 넉넉한 자들만이 꿈꿀 수 있고 해낼 수 있다는 다는 식 편견이 보인다. 적어도 내눈엔. 허나 그렇다고 가진 돈도 없고 장학금을 받을 만큼 똑똑하지도 않은 우리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유학이란 걸 꿈꿔보지도..시도해보지도 못한다는 건가..하는 맘이 불끈한다. 기실 그런 편견을 깨주는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유학생활을 버쳐나가는 청춘들이 주변에 많다. 가진 것 없고 학교에서 돈 받아서 올 만큼은 안 되었지만 그래도 하고 싶다는 그 맘 하나만 갖고 버티는. 그 맘이 진짜 공부하고 싶은 열정이건..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건 간에 일단 안되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저지를 수 있는 용기..그리고 무엇보다 저지르고는 감당못해 우왕좌왕하거나 공부하고 싶은 맘보다 바람이 더 많다보니 결국은 공부를 접고 불법체류자 신세로 사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꾸준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결국은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잡거나 공부를 계속하는 이들이 적쟎다. 물론 워낙 없이 저지른 일들이니까 초반 고생은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어느 정도 힘든 시간을 겪고 나면 다 길은 있게 마련이다. "다 길은 있다"...남들은 똥배짱이라고 부르지만 밖에서는 안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서면 길이 있고 방법은 다 있다는게 내 세상사는 믿음들 중에 하나다. 실제로 처음엔 자기돈으로 학비를 대야 했지만 나중에 좋은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거나 학교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 조금씩 나은 조건에서 공부할 수 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그래도 내돈 들이지 않고 부모님한테 더 이상 손 벌리지 않고..남의 나라 돈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들이 우리주변에 많으니 혹 형편이 안되서 유학을 접는 누군가가 있다면 난 꼭 그 얘길 해주고 싶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허나 현실적으로 그런 이들이 많진 않다. 물론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하는 얘기다. 중서부 한 주립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생활하고 겪은...그리고 이 남부로 내려와서 아직도 공부라는 하면서 보고 듣고 겪은..어찌보면 지극히 제한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우리 주변엔 그렇게 고생스럽게 공부를 하는 한인유학생들 보다 여유있는 학생들이 더 많았으니까. 그런 이들의 눈엔 학비를 벌기위해 여름방학동안 뉴욕에서 웨이터를 하고 동네 야채가게에서 점원일을 하고 졸업할 때까지 학교 조교일을 하고 근로학생(student worker)으로 학교에서 청소일(janitor)을 하고 가죽옷 가게에서 아르바이를 했던 우리 부부의 유학생활이 유난스러워 보였는지...어떤 이는 우리한테 '수기'를 쓰라고 권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혹은 이미 갖고 있는 돈으로 넉넉하게 혹은 불편하지 않을 만큼 남의 나라에서 공부를 하는 그네들 눈엔 우리의 유학생활이 퍽이나 남달라 보였던게다. 허나 그렇게 살았던건..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해서도 있었지만.. 이 나이에..연로하신 부모님들한테 용돈도 보태드리지 못하는 데..우리가 자급자족해야 해야 한다게 우리의 생각이었다. 물론 장담할 수는 없다. 시댁이나 친정이 넉넉하셨다면..정말 힘들었을 때 금전적인 도움을 요청했을 수도 있을테지만 어느 정도 다 지나온 요즘에 와서는 힘들긴 했지만 그렇게 도움받지 않고 우리끼리 해낼 수 있었던 게 더 값진 경험이었다는데 남편도 나도 공감한다.  

허긴 유학생들 대부분이 상당히..좀..그럭 저럭 '있는 집' 자손들인 건 분명했다. 특히 장학금없이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다 부모님들의 원조에 의존했던 학부생들 대부분은 다들 여유있어보였다. 그래도 우리랑 가까이 지냈던 젊은 친구들중엔 그런 부모님들이 보내주신 돈을 헛되게 쓰지 않으려고 낭비하지 않고 알뜰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있지만 많은 친구들은 그런 여유를 즐기면서 지낸다. 새차를 뽑고 방학마다 미국 여기 저기 놀러다니고 때론 가까운 카지노에 가서 게임을 즐기면서. 누군가 그랬다. 학교 타운에서 차장사(car dealer)하는 이들사이엔 학기초가 되면 새로 정착하는 한국사람들이 최고의 고객으로 친단다. 이유인즉은 방금 시장에 나온 새모델을 그것도 신용카드가 아닌 뭉텅이 현금을 내고 구입하는 대부분이 외지에 자녀들만 두고 가는 한국부모님들이라니 그네들한테야 봉이나 다름없는게다.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 나라에와서 자기 돈으로 그렇게 누리고 산다는 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건 가타부타 할 얘기는 전혀 아니다. 허나 그런 여유로운 경제적 뒷받침이 자식의 유학생활에 그리 긍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 같진 않다. 그건 공부보다는 놀꺼리..술문화나 밤문화 혹은 도박문화랑 더 친근한 유학생활을 보내게 하는 원동력(?)중에 하나가 바로 그런 금전적인 여유로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큰 자식이니 이제 혼자 힘으로 해보라고 절제된 생활을 가르치려고 하시는 멋진 부모님들도 계시다.  

물론 그런 부럽쟎은 환경속에서도 세상경험을 한다는 차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제법 철이 든 젊은이들도 있다. 한 처자는 집 형편이 그렇게 힘들지도 않건만 자기힘으로 해보고 싶다며 졸업할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고 했다. 물론 우수한 성적과 함께. 허나 남의 나라에서 공부를 하면서 아르바이트까지 해내려면 그것도 한두달이 아니라 끈질기게 해내려면 왠만한 절박함갖고는 쉽지 않다. 남편이 여름방학 3개월동안 뉴욕에서 웨이터를 하면서 학비를 벌었다는 말에 관광도 할겸 경험삼아 자기들도 한번 해보겠다며 남편의 조언을 받고 뉴욕을 떠났던 청춘들중 실제로 일해서 학비를 벌었던 이들은 한명도 없었다. 오히려 돌아오는 그네들 손엔 뉴욕 명품가게에서 구입했음직한 물건들이랑 그곳에서의 여행했던 뒷얘기들뿐이었다. 남편말대로 절박하지 않은 이들이 버티기엔 쉽지 않은게 유학생활중의 아르바이트일게다. 더군다나 그런 놀거리가 많은 대도시에서는 더더욱.

이에 비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갖고 있는 대학원생들은 생활력이 강하다. 거의 대개가 입학할 때부터 학비를 면제받고 일주일 20시간씩 조교일을 하면서 공부를 한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적게는 한달에 800불에서부터 많게는 이천불넘게까지 받는 그 조교월급으로 생활을 한다. 남편이 학생이었던 시절 우린 한달에 평균 천오백정도 되는 돈으로 한달을 살았다. 한국돈으로 백오십만원정도되는 돈으로. 그 금액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보탠 삼백불정도의 돈이 포함되었다. 그 돈에서 생활비랑 공과금을 빼고 나면 남는 돈은 한 사오백불정도.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오십만원남짓한 돈으로 한달 생활비를 해야 하니 식비빼고 나면 남는 돈으로 한달을 살기란 참으로 빠듯함에도 한국집에서 보조없이 우리처럼 자력으로 살아야하는 유학생들은 특히 그 안사람들은 그런 빠듯한 가계를 꾸려가느라 알뜰하기 그지없다. 같이 모여앉아 얘기하다보면 어디서 세일을 싸게 하고 어느 가게가 물건을 더 싸게 파는지를 알려주는 알뜰주부들이 늘 있었으니까. 아마도 대부분 주립대학에서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의 대부분은 다들 비슷한 형편들이었을게다. 

그런가 하면 혼자 몸도 아닌 온 가족을 데리고 온 대학원생인데도 조교자리없이도 한국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하며 여유있게 살다가 졸업하는 있는 집 이들도 많았다. 그런 집들은 경제적인 여유로 인해 한국에서 처럼 온갖 과외를 다 가르친다. 재즈댄스에다 바이올린 피아노 등등 해서 많게는 여덟까지 종목(?)까지 과외를 시킨다는 집도 있었으니까. 특히 그런 집에선 자기 아이들한테는 세일하는 옷은 절대 안 사입고 방학때 되면 여기 저기 놀러다니는. 해서 주변 다른 가족들이 참으로 많이 부러워했었다. 물론 그네들도 그 나이에 더군다나 혼잣몸도 아닌 온 가족들이 지내기 위한 생활비에다 한학기 생활비를 다 보조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속내도 나름 안 편했을게다. 그렇게 시부모님들의 지원을 받아가며 살던 한 친구의 속앓이를 들어본 적이 있던터라 어찌보면 한국 부모나 형제한테 손 안 벌리고 자력으로 살아내는게 몸은 고되더라도 맘은 편하겠다 싶었으니까.

그렇게 여유로운 유학생활이 아니라 고생을 할 각오로 오는 누군가 있다면 고생할 맘의 각오 말고 반드시 필요한 마음 가짐이 있다. '절대로 딴길로 새지말기. 잠시 샛길로 새더라도 제자리로 돌아오기.' 그런 다짐이 필요한 건 공부를 하겠다고 남의 나라를 밟은 적쟎은 젊은이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샛길로 새서는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데 있다. 아니 한번 새면 돌아오지 못한다는게 더 맞는 말일게다 . 그 한 예로 뉴욕에서 아르바이를 했던 남편을 통해 들은 바에 의하면 대도시인 그 곳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인 젊은이들 많다고 한다. 대부분이 한국가게에 사업체에서 일하는데 불업취업인 셈이다. 원래 그들이 미국땅을 밟은 목적은 공부다. 영어공부를 포함해서. 헌데 그들의 하루 일과 대부분은 공부대신 아르바이트에 쓰인다고 한다. 어떤 이는 아예 공부를 접은 채로. 특히 그렇게 하루 일하고 나서 손에 현금 쥐는 맛을 들린 청춘들은 일이 끝나면 돈을 쓰러 나간단다. 놀거리가 많으니 유혹이 그만큼 많은게다. 그런 모습을 보고 온 남편...주변 청춘들한테 그런다. 차라리 도시보다 이런 공부밖에 할게 없는 시골에서 하는 유학생활이 더 낫다고. 그건 너무나 많은 청춘들이 왜 자기가 여기에 왔는지 원래 이유를 잊어버리고 하루살이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 불법체류신세를 감당하면서말이다.

허니 유학을 막연하게 꿈꾸고 있는 누군가에게...기꺼이 고생할 맘이 있다면..딴길로 새지 않을 각오만 있다면.. 더군다가 젋다면 저질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일장일단은 있다. 벌어서 해야 하므로 돌아가다 보면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고..그 과정에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 수도 있다. 여기까지 와서 배운 영어가 남의 나라 땅 하나도 밟아보지 않고도 훨씬 잘 하는 이들에 밀릴 수도 있다. 그렇게 힘든 과정에서 얻는 경험이라는게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각자 판단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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