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에게 Dear 그림책
한지원 지음 / 사계절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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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편지를 쓴다면 나는 오른손에게 쓸 것이다. 내 오른손은 마음이 더 쓰일 수밖에 없는 특별한 손이다. 어린 시절 화상을 입은, 예쁘지 않은 손이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보지만 되도록 감추고 싶은, 원망스러운 손이었다. 그러다 오른쪽, 왼쪽 기초 방향마저 헷갈려 곤혹스러운 체육 시간, 내게 오른손은 슬쩍 힌트를 주는 커닝 메이트였다. 화상자국 있는 손 쪽이 오른쪽! 우향우는 이쪽이야.

제목을 넘어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보자. 한 몸에서 난 두 아이가 티격태격 경쟁하며 성장하듯 두 손의 신경전이 흥미진진하다. 오른손이 형 같고 왼손이 동생 같다. 작가는 지혜로운 엄마가 되어 형 이야기, 동생 이야기 다 차례차례 들어주며 공감해준다. 각자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면 상대가 얄밉고 서운할 수 있지만, 상대 입장이 되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작가의 말에 ‘티 나게 고생하는 오른손과 묵묵히 애쓰는 왼손을 모두 응원합니다’라고 해둔 것처럼 이 책은 서로 다른 두 입장, 처지의 역지사지를 풀고 있다.

안되는 건데 안 하는 것으로 오해받는 어린이, 장애인, 노인, 여성 등 비주류 약한 존재를 떠올리게 된다. 오른손은 오른쪽 손일 뿐 옳은 손이 아니다. 왼손은 왼쪽 손일뿐이다. 오른손이 주연배우, 피디라면 왼손은 조연배우, 스태프일 것이다. 눈에 띄며 조명을 받는 일을 해내기 위해 보이지 않게 이뤄지고 있는 숨은 노력도 마땅히 박수받아야 한다.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자기 일을 하는 것이다.

저마다 잘할 수 있는 게 다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잘하는 사람은 더 많은 기회를 가지며 더 잘하게 되고, 못하는 사람은 드문 기회도 살리지 못해 더 못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 오해를 풀고 이해로 나아가기까지 극적인 사건-이 책에서 붉게 “짝” 소리가 나는 그런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전에 지켜봄, 손 내밂 등 해동기는 더 필요하다.

어느 한 손이 주력으로 하는 일 말고 양손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본다. 손뼉치기, 머리땋기, 노 젓기, 포옹하기, 쌈싸기, 신발끈 매기, 깍지 끼기, 피아노치기, 자판 두드리기 등등이 떠오른다. 더불어 몸의 절반씩 나눠 미는 때 밀기와 같이 교대로 하는 일도 생각난다. 왼손과 오른손, 둘 다 꼭 필요한 손이다. 혼자선 해낼 수 없지만 둘의 결합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이 책을 당장 아이들에게 그냥 읽어주고 싶기도 하지만 수업용으로 이리저리 활용할 아이디어가 생각나 아껴두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리저리 쓸 일이 많은 손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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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2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구미 2022-09-28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 저는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했는데, 꼭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더불어 사과 깎기 할 때 왼손의 일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 오늘 집에 가서 사과를 깎아 가며 왼손의 역할을 더 찬찬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
 
삘릴리 범범 사계절 그림책
박정섭 지음, 이육남 그림 / 사계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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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판형이 크다. 호랑이도 크고, 집값도 크고, 갖고 싶은 소망도 크니 클 수밖에 없었겠다. 호랑이가 무지 힙해 보인다. 몸매와 몸짓이 다 그렇다. 써놓고도 웃기지만 볼수록 그런걸. 피리 소리를 듣기 전에 호랑이에 먼저 홀려 든다.

수묵에 노랑이 포인트가 되어 경쾌하다. 그런데 가만 보면 천진난만 노랑이 아니다. 토선생의 황금부똥산 간판 색이 의미 답지가 된다. 노란 금, 황금색이다. 호랑이, 토끼, 소금장수 동료 동물들 모두 눈이 노란색이다. 돈에 환장한, 돈밖에 모르는 황금만능 자본주의 세대 우리들 모습이다. 갈수록 점점 더 많은 가치가 돈에 매몰되고 있다. 아이들 역시 돈 많은 백수, 건물주가 꿈이라고 부끄러움 없이 말한다.

오늘날에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금전욕에는 전적으로 굴종하고 그것이 명령하면 무엇이든 한다. 금전욕은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할까? 모든 사람의 원수가 되고 적이 되라고, 본성을 잊고 신을 모독하라고, 너를 나에게 바치라고 명령한다. 사람들은 그 명령에 따른다. 우상은 소와 양을 산 제물로 바치라고 말하지만, 금전욕은 영혼을 제물로 바치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인생독본> 하권, 137~138쪽, 크리소스토모스

‘영끌’이라는 말이 버젓이 부끄럽지 않게 쓰이고 있다. 이 시대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가난한 것이 유일한 부끄러움이다. 이런 걸 쓰는 나는 아직 조금 부끄럽다. 나 역시 고매한 척 다르게 살고자 하지만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색, 소금 장수의 탈 색인 빨강색이다. 탈 속 글썽이는 눈이 유일하게 흰색이다. 빨강 탈에 노랑 눈이 투머치라 피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돈 말고도 중요한 게 있음을 아는 인물이란 표식 장치도 되지 않을까.

색도 색인데 탈, 가면이란 것 자체의 의미가 무겁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내 집 마련을 위해 우리의 본심, 본능, 본래 모습을 숨겨두고 산다. 토끼 간처럼 따로 떼놓고 살 수도 없는 것인데 떼 놓고 살지 않으면 살 수도 없는 세상살이다. 꿈의 내 집 마련을 어찌어찌해도 그게 끝인가. 그 집을 유지하기 위해, 더 나은 집으로 옮기기 위해 우리는 끝내 벗을 수 없는 탈을 쓰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린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어른이 읽으면 풍자적 요소 때문에 더 깊이, 씁쓸 찌르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작은 집 바깥기둥에 걸려 있는 탈의 의미를 어른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 서점 행사에 박정섭 작가님이 오셨다. 강연 후 사인회에서 작가님의 <싫어요 싫어요>를 들고 기다렸다. 그러다 앞 사람 책 <삘릴리 범범>에 하는 사인을 봤다. 내집마련을 축원을 담은 사인이었다. 지상과제, 내집마련이 소원인 내게 그 사인은 부적처럼 느껴졌다. 저두요! 영혼을 끌어올 필요 없이 책 한 권을 끌어오면 되는 것이니 냉큼 뿌듯이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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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 7년 동안 50개국을 홀로 여행하며 깨달은 것들
카트린 지타 지음, 박성원 옮김 / 걷는나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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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인도, 스페인, 서유럽-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스위스, 모나코-, 일본 홋카이도, 라오스, 터키.. 내가 가본 나라들이다. 적게는 8명, 많게는 서른 명도 넘는 인원이 함께 한 패키지여행이었다. 어학실력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안전욕구가 강한 내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참 전 알라딘 굿즈에 혹해 금액 맞추느라 충동적으로 골라 담은 책이다.(이런 직접적인 책제목 별로 안 좋아한다) 몇 해만에 책장정리를 하며 한번 읽긴 하고 내다팔 요량으로 읽었다. 생각보다 많이 좋다. 말 그대로의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자세뿐 아니라 삶이라는 긴 일상 여행에 필요한 것들에 대한 적절한 조언이 가득하다. 최소 혼자 여행을 떠나기 전까진 소장할 참이다.
서울, 제주 등 국내 타지부터 혼자 여행해보자. 슬슬 조심스레 반경을 넓혀나가보자. 걱정보다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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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기억 극장 - 제13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장편 부문 우수상 수상작 웅진책마을 115
최연숙 지음, 최경식 그림 / 웅진주니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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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고 싶은 기억이 많다. 최근에 같이 살던 반려동물, 달팽이가 떠나면서 못해준 기억 때문에 괴롭다. 제 명대로 못 다 살고 간 게 다 내 무지, 부주의, 소홀함 탓이겠기에 미안하고 미안하다. 달이의 마지막 기력 없던 모습, 쭈그러든 모습이 자꾸 머릿속에 밟힌다. 그래서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이 담긴 사진도 못 보겠다. 있다 없음의 허전함이 견디기 힘들다. 아예 내게 없던 존재였으면 어땠을까.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지워버리고 말까. 아니다, 지금 이 시간이 괴롭고 힘들다고 없던 일을 만들 수는 없다. 시간에 따른 망각으로 지워지더라도 분명 기억하려 애써야 할 것이 있다. 그저 일어나는 일은 없다. 기억을 잊고 다른 반려동물을 데려오는 일은 만들면 안된다. 함께함의 무게, 무언가를 돌보는 일의 막중함을 잘 기억해야 한다. 두 번 잘못하고 싶지 않다.

<경성 기억 극장>은 일제강점기 어두운 역사,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는 일본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역사는 기억이고 기억에는 편집이 불가피하다. 일본의 파렴치한 부정과 왜곡을 기억 삭제 장치라는 아이디어로 풀어낸 작가의 상상력이 신선하다. 기억나지 않으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면 없던 일이 될 수 있나. 내 기억만 지우면 그만인 일인가. 함께 사는 세상 우리는 서로 기억을 나눠 갖는다. 단면의 기억은 없다. 가해자, 피해자로 입장이 다른 양면의 기억은 커다란 간극으로 틀어질 수 있기에 같이 맞춰보고 확인해 기억을 재정렬해야 한다. 개인의 다툼도 그러한데 국가 간 문제는 더욱 그러하겠다.

일본은 끊임없이 역사를 부정하고 지우려 하고 있다. 타민족에게 크디큰 상처를 끼친 선대를 부끄러움 없이 떠받들고 후대에게 흑역사를 은폐하고 왜곡하여 전달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억을 공유한 다른 민족이 다 지켜보고 있다. 일본이 역사를 지우고 지우려 애써도 다 기억하고 있다. 지우려 하는 이 역사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 그 사실을 준엄하게 받아들여 다시 그릇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나에게만 삭제는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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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의 여름 사계절 그림책
김상근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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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좋다. 여름은 수박의 겉과 속처럼 짙푸르고 빨갛다. 이 책은 그런 통상적인 여름과 다른 결이다. 연둣빛, 하늘빛, 노을빛 등 파스텔톤 봄 같은 여름으로 데려간다. 두더지와 거북이의 여정을 따라가는 내내 더 순해지고 맑아지는 기분이다.

“두더지라고 다 땅파기를 잘하는 건 아니야. (중략) 오늘은 안 할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이 부분을 ‘***이라고 다 ***를 잘하는 건 아니야.’ 바꿔 감정이입을 한다. 여기서부터 난 벌써 두더지다. 들뜨고 신나 감행하는 모습, 좌충우돌 실수투성이인 모습뿐 아니라 제 기분에 빠져 옆에 다른 사람을 멋대로 생각하는 것(가끔 그렇다)까지도 계속 나다. 내가 두더지라면 거북이는 내가 바라는, 많은 이가 바랄 이상적인 친구 같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아, 내게 그런 친구가 있었다. 많은 부분 묵묵히 내게 맞춰주면서도 본인도 좋았다고, 재미있어 그런 거였다고 했던 친구가 있었다. 같이 숲으로 돌아간 이 책의 해피엔딩과 달리 내 친구는 하늘바다에 떨어져 있게 되었다는 게 슬프다. ‘두더지의 소원’을 먼저 알고 좋아해 소개해주었던 친구였기에 분명 이 책도 많이 좋아했겠다.

그림도 예쁘고 이야기도 아기자기 재밌지만 내가 느끼는 매력은 따로 있다. 둘의 소통이 무엇보다 좋다. 두더지는 묻지 않았다. 지레짐작하고 앞서 이끌었다. 거북이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했다. 뒤늦게 가만가만 아주 작고 아주 느린 소리로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서로 미안해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더 좋았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책을 덮고 자꾸 검색하게 된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바다가 어디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은 뭐지? 바다를 고프게 한다. 다른 계절도 좋지만 여름이면 바다, 바다 노래를 하게 된다. 사람들 가득한 바다, 상술에 찌푸려질 바다일 걸 모르지 않는데 매번 판타지를 갖게 된다. 친구가 떠나기 전 함께 가고팠던 바다에 이 책을 안고 가 인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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