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삘릴리 범범 ㅣ 사계절 그림책
박정섭 지음, 이육남 그림 / 사계절 / 2022년 8월
평점 :
이 책은 판형이 크다. 호랑이도 크고, 집값도 크고, 갖고 싶은 소망도 크니 클 수밖에 없었겠다. 호랑이가 무지 힙해 보인다. 몸매와 몸짓이 다 그렇다. 써놓고도 웃기지만 볼수록 그런걸. 피리 소리를 듣기 전에 호랑이에 먼저 홀려 든다.
수묵에 노랑이 포인트가 되어 경쾌하다. 그런데 가만 보면 천진난만 노랑이 아니다. 토선생의 황금부똥산 간판 색이 의미 답지가 된다. 노란 금, 황금색이다. 호랑이, 토끼, 소금장수 동료 동물들 모두 눈이 노란색이다. 돈에 환장한, 돈밖에 모르는 황금만능 자본주의 세대 우리들 모습이다. 갈수록 점점 더 많은 가치가 돈에 매몰되고 있다. 아이들 역시 돈 많은 백수, 건물주가 꿈이라고 부끄러움 없이 말한다.
오늘날에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금전욕에는 전적으로 굴종하고 그것이 명령하면 무엇이든 한다. 금전욕은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할까? 모든 사람의 원수가 되고 적이 되라고, 본성을 잊고 신을 모독하라고, 너를 나에게 바치라고 명령한다. 사람들은 그 명령에 따른다. 우상은 소와 양을 산 제물로 바치라고 말하지만, 금전욕은 영혼을 제물로 바치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인생독본> 하권, 137~138쪽, 크리소스토모스
‘영끌’이라는 말이 버젓이 부끄럽지 않게 쓰이고 있다. 이 시대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가난한 것이 유일한 부끄러움이다. 이런 걸 쓰는 나는 아직 조금 부끄럽다. 나 역시 고매한 척 다르게 살고자 하지만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색, 소금 장수의 탈 색인 빨강색이다. 탈 속 글썽이는 눈이 유일하게 흰색이다. 빨강 탈에 노랑 눈이 투머치라 피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돈 말고도 중요한 게 있음을 아는 인물이란 표식 장치도 되지 않을까.
색도 색인데 탈, 가면이란 것 자체의 의미가 무겁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내 집 마련을 위해 우리의 본심, 본능, 본래 모습을 숨겨두고 산다. 토끼 간처럼 따로 떼놓고 살 수도 없는 것인데 떼 놓고 살지 않으면 살 수도 없는 세상살이다. 꿈의 내 집 마련을 어찌어찌해도 그게 끝인가. 그 집을 유지하기 위해, 더 나은 집으로 옮기기 위해 우리는 끝내 벗을 수 없는 탈을 쓰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린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어른이 읽으면 풍자적 요소 때문에 더 깊이, 씁쓸 찌르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작은 집 바깥기둥에 걸려 있는 탈의 의미를 어른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 서점 행사에 박정섭 작가님이 오셨다. 강연 후 사인회에서 작가님의 <싫어요 싫어요>를 들고 기다렸다. 그러다 앞 사람 책 <삘릴리 범범>에 하는 사인을 봤다. 내집마련을 축원을 담은 사인이었다. 지상과제, 내집마련이 소원인 내게 그 사인은 부적처럼 느껴졌다. 저두요! 영혼을 끌어올 필요 없이 책 한 권을 끌어오면 되는 것이니 냉큼 뿌듯이 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