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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봉이라서 ㅣ Dear 그림책
한지원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평점 :
숏츠를 즐기듯 그림책도 글밥이 많으면 읽기를 미루게 된다. 그런 책은 나중에 볼 영상으로 저장된 것들의 운명처럼 다시 들추기 힘들다.
한지원 책은 재밌다. 간결한 그림과 글이 촌철살인 웃음을 준다. 사람마다 웃음의 크기와 포인트가 조금 달라져도 이 책을 보면서 웃지 않는 사람을 못 봤다. 웃기만 하나, 감탄도 한다. 어떻게 흔한 면봉으로 이리 기찬 이야기를 뽑아내시나. ‘왼손에게’를 너무 띵작으로 만나 이번 작품도 기대했고 기대 이상 부응했다.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힘든데 우리 작가님이 그걸 또 해내셨다. 독자로 내가 찾은 의미는 존재와 인생이다.
1. 존재: 나
지난번 책이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은 자기 자신이다. 결국 나다. 어떤 책을 읽든 무슨 생각을 하든 출구는 나다. 광부, 의사, 수리공, 청소부가 되는 면봉처럼 우리는 가정과 직장에서 여러 역할과 임무를 수행한다.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중에 어려움, 힘듦, 보람, 즐거움이 교차한다. 이런 일, 저런 일을 겪는 중에 나도 나를 알고 나는 내가 되어간다. 지치고 부러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 속에 다 다른, 결국 다 같은 내가 있다.
2. 하루-인생
한 팩에 들어있는 빽빽한 면봉만큼 많은 나날이 있다. 1년 열두 달, 365일, 하루 24시간이 그렇다. 새로운 다짐으로 빡빡하다가 이내 느슨해진다. 그러다가 부러지는 날도 있고 다시 내 쓸모를 다하는 날도 있고 하릴없이 처박히는 날도 있다. 어제는 내가 대단히 별로였다가 오늘은 또 쫌 괜찮은 것 같은 나날을 엎치락뒤치락 산다. 잘나고 못나도 다 엇비슷한 인생들이다. 얄궂고 한편 다행스러운 일이다. 언제까지 끄르고 풀어낼지 알 수 없지만, 내일을 또 기대하고 오늘을 긍정하며 인생 고고씽!!
‘면봉이라서’는 일상 요물 면봉 자체 그대로 읽어도 좋지만 거듭해 읽으면 의미가 확장된다. 면봉 하나는 내가 되었다가 어느 하루에서 한 인생까지 된다. 면봉의 변주처럼 작가님의 글도 내 일기로 패러디되고 오마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