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걸어라 - 산티아고 가는 길
조이스 럽 지음, 윤종석 옮김 / 복있는사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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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준비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지 않아도 관심있는 사람에게 읽을 만한 책을 딱 한 권 추천하라고 한다면,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추천하겠다.

사실 이 책 덕분에 산티아고행에 관한 환타지가 모조리 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귀하다. 여느 여행기들과는 달리, 바깥의 풍경이 아니라 내면의 풍경을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경치가 아름답고 멋있었던 곳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비오는 진창길을 홀딱 젖어가며 몇날 며칠 걸었던 일, 집 앞을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소똥을 깔아 심술부리는 현지인, 냄새나고 가난한 노숙자 같은 생활, 불편한 잠자리와 배고픔, 부르튼 발과 온갖 질병들에 관한 얘기만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갑을 지난 노수녀는 이 특별한 길에 무언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 이 글만 읽어선 그게 무얼지 전혀 가늠되지 않지만, 그런데도 그런 곳을 굳이 찾아가고 싶어진다.

그 길을 함께 걸었던 20년지기 목사가 까미노에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자 작가는 그와의 우정을 떠올리며 지난 여정을 되돌아본다. 까미노는 현재고 까미노는 전진이며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까미노의 교훈을 영원히 간직하리라 맹세하는 작가는 헤어진 벗과의 이별 이후로도 계속 삶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느긋하게, 느긋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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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이르는 길 - 일상 속에서 피워내는 바가바드 기타의 영적 가르침
람 다스 지음, 이균형 옮김 / 정신세계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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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따끔 몹시 만족스러운 책을 읽고 나면 출판사가 무진장 고마울 때가 있는데 이 책이 그랬다. 요즘 쏟아져나오는 무수한 영성 서적들이 돈벌게 해준다는 그럴싸한 문구를 달고 '경제 경영' 서적란에 꽂혀있는 것을 보며 조금은 텁텁한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목이 마른데 우유나 주스만 들이키며 왜 이렇게 갈증이 가셔지지 않을까 갸웃하는 느낌이랄까.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갈증을 적셔주는 물 한 컵 같은 느낌이었다.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을 일상 속에서 어떻게 적용할까에 관한 책이라고 서문에서 보았는데, 정작 '기타'를 읽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해가 가능했다. 저자가 '기타'를 공부하면서 경험해온 일상과 기타의 접점을 쉬운 언어로 조곤조곤 풀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학교수라는 안정된 신분을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약물을 이용한 영적 여행에 몰입했다. 아무리 영적 체험을 위한 도구로 쓰였다고는 해도 LSD와 같은 약물을 너무 가볍게 다룬다는 느낌은 없지 않았지만 알약 하나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깨달은 자들만 누릴 수 있다는 지복의 상태에 근접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었다. 약물을 통한 체험은 일시적일 뿐이고 결국 수행을 해야 더 오래고 깊은 지복의 경지에 다다른다는 것이 저자의 해명이긴 하지만 나처럼 귀얇은 독자는 어디서 LSD 한 알 구할 수 없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게되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가 경험한 지복의 상태를 되풀이해서 설명해주는 것도 좋았지만, 약물을 통한 체험의 세계에서 수행의 세계로 옮겨오기까지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자세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래도 이 책에 대한 내 만족감은 별 다섯을 주고도 모자란다. 마약에 대한 내 생각도 결국은 무엇이 옳다 그르다, 무엇을 해야한다는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일 뿐이다. 결국 이 모든 게 신들이 벌이는 한 판 유희인 것을. 그 잔치판에서 어떡하면 겉돌지 않고 뛰어들어 함께 즐길 수 있을까가 이 이후에 남은 과제라 하겠다. 저자의 제안은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 가슴을 신뢰하고,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청소하는 작업을 할 것, 그리고 다르마라고 불리우는 우주의 섭리를 믿으라는 것이다. 정말 그러면 될까? 그렇게만 하면 나 역시 신에 이르러 신들과 함께 한 판 멋들어지게 놀아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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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세요
티모시 프리크 지음, 이균형 옮김, 김진혜 그림 / 정신세계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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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표지에 돌고래 그림이 동화책처럼 사랑스러운 책은 '한 시간 안에 당신의 세계를 뒤집어 놓겠다'고 장담한다. 실제로 어떤 부분에서는 뒤집어질 뻔도 했다.('당신은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대목에서 그랬다.) 책은 쉽고도 명료한 언어로, 이 삶이 사실은 매트릭스에서처럼 '꿈'이며 우리는 모두 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깨어난다고 해도 용이 된 이무기처럼 승천하지 않은 다음에야 이 땅에 발붙이고 살 수 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꿈꾸는 사람과 이 꿈이 현실인 줄 착각하고 꿈꾸는 사람에겐 차이가 있을 것이다. 꿈인 줄 알면서 꿈 속에 있는 사람은 그 꿈을 진짜로 즐길 수 있게 될테니까. 꿈 속의 일로 스스로를 학대하고 괴롭히는 짓만큼은 적어도 그만둘 수 있게 될테니까.

사실 살다보면 우리는 의외로 많은 곳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현실이 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인을 받는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인이 그렇듯, 그것을 사인으로 인식하는 사람에게만 그 사인은 효력을 발휘한다. 어느 선지자의 말씀마따나 '들을 귀 있는 자'에게만 들리는 것이 복음인 거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확신하고 장담하는가? 내일도 동쪽에서 해가 뜰 것이라고 확신하고, 내일도 출근길 러쉬에 시달리겠구나 짐작하겠지만 정작 내일을 내가 살아서 맞을 수 있느냐란 문제야말로 가장 불확실한 것 중에 하나가 아닌가. 이 책은 미스터리로 가득찬 삶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밖에 없고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으로 현현한 순수 의식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세상은 우리 의식의 거울과도 같은 반영이고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이며, '사랑'으로 이 모두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책은 아주 쉽고, 단순하면서 다소 충격적인 진실을 조분조분 전달한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의 머리맡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예쁜 삽화와 편집 또한 책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장치라고 생각된다. 책 말미에 영어로 쓰인 원문이 실려있는 것도 마음에 든다. 중요한 메시지를 담은 책들이 이렇게 예쁘게 만들어지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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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밖의 복음서 - 예수의 또다른 가르침을 찾아서
이재길 지음 / 정신세계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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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경'이라고 알고있는 60여권 남짓 되는 책들이 사실은 누군가가 세운 어떤 기준에 의해 추려진 것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불과 10여년 전이었다. 그마저도 교단과 종파에 따라 쓰는 성경도 조금씩 달라 가톨릭 성경은 개신교 성경보다 세 권인가 네 권이 더 많았다.

이 책은 우리에게 최초로 성경이라고 알려진 책을 편집했던 누군가가 누락시켰던 복음서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그 이름도 생소한 마리아 복음, 도마복음, 요한의 비밀서, 야고보의 비밀서, 싸우는 자 도마서, 진주의 찬미- 이렇게 여섯 권이 엮은이의 주석을 통해 더 가깝고 친밀하게 다가온다. 특히 주류 성경 속에선 언제나 그림자처럼 조용히 등장했다 사라졌던 여인들도 사실은 예수의 가르침을 깊게 이해했다는 부분은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전해진 '마리아 복음'은 여성으로서의 직관과 이해를 통해 스승의 가르침에 다가가고 있는 듯해 신선하게 느껴진다.

영지주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기독교든 불교든, 결국엔 모든 가르침이 하나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오랜 시간, 예수의 정말 귀중한 가르침들이 이렇게 땅 속에 묻혀 잠자고 있다가 비슷한 즈음 세계적으로 깨어나고 있는 것은 비단 우연이 아닐 터이다. 스승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말씀이 무엇인지, 눈 크게 뜨고 귀 번쩍 열어 잘 보고 듣도록 노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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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인연담 - 인연 속에서 깨치는 부처님 말씀
정태혁 지음 / 정신세계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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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여행 중에 어느 절 앞에서 불경을 나무판에 조각해 파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 분이 들려주신 말씀이 정확하게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법구경의 한 구절이라는 것만 기억난다. 글귀는 단순했지만 단순함 너머로 깊은 진실을 간직한 말씀이었다는 인상이 아직도 남아있다.

남쪽으로 전해지는 것과 북쪽으로 전해지는 두 가지 법구경 중 남전 법구경을 부처님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들과 함께 묶은 책이 바로 이 '법구경 인연담'이다. 말씀으로만 읽었으면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뻔한 게송들이 '인연담'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묶여있어 게송의 감동을 더해주고 더 깊이 가슴에 새겨지는 것 같다.

인연과 일상 속에서 느끼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말씀의 향기, 고즈넉한 산사에서 은은하게 울리는 범종 소리처럼 책을 덮고 난 후에 더 길다란 여운이 남는다. 맑은 책, 좋은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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