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않을 물음표
강도영 글, 그림 / 여름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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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자 엽기 똥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신예 강풀은 명실공히 인터넷스타, 아니 작가다. 생활 속의 신변잡기 유머와 칸 없는 주절주절 서술기법의 '강풀식 만화' 형식을 새로이 창출해 낸 것은 차치하고, 비비스&버드헤즈 같은 녀석들이나 히히덕댈 똥 유머에 첨착하던 그의 작품 세계가 엽기 유머 속에서도 여느 '닭고기 스프' 울고 갈 훈훈한 감동을 선사하기 때문.

그의 만화는 앞서 인기를 끌었던 <광수생각>보다 캐릭터나 내용이 어눌해서 더 좋고, <TV동화 행복한 세상>보다 완벽하지 않아 좋다. 앞의 두 작품이 기발한 스토리와 깔끔한 스타일로 상업적 감동을 선사한다면, 강풀은 평범한 스토리와 어리숙한 풍의 만화로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소박한 감동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의 감동은 심각하지 않아 더 좋은데 '가는 귀 먹은 부자의 엄한 대화'를 포복절도로 시작해 감동으로 마무리한 '가문의 유전' 편, 어린 날 싸구려 포르노 영화관을 드나들던 자신의 치부(?)를 낄낄대며 기억하는 '영웅본색', 기억 속의 히메나 선생님과 맥가이버의 타이틀 곡 '빰빰빰빰 빰~ '을 다시 생각나게 해주는 '그 땐 그랬지' 편들이 그러한 명작들이다.

그러나 흔하고 평범한 이야기만 하느냐 하면 그렇지만도 않은데, 그가 들려주는 귀신 이야기는 칼부림, 핏자국 한 번 나지 않고도 어찌나 등골이 서늘한지 웬만한 심령스토리 저리 가라다. 하나 아쉬운 것은, 편집 과정에서 잘린 건지 아니면 앞으로 나올 건지 모르겠으나 인터넷 상에서 본 요절복통 엽기에로유머 '노숙자 여인과의 동침' 같은 스토리들이 없다는 것이다. ㅠ0ㅠ 앞으로 2권, 3권...에서 그의 명작들을 꼼꼼히 실어주시길 빌어마지 않는다. ^0^

제목이 <지치지 않을 물음표>인 것 또한 처음엔 좀 의외였는데, 작가의 프로필과 만화 속에 녹아난 그의 인생여정을 알고 나니 이해가 갔다. 우스개 소리 좀 할 줄 아는 그저그런 N세대 네티즌인줄로만 알았던 그는 강경대, 김귀정과 함께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를 목터지게 불렀던 열혈청년이지 않은가. 대학 때와 조금도 변해 보이지 않는 투박하나 건강한 작가의 투쟁정신이 영원히 녹슬지 않기를, 사회와 인간에 대한 그의 물음이 영원히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PS. 그런데 책에 차례가 있었으면 좋아하는 편을 찾아보기 편할 걸 그랬다. ^^ . 편집장님, 다음엔 차례를 좀 넣어주시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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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21세기 키워드 1 - 비빔툰 가족과 함께 떠나는 미래 과학 여행
홍승우 글 그림, 이인식 원작 / 애니북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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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 선생의 '현대문명진단'을 아시는가? 동서양을 넘나드는 현대 사회의 분석과 미래예측은 물론이요, 한 눈에 똑 떨어지는 그림 설명까지 작가의 해박함과 유식에 혀를 내두르게 했던 명작 만화 말이다. ^0^ 영화에나 등장할 것 같은 과학기술이 판치는 21세기, 이원복 선생이 못다한 일을 홍승우, 이인식 두 양반이 해냈다. ^^

성지식부터 과학기술, 동물학까지 박학다식한 과학자 이인식 선생의 글에 엉성한 듯 하지만 상상력과 상징성이 뛰어났던 비빔툰 홍승우의 그림이 뚝딱 비벼낸 이 책은 두 번 들어도 이해하지 못했던 과학상식을 아주 쉽게 풀어놓아 좋다.

제노사이드가 나치의 유태인 멸살 등 광기의 폭력성을 뜻하는 것인지, 밈이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학습능력인지 이 어려운 과학용어를 이 책이 아니면 어찌 알았을 것이요, N세대의 역사적 의미와, 유전공학의 위험함을 두 사람이 아닌 어느 누가 이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표지에는 중고딩들을 위한 책이라 했지만 내용이 어찌나 박식한지 입사 상식 시험을 앞둔 어른에게도 강추할 만 하다. ^^ 앞으로 시리즈가 계속 나온다고 하는데, 신문은 읽기 싫고, 알고 싶은 거 많고 먹고싶은 거 많은 사람인 독자에게는 서울간 오빠 편지 마냥 목빼고 기다려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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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노래 - 이마 이치코 걸작 단편집 4
이마 이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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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오이와 동물육아의 세계로 떠났던 이마 선생이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와 반가움을 금치 못했던 동양 판타지의 백미! ^0^ 연대와 지역을 알 수 없는 마을에서 생명의 물을 위한 인간의 모험과 암투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려진다.

1편. 해변의 노래
가뭄이 든 마을, 영악한 영주는 속임수로 자신의 딸대신 고아 소녀를 기우제의 제물로 간택한다. 어린 소녀는 부당함에 항변하는 대신 희생양이 되기를 자처하며 물의 신 하백에게로 떠나는데, 어려운 고행 길에 고아 소년까지 떠맡게 되고, 혼자 감당하기 힘든 여정에서 사연이 있어 보이는 슬픈 눈의 자객이 그녀를 지켜주겠다 맹세하는데...크으~ 그녀와 자객의 운명은!!

2편. 예언
왼손잡이가 자신의 왕좌를 위협하리라는 무녀의 예언에 집착하여 마을의 모든 왼손잡이를 살해하는 어리석은 왕의 이야기. 그 마을을 지나던 자객이 왕좌를 위협할 세력이라 오해를 받고, 자객은 칼 대신 사랑으로 마을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는데...1편에서 살아남은 소녀와 자객의 후일담 ^0^

3편. 얼음의 손톱, 돌의 눈동자
북쪽으로부터 검은 세력이 몰려와 곡식을 타 죽게 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예의 그 자객이 문제 해결에 나선다. 도깨빈줄 알았던 검은 두건의 정체가 밝혀지고 너무나도 슬프고 아름다운 그들의 비밀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는데...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얼음의 손톱이라니 제목부터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아아~ 백귀야행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추, 강추, 또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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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책 (100쇄 기념판) 웅진 세계그림책 1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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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사표' 나이가 좀 있으신 독자라면 몇 해 전 방영됐던 광고를 기억하실 것이다. 무슨 핸드크림인지 빈혈약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용인 즉 가사에 시달린 주부가 남편에게 '주부 사표'를 내미니까 남편이 따뜻하게 손을 어루만지며 아내의 고단함을 알아준다는 내용이었던 듯 하다.

<돼지책>은 위 광고의 내용을 파스텔톤 삽화와 함께 뚝딱 한 그릇 그려낸 비빔밥이다.
동화라고 내용이 말랑말랑 하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기자기 귀여운 그림에 글자는 몇 줄 없지만 웬만한 사회학 논문보다 신랄하고 가슴 섬뜩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광고에서는 가족의 화해로 주부의 피로가 눈 녹듯 녹지만 현실에서는 어림 반푼어치 없는 소리기 때문이다. 이는 책에서도 지적하듯이 아빠는 '중요한' 회사에 나가지만, 엄마는 '밥먹고 집에서 하는 일이 뭐 있다고' '백날 해야 티도 안 나는' 집안 일을 담당하기 때문이랄까.

'중요한' 회사와 학교에서 돌아온 남편과 아이들은 엄마에게 '밥달라' '이불 개라' 스스럼 없이 주문을 하고, 엄마는 이를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묵묵히 감수해낸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횡포앞에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노동을 수행해 내면서 점점 시들어 가는데, 작가의 내공은 여기서 빛이 난다. 글 한 줄 없이도 빛 바랜 사진 톤의 삽화만 보면 엄마가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면서도 어떻게 여성과 자아와 자신의 이름을 잃어가는 지가 4컷의 그림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엄마는 내 맘과 똑같아 무릎을 칠 것이요, 아이들은 무심코 저지른 행동에 미안함과 엄마에 대한 사랑을 느낄 것이다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시사토론이나 대학의 여성학에서나 논의되던 여성의 노동과 가부장적 가정의 문제를 아이들 동화에 용감무쌍하게 도입하고, 또 성공해냈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백날 '엄마 도와 드려라' '네 이불은 네가 개야지' 잔소리를 해대고 싶다가도 문득 이 동화책을 슬쩍 아이의 책상에 놓아두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보는 만큼 느낀다. 때문에 집에서 매일 엄마와 마주하는 아이들에게 여성의 지위 향상은 인생의 시각을 결정하는데 아주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이 딱딱하고 오래된 고질병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교할 자 누구였던가. 그 몇 십년 불문의 역사를 돼지책이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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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언제나 네 친구야 어린이중앙 그림마을 5
킴 루이스 그림, 샘 맥브래트니 글, 박찬순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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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구멍도 파고, 언덕도 뛰넘으며 재미있게 놀던 어린 여우,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자는 엄마에게 더 놀고 싶어 투정을 부린다. '흥, 나하고 계속 안 놀면 엄마는 이제 내 친구 아니예요' (아이고오~ 무서워라 ^^;;;) 그렇게 용감한 척 저녁 숲을 혼자 헤매던 아기 여우. 더럭 무서운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나 엄마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 걸음아 날 살려라, 죽을 힘을 다해 달려간 그 곳엔 마지막 노을 속에 엄마가 기다리고, 달려와 안긴 아가에게 엄마는 말한다. '엄마는 언제나 네 친구란다'

내가 아직 아기였던 시절, 엄마에게 처음 대들었던 기억이 나시는가? 동물 그림 예쁜 동화를 고르다 맘에 들어 구입한 이 책을 읽고 그 날이 기억나 한참을 웃었다. 20년도 더 된 어느 날, 종이인형 놀이 관두고 시장에 같이 가자는 할머니에게 못된 소리 한 것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참 놀이가 재미있던 판에 생선 비린내 꿀쩍꿀쩍한 시장에 가자시는 것이 어찌나 귀찮던지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날 생각해서 하신 말씀이었는데 ^^;;;
어린아이 데리고 시장 가기가 얼마나 번거롭단 말인가) 할머니에게 그만 '난 안 가! 마귀할멈' 이라고 소릴 빽 질러 버린 것이다. 할머니는 조용히 방을 나가셨고, 난 좀 머쓱했지만 어린 자존심에 나가보기도 뭣해서 혼자 방에서 한참을 놀았는데 어느 순간 집안 어디에도 할머니가 안 계신 것이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가 멀쩡한 집 놔두고 어디에 가셨겠냐마는 ^^;;; 그 때는 어린 마음에 할머니가 나 때문에 집을 나가신 줄 알고 죄책감에, 겁에, 서러움에 엉엉 울다 잠이 들어버렸다. 몇 시간 후, 잠이 깨어보니 시장갔던 할머니는 '똑똑똑' 부엌에서 나무도마 소릴 내고 계셨고, 나는 반가우면서도 할머니가 화가 났을까봐 눈치 보며 안기지도 못하는데 할머니께서 뒤를 보더니 '어이구, 내 새끼...이제 깼어' 하며 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아아~ 그 때 할머니의 조끼 안에서 나던 눅눅한 담배냄새며 손에 배인 파, 마늘 냄새라니...

아기여우의 깜찍한 반항만큼 그림도 깜찍한 이 동화는 상당한 수준의 삽화가 실려있다. 사진으로 보듯 사실적인 여우의 눈동자며, 바람에 살랑살랑 흩날리는 여우의 털결, 그리고 마지막... 똑같은 털빛깔의 붉은 여우 큰 넘, 작은 넘 둘이 동굴에서 몸을 똥그랗게 옹송거리고 자는 걸 보고 있자면 ㅜ.ㅜ 아아~ 책인 줄 뻔히 알면서도 고 폭신폭신한 궁디를 만져보고 싶어 나도 모르게 손이 가고 마는 것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 동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강추! 강추! 또 강추! 이다.

PS. 우스운 이야기 하나. 책의 원제를 보면 <I'm not your friend>인데 한국어 책 제목은 <엄마는 언제나 네 친구야> 근데 둘 다 말이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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