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다락방님의 글을 읽으며 저도 두 번 읽은 이 책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아래의 발췌 문장을 보고 간단하게 페이퍼를 적어요^^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p.17)
이 부분을 읽다가 아, 나도 이 문장에 줄을 그었지 하면서 문득 몇 년 전에 읽은 시가 떠올랐어요. 저 문장과 비슷하게 일맥상통하는 시가 있거든요. 바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인생이란...... 기다림>이라는 멋진 시예요~
<인생이란...... 기다림>
인생이란...... 기다림.
리허설을 생략한 공연.
사이즈 없는 몸.
사고(思考)가 거세된 머리.
내가 연기하고 있는 이 배역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역할은 나만을 위한 것이며,
내 맘대로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
무엇에 관한 연극인지는
막이 오르고, 무대 위에 올라가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인생의 절정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늘 엉망진창이다.
주어진 극의 템포를 나는 힘겹게 쫓아가는 중.
즉홍 연기를 혐오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임기응변으로 상황에 맞는 즉석 연기를 해야 한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사물의 낯설음과 부딪쳐 넘어지고 자빠지면서도.
내 삶의 방식은 언제나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려 있다.
내 본능은 어설픈 풋내기의 솜씨.
긴장 탓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그럴수록 더 큰 모멸감이 되돌아올 뿐.
정상 참작을 위한 증거들이 내게는 오히려 잔인하게만 느껴진다.
한번 내뱉은 말과 행동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법,
밤하늘의 별들을 미처 다 헤아리지도 못했다.
서두르고 덤벙대다가 잘못 잠근 외투의 단추처럼
갑작스레 찾아온 우연이 빚어낸 안타까운 결과.
어느 수요일 하루만이라도 미리 연습할 수 있다면,
어느 목요일 하루만이라도 다시 한번 되풀이할 수 있다면!
하지만 금요일이 되면 벌써 새로운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어김없이 나를 찾는다.
그러곤 묻는다―자, 모든 게 이상없죠?
(잔뜩 쉬어터진 거친 목소리로. 막 뒤에서 헛기침으로 미리 귀띔을 해주는 일조차 없이.)
지금 이 상황을 임시로 마련된 무대 위의 간단한 오디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나는 정교한 무대 장치 아래 서서
모든 사물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배치되었는지를 똑똑히 보고 있다.
구석구석 놓여 있는 소품들의 정확성과 견고함은 가히 충격적이다.
무대를 회전시키는 장치는 벌써 오래전부터 작동 중이다.
저 멀리서 성운(星雲)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아, 이것은 틀림없는 개막 공연이다.
이 순간 내가 시도하는 모든 일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저지른 나의 행동, 나의 말, 나의 동작으로 영원히 굳어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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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뿐만 아니라 펼치는 페이지마다 좋은 시가 가득한데 책이 두껍기까지 해서 너무나 좋아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처럼 [끝과 시작]도 반복해서 읽었을 때 커다란 기쁨을 주는 책이에요. 이런 좋은 책들이 있어서 리허설 없는 인생이라도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