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엮다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단 한 권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자그마치 15년 동안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니까 이건 다시 장인의 이야기가 된다. 리처드 세넷이 지적하듯이 장인은 무언가에 확고하게 몰입하는 특수한 인간의 조건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장인들의 모습에서 어떤 감동, 숭고함과도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역시 세넷이 말하듯 굽은 발로 절룩거릴지라도 그 자신이 아니라 자기 일을 자랑스러워하는 헤파이스토스,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존엄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도해>라는 사전의 편찬에 확고하게 몰입하는 겐부쇼보 출판사 사전편집부 사람들의 면면에서 우리는 가장 존엄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이들의 몰입에 깊은 감동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현대 사회의 노동이 장인적 특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포디즘적 생산체제 이후로 대부분의 노동에 부여된 특징인 구상과 실행의 분리, 즉 일에 대한 고민과 실제 작업의 불일치는 스스로 자신의 일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없애버렸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되고 사고만 안 나면 된다. 그렇게 우린 인간이 아닌 기계가 되어가고, 퇴근 시간은 해방의 시간이 된다. 그런 점에서 겐부쇼보 출판사 사전편집부 사람들, 즉 마쓰모토 선생과 아라키 씨, 마지메와 니시오카, 기시베의 열정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일종의 이상일 뿐이다. 요리에 전념하고자 하는 가구야 씨나 미끈거리는 손맛까지 재현한 궁극의 종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미야모토를 비롯한 제지 회사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모두 불가능한 현실일 뿐이다. 그러나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다.

 

어쩌면 사전 만들기라는 일 자체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결코 완성될 수 없다는 점에서 사전 만들기란 불가능에의 도전이다.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수많은 단어들과 그 단어들의 적확한 의미를 찾아 짝지우는 일, 시간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의미들을 순간에 포착해 고정된 틀에 담아내는 일. 마지메의 생각처럼 아무리 훌륭한 사전이어도 시대에 뒤처지는 숙명을 피할 수 없다. 말은 생물이기 때문이다.”(114)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끊임없이 운동하는 언어가 지니고 있는 방대한 열량이 한순간에 보여 주는 사물의 모습을 보다 정확하게 건져 내 문자로 옮기는 일”(92) 뿐이다. 그러니까 물고기처럼 손 안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의미를 붙들어 두려는 사람들.

 

그뿐 아니다. 하나의 단어는 다른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고, 조합에 사용된 각각의 단어들은 또 다른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체계. 무한히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고 서로가 서로에 의지하며 서로가 서로에 연결되는, 그리하여 끝없는 페이지의 넘김 속에 마침내 제 자리로 돌아오는 미로와 같은 세계. 이 끝도 없고 출구도 없는 미로와 같은 세계를 헤매다 보면 주저앉기 십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을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라키씨는 말한다. 사람은 사전이라는 배를 타고 어두운 바다 위에 떠오르는 작은 빛을 모으지. 더 어울리는 말로 누군가에게 정확히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만약 사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드넓고 망막한 바다를 앞에 두고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을 거야.”(36) 말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 튼튼한 배가 될, 진리를 향한 끝없는 도전의 튼튼한 도구가 될 사전.

 

그런 점에서 장인들은 모두 플라톤주의자다. 도달하기 어려운, 아니 어쩌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완성태를 향해 무모하게 돌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완성을 향한 여정에 시간이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죽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죽음을 예감하는 병상에서도 용례채집카드 작성을 멈추지 않는 마쓰모토 선생이나 4교까지 완성된 원고에서 누락된 표제어를 확인하기 위해 한 달 동안 겐부쇼보 지옥의 진보초 합숙을 감행하는 사전편집부 사람들의 모습에서, 마침내 15년의 수고가 결실을 맺은 날 다시 개정 작업을 시작하자는 아라키의 말에서, 시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집념과 열정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완성을 향한 열정은 사전편집 일에 무관심하던 니시오카마저 변화시킨다. 한정된 시간밖에 갖지 못한 인간이 힘을 다해 넓고 깊은 말의 바다로 저어 나간다. 무섭지만 즐겁다. 그만두고 싶지 않다. 진리에 다가서기 위해 언제까지고 이 배를 계속 타고 싶다.”(186)

 

이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되는가. 이 점은 아무 생각 없이 사전편집부에 합류했다가 이들과 하나가 되어버린 기시베의 생각이 잘 드러내 줄 것이다. 많은 말을 가능한 한 정확히 모으는 것은 일그러짐이 적은 거울을 손에 넣는 것이다. 일그러짐이 적으면 적을수록 거기에 마음을 비추어 상대에게 내밀 때, 기분이나 생각이 깊고 또렷하게 전해진다. 함께 거울을 들여다보며 웃고 울고 화를 낼 수 있다.”(236) 말이란 우리가 가진 감정이나 생각의 미묘한 분위기를 적확하게 포착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단어와 표현을 찾으려는 노력은 결국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타인과 함께 웃고 울고 화를 내고 싶다는 욕망의 실현인 것이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바로 이 부분을 자극함으로써 우리 속 깊이 잠들어 있던 어떤 욕망, 불가능하지만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다는 욕망을 일깨워준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느끼게 되는 뭉클함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