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자유교육 - 위대한 평민을 기르는
송순재.고병헌.카를 K. 에기디우스 엮음 / 민들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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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교육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교육열을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사회적으로 교육에 쏟아 붓는 온갖 자원만큼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란 것이 그 사전적 의미,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및 바람직한 인성과 체력을 갖도록 가르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이라기보다는 신분상승이나 안정적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교육은 바람직한 사회생활을 위한 기초라기보다는 개개인의 생존을 위한, 더 나아가 남보다 우월한 생존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계급처럼 낙인찍히는 서열화된 학벌과 아이들을 죽음으로까지 몰아넣는 입시 경쟁, 경쟁의 스트레스를 폭력이나 왕따와 같은 비인간적 행위로 풀고 있는 아이들이다. 청소년 자살의 제1 원인이 교육인 사회, 사회에 나가기 위한 기초를 닦아주는 곳이 오히려 사회를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며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 것인가?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레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 물론 서로의 역사나 문화가 다르고 그래서 서로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도 매우 다를 것이기에 다른 나라의 교육체계를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아이들의 잠재된 능력을 계발하고 동등한 시민으로서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토대라는 교육의 목표는 서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교육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느 나라건 성공적인 교육 모델을 보여주는 모델을 찾아 그들의 방법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여기 덴마크라는 하나의 모델이 있다.

 

덴마크 교육체계의 특이한 점은 무엇보다 자유학교(Friskole)라고 부르는 대안적 성격의 학교가 대단히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유학교란 무엇인가?자유학교는 다양한 유형의 민간 교육기관을 가리킨다. 정부의 교육정책에 영향 받지 않고, 자체 교육철학과 목표에 따라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대안학교이다.”(202) 각각의 학교가 나름의 교육 목표를 가지고 그에 따른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겉보기엔 우리나라의 대안학교들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세세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그 차이가 드러난다.

 

무엇보다 자유학교는 각각 자체의 교육 목표와 교육과정을 가지고 운영되며 이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전혀 없다. 우리나라에도 자율적 교육과정을 가진 비인가 대안학교가 있지만 학력 인정이 되지 않아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검정고시와 같은 제도를 다시 거쳐야만 한다. 물론 학력이 인정되는 정부인가 대안학교도 있지만 이 경우 상당 부분 정부의 간섭이 이루어진다. 덴마크의 자유학교는 이러한 제한이 전혀 없다. 국민이 선택 가능한 하나의 교육 방식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덴마크의 학교법도 학부모와 교육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들은 공립학교 교육에 상응하는 수업을 스스로 시킬 수 있는 한, 학교에 보내야 할 의무가 없다.”(47)고 규정함으로써 교육 방식 선택의 자율성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

 

교육의 자율성이 인정되다보니 기존의 교육 방식과는 사뭇 다른 교육이 이루어진다. 학생의 자발성과 능동적 참여 그리고 공동체성을 함양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의 혁신적 교육 실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들은 학생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근본적으로 아이들은 세계를 탐구하고 발견하며, 그것에 대해 배우고 이해를 발전시키려는 호기심과 욕구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교사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또 다른 많은 차원에서, 그들이 행하고 스스로 발견한 것으로부터 세상을 배운다.”(100) 뿐만 아니라 교사의 역할도 달라진다. 이곳에서는 교사 또한 학생처럼 불완전한 이들이며 실수와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존재로 본다. 교사는 학생들이 경험해야 할 것을 앞서 경함한 덕분에 얻은 노하우를 공유하고 기획할 뿐이다. 교육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리의 삶을 바꾸게 하고 영향을 끼치는 것은 인간이지 책과 자격증이 아니지 않는가!”(248) 학생의 자발성과 잠재력을 존중하고 교사와 학생이 서로 동등한 교육 주체로 상호작용하는 교육, 이것이 바로 덴마크의 자유학교가 만들어가고 있는 대안적 교육의 모습이다.

 

덴마크에서는 기본적인 요건만 갖춘다면 학부모들을 비롯한 의지를 가진 주체들 누구나 이런 자유학교를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다. 학교가 설립되면 정부는 학교 운영비의 약 75% 가량을 지원한다. 교육과정에 대한 간섭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며, 선생님들 또한 반드시 교사자격을 가진 사람일 필요도 없다. 정부가 운영비를 지원하는 만큼 운영비 사용에 대한 감사가 이루어지는 하지만 이 감사 주체 역시 정부기관이 아닌 학부모들이 선출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 철저하게 교육 수혜자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자유학교는 덴마크 전역에 260여 개가 있으며 전체 의무교육 대상자의 약 13%를 책임지고 있다.

 

얼핏 보기엔 납득이 되지 않는다. 뜻 맞는 몇몇이 모여 학교를 만들고 애들을 가르칠 테니 지원해달라는 요구를 어떻게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자유학교의 기원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덴마크의 자유학교는 덴마크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바꾼 풀뿌리운동과 함께 시작되었다. 19세기 중엽 이래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겠다는 민중들의 의지가 종교, 교육, 정치, 경제 등 제반 분야에 걸쳐 활발하게 형성되었고, 스스로 학교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학교들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판단했다. 지역의 공립학교가 좋으면 전폭적으로 신뢰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스스로 학교를 세웠다.”(68) 물론 이러한 운동에는 덴마크 교육의 선구자로 불리는 니콜라이 그룬트비와 크리스튼 콜과 같은 인물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민중들의 자발적 의지를 실현하려는 운동은 그들의 새 헌법에도 반영되었다.덴마크에서는 민주주의 도입 초기부터(최초의 민주주의 헌법이 제정된 1894년을 기점으로) 소수자의 민주주의 정신을 헌법에 우선으로 반영했다. 특히 그룬트비와 그의 친구들은 이 헌법의 도입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 이들은 소수자들이 다수자에 반하여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다수자(국가)로 하여금 소수자의 견해가 실현될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할 것을 요청했다.”(73) 결국 자유학교가 하나의 제도로서 덴마크 교육체계 내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민중들의 자발성과 이를 보장하고 있는 덴마크 헌법이 가지고 있는 소수자들의 민주주의라는 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헌법 정신은 자연스레 민주적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기틀이 된다.덴마크 곳곳은 개개인들의 사적인 영역과 지방정부라는 공적인 영역이 만나 협력하면서 건강한 시민사회로 발전합니다. 민주사회의 살과 피가 되는 에너지는, 사적인 개인의 능동적인 참여를 공적인 영역에서 지원해줄 때 실현되며 민주주의 이념의 토대가 됩니다.”(234) 이 책의 편저자이기도 한 에기디우스 교수의 말에선 어떤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다시 우리 사회로 눈을 돌려 보자. 덴마크의 현실과 비교해보면 더욱 암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덴마크의 자유로운 학교가 소수자를 배려하는 그들의 헌법정신과 공적사적 영역의 조화라는 시민정신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진다. 최근 방영된 학교 폭력을 다룬 <학교의 눈물>이라는 프로그램도 동일한 결론을 말해준다. 학교는 사회의 거울이다. 우리 사회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학교는 결코 아이들에게 좋은 곳이 될 수 없다.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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