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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탄생 - 캄브리아기 폭발의 수수께끼를 풀다 ㅣ 오파비니아 2
앤드루 파커 지음, 오숙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캄브리아기란 지금으로부터 5억 4,300만 년 전부터 4억 9,000만 년 전 사이의 시기를 일컫는 지질학의 용어로, 영국 웨일스의 캄브리아 구릉지에서 이 시기의 화석들이 발견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캄브리아기는 약 46억 년이라는 지구의 역사에서 보면 겨우 5천만 년 가량의 짧은 시간에 불과하지만 생명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중요한 시기로 기록된다. 왜냐하면 이 짧은 시기에 급격한 생명의 진화가 진행되었음을 보여주는 화석증거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단 3개만 존재하던 동물문이 갑자기 38개의 동물문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이 사건은, 고생물학에서 ‘캄브리아기 폭발’이라고 불리며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이 책은 이처럼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꼽히는 ‘캄브리아기 폭발’의 원인을 추리하는 책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데 있어 ‘추리’이라는 말은 매우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화석증거의 특성상 (호박이나 만년설에 보존되어 모든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예외겠지만) 현재까지 남겨진 부분적인 증거들을 토대로 원래의 모습을 재구성해야 하고, 다시 이렇게 재구성된 생물들을 토대로 수억 년 전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중의 재구성 과정에는 당연히 여러 가지 해석과 추론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러 경쟁이론들이 난립하게 되고, 더 나아가 여러 경쟁이론들 중에서 어느 것이 맞는지 확증하기도 매우 어렵다. 실험실에서 실험을 통해 증명해 내기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것들을 제외하고 남은 것, 아무리 말이 안 되는 것 같아도 그 나머지 하나가 틀림없이 진실이다.”라는 셜록 홈즈의 대사를 제사로 인용하며 추리소설의 문법을 차용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불경하게도 추리소설 독자에게는 범죄행위에 가까운 스포일러를 제목에 담아 놓는다. <눈의 탄생>, 범인은 바로 ‘눈’이었어! (물론 이는 번역판의 제목이고 원제는 로 ‘눈 깜짝할 사이에’를 뜻한다. ‘짧은 시기’와 ‘눈’이라는 의미를 이중적으로 담고 있는 적절한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는 자신의 추리과정이 얼마나 그럴듯한지 확인해보라는 자신감의 표출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가 이렇게 자신감을 내비칠 수 있었던 이유는 생물학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 분야들을 넘나들며 수집한 과학적 증거들을 조합해 자신의 결론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더 많은, 더 섬세한 퍼즐 조각들을 가지고 그림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활용된 과학적 증거들은 비단 생물학뿐 아니라 지질학, 물리학, 화학, 역사, 미술 등에서 추려낸 것이다. 종종 눈, 색, 화석, 포식자, 이집트 신상, 심해, 산호초 같은 주제들도 끼어들 것이다. … 나는 캄브리아기 폭발이야말로 독자 여러분의 시간을 빌릴 만큼 중대한 일이며, 따라서 이 사건에 대한 해명을 책으로 출간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17~18)
저자의 장담처럼 이 책은 400여 페이지를 읽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갈 만큼 상당히 재미있게 쓰여져 있다. 각각의 조각들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는 책을 직접 읽어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요약하기는 너무 방대하며, 또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만 언급하자면, 지적설계론자들이 진화론에 반대하며 즐겨 제시하곤 하는 “눈과 같은 복잡한 구조가 진화와 같은 우연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고 상상하기 어렵다”는 주장에 대해 눈이 진화적 과정으로 거쳐 만들어질 수 있음을, 그것도 역사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그런 변이가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다양한 증거들을 조합하여 멋진 결론을 내리는 훌륭한 탐정의 면모를 경험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눈의 진화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빛 스위치’설에 대한 해명이 다소 빈약하다는 점이다. 눈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빛이 중요한 선택압력으로 작용해야 하기 때문에, ‘왜 캄브리아기에 와서야 갑자기 빛이 선택압력이 될 수 있었는지’를 해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몇 가지 가설들을 제시하고는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증거가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다른 부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단한 소개만으로 그치고 있는 점이 아쉽다.
이 책은 쉬운 설명과 친절한 삽화로 우리를 5억 년 전의 시간으로 이끌고 가 당시의 환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게 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새롭게 진화론이 공격받고 있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 생명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더불어 같은 시리즈인 ‘오파비니아’의 책들, 즉 캄브리아기 이전 시기를 다루고 있는 <생명 최초의 30억 년>, 캄브리아기의 대표적 생물을 다루고 있는 <삼엽충>, 캄브리아기 이후의 또 하나의 결정적 사건인 페름기의 대멸종을 다루고 있는 <대멸종> 등과 함께 읽는다면 생명의 역사를 일별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