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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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실패를 비관한 젊은이의 자살 소식이 사회면을 연이어 장식하고 있을 만큼 청년 실업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언론에서는 일자리 창출과 같은 사회적 대책의 필요성을 주문하기도 하지만, 항상 덧붙여 젊은이들 역시 눈높이를 낮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얼마든지 직장을 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청년들이 대기업과 같은 ‘번듯한 직장’에만 매몰되어 있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패배자라는 낙인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정당한가? 작년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임금 노동자 중 비정규직의 비율은 50.2%였다. 일시적 아르바이트 등과 같이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분까지 고려한다면 이 비율은 60% 가까이 이를 것으로 추산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취업을 고려하고 있는 이가 눈높이를 낮추었을 때 보이는 일자리란 대부분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비율이 46.8%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소식을 전하고 있는 뉴스기사의 제목(“남성정규직-여성비정규직 임금격차 월 198만원”, 미디어오늘)이 시사하듯, 이 격차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결국 취업 준비자가 눈높이를 낮추었을 때 가능한 선택지의 대부분은 저임금을 받으면서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번듯한 직장을 가지지 못하면 패배자로 낙인찍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눈높이를 낮추라는 주문의 삶의 질을 낮추라는 주문과 다를 바 없다. 학문적 열정보다는 스펙 쌓기에 목숨을 건 대학생들이 넘쳐나고 취업의 실패가 곧 인생의 실패인 듯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청춘들이 늘어가는 현실은 이러한 사회적 조건의 필연적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자기 계발 담론의 확산

이러한 현실에 대해 국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이 책의 저자들은 ‘용기, 패기, 혈기, 호기, 끈기’, 즉 ‘젊음의 5기’를 들먹이며 ‘꿈꿔라 청춘아, 힘내라 청춘아, 너희의 큰 꿈을 활짝 펼쳐라!’라고 외치는 공익광고를 예로 들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청년들에게 ‘꿈을 펼쳐라’는 광고를 하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꿈을 못 펼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해답으로 ‘젊음의 5기(즉, 개인의 의지)’를 말하는 것은 국가가 실업의 문제를 청년 개인의 문제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28)

이처럼 실업이 개인의 문제로 여겨지게 되면, 즉 자신의 능력과 열정이 부족해서 취업을 못하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당연시 되면 자연스레 자기 계발 담론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저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IMF 외환위기 이후, 무한 경쟁과 노동 유연화를 핵심으로 하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에 유입됨과 동시에 각종 ‘~에 미쳐라’ 류의 책이나 성공의 비밀을 알려준다는 책이 꾸준히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착취는 어떻게 정당화 되는가

물론 자신에게 잠재된 능력을 계발한다는 ‘자기 계발 담론’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되고 있는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 자기 계발의 명령은 전혀 다른 것을 요구하게 된다. 즉 자기 계발이란 자신이 가진 능력을 끌어내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 특히 자신을 고용할 고용주가 원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스스로를 탈바꿈하기 위한 노력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기업가 정신’으로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고용주의 마인드를 내면화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열정 노동’이 탄생한다.

“자본주의는 ‘열정’의 영역에서 새로운 시장과 노동력을 발견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는 말은 이전보다 더한 성실함과 근면함을 요구했다. 열악한 조건도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혹여 불만이라도 토로하는 사람은, 이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것에 대하여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186)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기에 어떠한 불합리도 감수해야 하며 남들보다 더한 성실함과 근면함을 내세우지 못하면 자신의 열정이 부족함을 반성해야 하는 새로운 유형의 노동이 탄생하는 것이다. 결국 저자들이 말하는 ‘열정 노동’이란 노동자의 탈노동자화에 다름 아니다. 자신의 노동력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착취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끊임없이 고용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모습이 바로 저자들이 얘기하는 ‘열정 노동’의 현실인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사람들이 선택 가능한 항목은 단지 두 가지이다. 착취당하거나, 그조차도 당하지 못하고 쫓겨나거나.”(192)

무엇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혹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저자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불확실한 시대에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역사가 증명하듯 사회적 불만의 증폭은 사회 혁명의 기폭제가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파시즘과 같은 폭정을 불러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그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태를 자각해야 한다.”(246)

우리에게 주어진 사태를 직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직시의 산물이다. ‘열정 노동’의 현장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우리가 처한 삶의 조건과 문제들을 끄집어내어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려는 시도인 것이다. 다소 거칠게 묘사되고 있긴 하지만 차근차근 이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에 대한, 그리고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의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성찰의 과정 속에서 우리의 열정이 제 길을 찾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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