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
제럴드 N. 캘러헌 지음, 강병철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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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간혹 환경 관련 서적들에서 지구상 존재하는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간을 꼽는 경우가 있다. 이는 일종의 은유일 수도 있고,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다. 산업혁명 이후 지난 200년간 인간이 지구 가용에너지의 대부분을 소비해버렸다는 몇몇 과학자들의 주장은 인간이 지구라는 공동체에 가장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존재라는 설명을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이야기는 결국 세균 이야기이다.”(13)라는 저자의 주장은 결코 은유가 아니다. 왜냐하면 “평균적인 인간의 몸속에서 오직 10퍼센트의 세포만이 ‘인간 세포’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90퍼센트, 절대 다수의 세포는 세균이다. […] 인간은 기껏해야 10퍼센트만 인간”(23)이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인간의 몸속에는 1.1×10^14개에 달하는 세포가 존재한다. 그러나 또한 인간 세포의 10배에 달하는 세균 세포도 함께 존재한다. 

세균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우리의 몸속에 들어온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속에, 어머니의 질을 통해 세상에 처음 나오는 순간, 엄마의 젖을 마시는 순간, 가족들과 대화하고 함께 음식을 먹는 순간 등등 지극히 평범하고 필수적인 일상생활의 와중에 수많은 세균들이 다양한 경로로 우리 몸속에 침투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세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물론 세균 감염의 결과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진화는 도처에 널려 있는 세균들과 효과적으로 공생하는 법을 인간에게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지구 상에 번성했던 모든 존재는 감염을 피했기 때문이 아니라, 감염을 발판으로 삼아 풍요롭게 사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번성할 수 있었다.”(36) 실제로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무균 생쥐나 무균 토끼는 정상 상태의 개체보다 신진대사 효율이 떨어지고 각종 질병에 매우 취약하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지저분한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일수록 천식과 알레르기가 적게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시 말해, 적당한 세균 감염은 장기가 적절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면역력을 길러주기 때문에 오히려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적당한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화로운 공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흑사병, 천연두, 홍역, 말라리아처럼 현재 우리에게 크게 익숙하지는 않지만 인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끼쳤던 병들 뿐만 아니라, 에이즈, 사스(SARS), 구제역, 조류 독감, 신종 플루 등 최근 우리를 위협하는 전염병까지, 이 모든 것이 바로 세균 감염의 결과로 벌어진 일이다. 유사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우리는 모두 짐승이다>(E. 풀러 토리/로버트 H. 욜켄 지음, 박종윤 옮김, 이음, 2010)가 동물원성 미생물들, 즉 바이러스, 박테리아 등의 발생 및 진화 과정과 이로 인해 야기되는 질병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책은 실제의 혹은 가상의 구체적 사례들을 인용하며 그러한 질병의 치명적인 효과에 보다 주목하여 상세하게 설명한다.

저자가 다루는 여러 사례 중 한 가지만 소개해 보자. 역학자들이 ‘대학살자’라고 부르는 독감의 경우, “제트기도, 통근 열차도, 크루즈도 여객선도, 시속 120킬로미터로 달리는 자동차도 없던 시절”인 1918년에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을 감염시키면서 4천만 명을 살해했다. 독감의 치사율은 일반적으로 3퍼센트 정도지만 2003년 유행했던 홍콩 독감(H5N1 독감)과 같이 일부 치명적인 독감의 경우 치사율이 50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 세계 인구의 절반은 약 30억 명이다. 30억 명의 2.5퍼센트라면 7,500만 명이다. 50퍼센트라면 15억 명이다.”(303)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만약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의 문제이다. 독감의 특성상 또 다른 전 세계적 유행과 질병과 죽음이 일어날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언제 이런 일이 벌어질지를 예측하는 것이다.”(296~297)

2011년 새해가 밝은지 채 얼마 되지 않아, 우리나라 전역은 구제역과 조류 독감에 신종 플루까지 더해져 몸살을 앓고 있다. 새해부터 각종 바이러스가 우리의 생명과 환경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이 잠시 스쳐지나가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스나 홍콩 독감과 같이 엄청난 피해를 남길 수도 있다. 저자의 경고처럼 이는 단지 ‘언제’의 문제일 뿐이다. 철저하게 대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지금’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죽음의 세계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협동하는 살아 있는 것들, 즉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의 활기찬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 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건강과 질병과 세계 정체 및 판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좋든 싫든 미생물은 우리의 존재를 규정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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