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칭 - 자연의 패턴 속으로 떠나는 여행 승산의 대칭 시리즈 4
마커스 드 사토이 지음, 안기연 옮김 / 승산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누구나 한번쯤은 방의 벽지나 욕실의 타일, 거리의 보도 블럭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무늬들에 정신을 빼앗긴 적이 있을 것이다. 혹은 현대 미학을 다루고 있는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에셔의 판화를 보고 기묘한 감정을 느껴봤을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대칭을 탐구하는 수학과 수학자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이들이라면, 대체로 수학책이란 쳐다보기도 싫은 숫자와 기호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공식들이 조그마한 글씨들로 빼곡하게 들어찬 책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물론 이 책에서도 숫자와 기호, 공식들이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수학적 훈련을 받은 이들이 아니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고차원(무려 196,883차원)에서 만들어지는 대칭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수학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다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교양 과학서로 손색이 없는 이유는 이처럼 어려운 내용을 설명해 내는 저자의 능력에 있다. 저자는 일상의 사례에서 시작해 점차 전문적인 내용으로 독자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다. 지루해질듯 싶으면 익살스런 경험담이나 농담을 끼워 넣어 킥킥거리게 만드는가 하면, 천재 수학자들의 생애와 에피소드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흥미를 돋우기도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상을 각 장의 앞머리와 말미에 배치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저자의 탐구여정에 함께 동참하고 있는 동행인처럼 느끼게 만든다. 마치 수학자 친구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그래서? 그래서 그 다음은?’을 연발하고 있는 모습이랄까. 장담컨대 450여 페이지의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재미있는 교양 과학서를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왜 우리나라에선 이렇게 재밌는 교양 과학서를 찾기 어려운 것일까, 하는 점이다. 물론 내가 과문한 탓에 훌륭한 책들을 알지 못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아시아 태평양 이론물리센터가 선정한 “2010년 올해의 과학도서” 목록을 봐도 열 권 중 단 한 권만이 국내 저작물이라는 점은 내 생각이 그다지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는 좋은 교양 과학서들이 없을까? 이는 아마 어렸을 때부터 엄격하게 문과와 이과가 분리되는 교육환경 탓일 가능성이 크다. 어린 오귀스탱루이 코시의 수학적 재능을 알아본 라그랑주가 코시의 아버지에게 했다는 조언을 들어보자. “저 아이가 문학 공부를 마치기 전까지는 수학책을 건드리거나 숫자 하나라도 쓰게 해서는 안 되네.”(214)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갈 때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의 평생을 좌우할) 자신의 계열이 결정된다. 그 결정은 또 어떠한가. 대체로 수학을 잘하면 이과, 수학을 못하면 문과라는 식이다. 수학 때문에 수능성적의 격차가 많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계열이 결정되고 나면, 문과생들은 과학 과목과, 이과생들은 사회 과목과 담을 쌓게 된다. 그 담은 대학에 올라가면 무너지기는커녕 더욱 견고해진다. 상황이 이러하니 문학이나 영화와 같이 사람들에게 익숙한 내용을 활용하여 자신의 연구 내용을 설명하는 과학 서적이나, 반대로 최신의 과학적 연구 성과들에 기초한 인문학 서적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온갖 곳에서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통섭’이란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겉보기 결합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통섭, 즉 인문학적 사유와 자연과학적 사유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기 위해선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이러한 성찰이 선행되지 않는 한, 마커스 드 사토이 같은 저자의 탄생을 기대하는 일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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