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 김이설 소설집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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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혜경이를 업은 혜경 엄마가 어두운 골목에서 나에게 했던 말은 ‘할 만하겠니?’였다. 내 손에는 그때 만 원이 쥐여 있었다. 까슬한 지폐의 감촉이 생생하다. 손에 땀이 찼다. 그런데 나는 그 질문을 자꾸 살 만하겠니,로 떠올리곤 했다.”(오늘처럼 고요히) 

작가에 의하면 원래 제목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소설집의 경우 대표적인 단편의 제목을 책 제목으로 뽑곤 하는데, 책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 중 그런 제목을 가진 소설은 없다. 그러므로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란 여기에 실린 소설들을 통해서, 그리고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작가가 드러내 보이고 싶은 것을 의미할 것이다.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냐는 물음에 스스로 찾은 답이었다.”(작가의 말)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라.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먼저 ‘누구나 아는 것들’은 무엇일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각자 서로 다른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 ‘누구나 아는 것’이란 무엇일까? 과연 그런 게 있기나 한 걸까? ‘있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바로 이런 것이다. 만일 엄마와 함께 지하철 노숙하는 여자아이에게 누군가 호의를 베풀어 깨끗한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자신의 방에 재워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세상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앞으로 나에게 벌어질 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열세 살) 혹은 이제 막 가슴에 멍울이 지기 시작한 여자아이가 고속도로 휴게소에다 자신을 버린 엄마를 찾아가기 위해 고속도로 갓길을 걷고 있을 때, 누군가 차를 세워 태워주고 허기를 달래라고 만두를 건넨다면? “나는 다 먹기도 전에 내가 먹은 만두 값을 지불해야 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 선의도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순애보)

그렇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러니까 결국 살아간다는 건 항상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다. 그걸 알기에 귀찮고 하기 싫고 당장 때려 치고 싶더라도, 매일 아침 꾸역꾸역 학교로 일터로 지친 몸을 이끌고 기어나가는 것이다. “아니, 힘들었어. 하지만 힘들 수 없는 일 년이었다. 성과물을 받기 위해 소비된 시간이었으니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러니 공평하다.”(엄마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하루하루를, 일 년을, 그리하여 마침내 평생을.

그렇다면 우리는 이 자명한 사실을, 이 삶의 비참함과 고통을 누구나 알면서도,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 그러나 거꾸로 삶이 원래 그런 것이라면 굳이 말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오히려 “일상의 너저분함을 고스란히 보이는 걸로 자기 위안을 삼는” 것이 비루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래서 “섬처럼 외롭더라도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하는 길이었다. 그들에게 동정을 받거나 충고를 들을 바에야, 오해를 받으며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게 차라리 나았다.”(하루)라고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혹은 누구나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기에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억울한 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손)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데 굳이 말할 이유는 무어란 말인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간의 고통이란 오로지 그 자신만의 것이다. 우리는 흔히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말하고들 하지만,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과 공감하는 이의 고통이 같은 것일 수 없다.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기에 인간의 언어는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선험자들이 초산모에게 산고의 절대적 고통에 함묵하듯이, “그것은 경험으로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엄마들) 설령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줄 적절한 언어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타인에게도 적절한 것인지 확신하기도 어렵다. 그렇게 우리는 삶의 비참과 고통 앞에서 침묵하게 되는 것이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라고 자조하면서.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그저 ‘살 만하겠니?’라고 묻는다.

당신은 살 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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