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a보다 어린 아이가 있는 집에 놀러갔다. 이제 막 뒤집기를 시작하고 앉을 줄 아는 어린 동생 b는 a를 보고 방긋방긋 웃었다. a를 데리고 다니면 자식을 다 키운 분들이 아기를 어떻게 키운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나 역시 a가 저만할 때가 불과 1년 전인데 가물가물했다. 하지만 아기 사이에서 1년은 엄청 큰 차이인지 b는 이내 a가 내는 소리와 움직임에 심기가 불편해졌나보다. 우는 일이 별로 없다는데 계속 칭얼댔다. a는 a대로 놀만한거리가 없으니까 심심해했다.
나와의 관계, a 또래와의 관계에서 a는 똑똑하거나 야무지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웬일인지 b랑 있으니 a의 문제 행동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괜히 누워있는 b의 머리카락을 밟는다거나 손으로 눈을 찌르고 아, 예쁘다 하는 척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간만에 다른 아리 엄마 집에 놀러왔는데 좌불안석이었다. b의 엄마가 b가 왜 우는지 살피기보다는 조금만 우는 시늉을 보여도 바로 안는 통에 a는 아무 짓을 안 해도 좀 뻘쭘해지기 시작했다.
a가 또래랑 있을 때는 안 그랬는데 동생이라 그런건가.
b의 엄마가 a에게 뭐라고 하진 않았지만 a 딴에는 자신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다고 느꼈나보다. 자신의 존재를 밀쳐내는 동생과 어른,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엄마 사이에서 a가 선택할 수 있는 몇가지 방법 중 하나가 동생을 자극하는거였을까. 그런 것까지 생각한건 아니고 a의 자연스러운 소리와 움직임이 b에게 낯선 것 뿐이었을까.
얼마 전부터 아기는 어린이집을 다닌다. 적응 기간 동안 아기랑 어린이집에 앉아 있는데 가끔 지나가는 말처럼 선생님이 그런다.
- 누구가 어머니한테 자꾸 안기는건 일찍 엄마랑 떨어져서 그래요.
- 어머니도 알겠지만 누구가 발달이 좀 늦어요.
아기를 이 선생님한테 맡겨도 되는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선생님 말로는 a가 애착 형성이 잘 돼서 어린이집 적응을 잘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기준에서 벗어난다면 어떻게 되는걸까. 선생님이 귀뜸한 아기들은 사랑스럽고 순진하다. 일부러 자세히 봐서 선생님이 얘기한 지점을 확인하려 들면 못할 것도 없지만 다른 아이들도 정도만 다를 뿐 다 갖고 있는 특징이다. 별 일 아닌데 소란스러워지면 선생님은 특정한 아기한테 이유를 묻고 아기의 감정과 별개로 타이르거나 훈육을 했다. 며칠 봤는데 그랬다.
그래도 아기는 적응을 잘한다니 괜찮지 않을까란 맘 이면에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자리잡았다. 정상에서 탈락하면 어쩌나란 염려. 나 역시 정상 혹은 일반에서 멀었는데 되물림 되는건 아닐까란 걱정.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a가 아무리 잘해도 한번 눈 밖에 난다면 어떡하지. 이 선생님은 아기들의 다른 여건을 포용하기 보다는 규제할 것 같은데.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기를 계속 어린이집에 보냈다. 시간이 지나 선생님과 얘기하며 내가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는걸 알게 됐다. 선생님이 조금 다른 아이들한테 유난스럽게 구는 건 아니었다. 인권 어쩌고, 내가 과민했다. 아니아니, 말 몇마디로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하기에 어린이집 선생님의 업무량과 기대치, 근무조건이 너무 열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a는 나랑 떨어져 어린이집 차를 탈 때마다 눈물바다가 된다. 씩씩하고 개구지고 엉뚱한 아이가 어느 순간 감정이 복받쳐 앙하고 울어버린다. 고집을 부리는, 엉성하게 우는 흉내 내는 것도 아닌 울음. 아기에게 슬픔이 생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