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그동안 아기는 울고 웃는 표정 밖에 짓지 않았다. 단순하고 투명한 욕구가 바로 얼굴에 나타났다. 그런데 지금은 다양하고 풍부해졌다. ‘어린이집 가서 친구들이랑 놀거야’는 물음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다가 ‘그런데 엄마는 같이 못 가. 안 가.’이러면 입을 삐쭉 내밀고 슬픈 표정을 짓는다. 우는 게 아니라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얘기한다. 이것도 몇 번 하다 보니까 처음 질문에는 고개를 끄덕이다 두 번째에는 살짝 고민하더니 씽긋 웃어버린다. 엄마가 장난치는걸 알아버린거다.

 

아기의 감정이 다양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용은 선명하다. 감정을 숨길줄 모른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면 바닥에 뒹굴고 기분이 좋으면 원숭이처럼 킥킥거린다. 웃음소리가 커졌고 감정의 폭이 넓어졌다.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들여다볼줄 아는 아기로 자랐으면 좋겠다.

 

한계

 

  아기가 말을 알아듣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면서 한계 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전부터 안전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영역에서는 경계를 정하고 그 외에는 자율적으로 지내도록 했는데 최근 식사와 잠자리 습관을 들이면서 어느 선의 한계가 적당한지 고민을 했다. 특히 감기 기운으로 입맛이 떨어졌을 때는 정말 헷갈렸다. 밥은 먹는 둥 마는 둥이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장난을 친다. 밥을 뱉고 수저로 식탁을 친다. 일어나는 건 안전에 관한거니까 제재했지만 밥을 뱉는 건? 밥을 잘 안 먹는 건? 밥을 먹는 시간을 정해주고 그때까지 다 먹지 않으면 그릇을 치우는 방법으로 써보았다. 처음에는 계속 배고프다고 칭얼대거나 여전히 장난을 쳤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앉은 자리에서 밥을 잘 먹는다.

 

 그 다음에 잠자리. 앞에 썼지만 그동안 잘 때 아기 스스로 자지 못하는걸 감안해서 자는데 도움이 되는 건 다 수용한 편이었다. 앉았다 일어났다, 엉덩이를 두드렸다 어부바를 했다, 책을 읽다 노래를 불렀다, 물을 가져오는 것 등등. 그런데 내가 아기라면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 같았다. 어떤 욕구든 한계 없이 다 들어주는게 과연 좋은걸까. 오히려 한계 없는 욕구가 아기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한밤중에 악을 쓰면서 우는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잘 때는 자기 잠자리에서 잔다’ 외에는 다 허용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양한 요구를 하다가 며칠 지나니 편하게 잠이 든다.

 

 a는 이러한 육아방식이 아기의 기를 죽일 수 있다고 한다. ‘안 돼’란 말을 남용하면 자신이 하고 싶은걸 생각하기 전에 엄마 눈치를 볼거라고 한다. 아기가 눈치를 볼 정도로 ‘안 돼’의 영향력이 센 걸까. 자신의 행동이 어느 선까지 수용되는지 확인하고 그 경계를 인정하는게 좀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 정말이지 육아는 답이 없다. 나 역시 아기와의 관계로 서로의 한계와 접점을 찾아가며 맞춰가는 수 밖에 없다.

 

넛지

 

 넛지는 ‘주위를 환기시킨다’는 영어로 강압하지 않고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뜻한다. 밥을 먹고 이를 닦는다거나 제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활동을 아기 스스로 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아기가 어렸을 때는 내가 직접하면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수월하게 했다. 하지만 걷기 시작하고 자유의지가 생긴데다 장난치고 싶은 꾸러기가 숨겨져 있는 20개월에는 모든 것을 설득해야한다.

 

 기저귀를 갈자고 하면 도망을 간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관심 없던 자동차를 탄다고 한다. 밥을 먹으랬더니 뱉고 자랬더니 물을 먹는다, 나갔다온다, 어부바를 하겠다 난리난리다.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가 차라리 낫다. 바르지 않은 행동은 감정을 읽어준 다음 제지를 하면 된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을 안 할 때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쫓아다니면서 밥을 먹이고 이를 닦이고 옷을 입히고 싶지 않다. 그래서 고안한 게 바로 넛지.

 

 기저귀를 갈아야하는데 벌써 눈치 채고 저만치 도망가는 아기. 쫓아가서 데려올 수 있지만아기가 스스로 오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넛지를 시도해보았다. 동물들과 대화를 한다거나 비닐 소리를 내면서 먹는 시늉을 하는거였다. 처음 몇 번 아기는 호기심에 내 옆으로 와서 슬쩍 본다. 하지만 비슷한 수법이 반복되자 아기는 동물이랑 얘기하며 먹는 소리를 내는 내게 토끼 인형을 던져주고 갔다. 시늉을 할거면 인형이라도 데리고 하라는건가. 넛지 실패. 넛지는 처음 몇 번 반짝이는 아이디어 수준이었던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