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기욤 뮈소와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을 읽으며 12시를 훌쩍 넘긴 적이 있다. 인문/사회 계열 책을 읽을 때는 장시간 집중하지 못했는데 소설은 신기할 정도로 몰입이 된다. 아, 요나스 요나손의 책도 그랬다. 그래서 이 작가의 책을 다 읽으리란 생각에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전작주의의 탐욕스런 욕심을 품었드랬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 다음 책은 뭐랄까, 흥미가 사라졌달까. 도저히 읽고 싶지 않다. '구해줘'를 읽고 기욤 뮈소 책은 기필코 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요나스 요나손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한국소설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페이퍼까지 적었지만 그 다음책인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는 도서관에 갈 때마다 집었다 내렸다하길 반복할 뿐 선뜻 빌리지를 못한다.


 가벼운 책을 읽으면 안 된다는 무의식 때문인지 이런 책은 딱 한번이면 좋을 흥미라는 단정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예능은 소모적이고 음악은 금세 익숙해지고 드라마는 중독성이 강해 또 책을 집어들었다. 잡문을 좋아하지만 요새는 통 읽을만한 잡문을 찾지 못해 이번에도 소설책이다.


 재미있다는 평이 자자했던 '허즈번드 시크릿'이 바로 그 책. 세실리아, 테스, 레이첼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며 자니의 죽음과 존 폴의 비밀이 연관되어있다는 추측 정도를 하게 된 지금, 그만 딱 이 책에서 손을 놓고 말았다. 200페이지를 읽은 게 아까워서 다 읽을까 한번 고민했지만 결론적으로 재미가 없다. 세 여성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바와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는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점이 살짝 흥미롭긴 했지만 그 외에는 이 미스터리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소설의 맛을 모르는건지, 집에 책을 읽기에 적절한 공간이 없는건지. 무척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은데 이번 책도 아니었다. 


 허지웅처럼 자신이 보거나 읽었을 때 너무 좋아서 추천하고 싶은 영화나 책, 혹시 없을까?




 











 그래서 허지웅이 추천한 건 아니지만 그의 생각들이 쓱쓱 나오는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의 취향이 나랑 맞지는 않지만 그의 글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자신이 갖고 있는 합리나 정의의 잣대로 남을 판단하지 말자, 언론의 그릇된 관행에 휘둘리지 말자. 각자가 간직할만한 좋은 구절을 하나씩 품고 이 세상을 버티자는 그의 얘기가 맘에 와닿는다. 비슷한 글들이 종종 겹치고 했던 말을 또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의, 주장이 아닌 취향과 개성으로 수렴되는 이야기는 분명 매력적이다. 치열을 가장하지 않고 짐짓 뒷짐지며 꼰대 행세 하지 않는 글, 자신의 독특함을 과장하려고 기를 쓰는 글이 아니라 더 좋다.


 고시원 이야기는 내것과 비교해 정제되어 있고 영화에 대해 적은 글들도 재미있다. 글 쓰는 허지웅을 떠올릴 때 떠오르는 건 냉소지만 냉소에 그치지 않은 태도가 글에 담겨 있을 때, 냉소를 뛰어넘으려고 애쓰지 않지만 그 자체로 인정하고 다른 고민에 이르렀을 때 그의 글이 더 와닿는다. 진보가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좀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해야한다는 점도 '싸가지 없는 진보'와 맥락이 비슷해 공감되고.


 그리고 어제는

 












 무려 이런 제목의 책을 읽었다. 한때 문고판을 미친 듯이 살 때가 있었는데 그때 사서는 막 밑줄을 긋고 공감을 했었나보다. 한 페이지는 정상인데 다른 페이지는 인쇄가 살짝 흐릿하게 나온데다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사위도 모를 오타가 버젓이 껴있다. 내가 갖고 있는 판본만 그런건지, 베이지색 표지는 단정하고 예쁜데 들고 다니면서 보기에는 책 제목이 책에 나온 것처럼 나를 '기만'하는 느낌이다.


 지금보다 조금 팔팔했을 때는 톨스토이 인생론이나 몽테뉴의 수상록처럼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알려주는 책을 좋아했다. 이 나이쯤 되면 사는건 그냥 사는대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삶의 다른 지평이 펼쳐질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초조함과 불안은 여전하고 걸핏하면 눈물이 찔끔씩 나기까지. 도저히 호르몬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암담한 지평인걸.


 20대의 내가 그 당시 만나던 사람과 안면도로 놀러가 그 사람의 지인을 만난적이 있다. 언젠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 지인분은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런데 무슨 말 끝엔가 그분이 그러는거다. 자기 나이 정도 되면 한자는 쓱쓱 읽게 될 줄 알았다고. 한자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았고 나이로 퉁치는 언어능력이 뿅하고 샘솟을리 없는데 그렇게 믿었다는 것. 그때 그 사람은 아련한데 그 말은 가끔 생각난다. 나이로 퉁치면서 대충 뭉개는 나잇대라는건 어디에도 없다는걸.


 재미있는 책을 찾고 뭔가에 몰두하고 싶은 건 불안의 반증일지 모르겠다. 그럭저럭 살아가면서 문득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될지, 커다란 목표나 방향 없이 하루하루에만 적정한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도 될런지 싶은 날. 그런 날에도 저녁 무렵 연한 진분홍으로 물든 하늘을 보면서 잘한 것도 없는데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 멸치랑 생표고를 넣은 오뎅국이 말도 못하게 맛있어서 흐뭇해진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5-09-22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핑거 스미스]는 읽어봤나요, 아치? 그 책이라면 재미있는데 말이지요!

Arch 2015-09-23 12:42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알겠어요. 드라마로 나온거 말하는거죠? 읽어봐야겠어요.

Forgettable. 2015-09-23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는 엄청나게 부드러운 사람이 되었네요. 못 본 사이에.

Arch 2015-09-23 12:42   좋아요 0 | URL
에? 설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