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상 앞에서 조카 녀석이 칭얼댄다. 식단조절을 해야해서 자신은 먹을 수 없는 음식을 어른들만 먹는다는 생각이 드니 짜증이 난 것이다. 아이의 엄마는 이왕 차린 밥상이니 가족이 다 같이 먹고 싶었다. 아이의 할아버지는 밥상 앞에선 칭얼거리는 소리를 듣기 싫어한다. 아이의 할머니는 나중에 먹여도 되는데 잘 놀고 있는 아이를 부른 아이의 엄마를 뭐라하고 아이의 이모는 눈을 부라리는 할아버지와 아이를 번갈아 쳐다본다. 일촉즉발의 상황, 결국 할아버지는 화를 터트리고 말았다. 누군가 미리 앞서서 작은 화로 희석시켰다면 좋았을 화였다. 지르고 나니 화를 낸 사람도 옆에 있던 사람도 직접적으로 화를 당한 사람도 태연해질 수 없는 화였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후 아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모두들 잠자코 찰기 도는 밥을 씹어넘겼다. 아이의 누나가 건네는 장난에 호응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화를 낸 사람은 조그맣게 남은 잔챙이 화를 끄집어 아이에 대해 일갈한다. 사람들은 밥을 먹으며 시선을 교환한다. 아이의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가 분위기를 살피고 곧이어 이모가 밥을 먹으라며 아이와 엄마를 데리고 나온다. 모두들 말이 없다. 화를 낸 사람은 안간힘을 다해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노력하고 아이의 엄마는 질린 얼굴로 수저를 든다. 아이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밥을 먹는다.
얼마 전 읽은 텐아시아의 '내 딸 서영이' 기사에 이런 내용이 나왔다.
기존의 가부장이 식구를 경제적으로 보호하거나 도덕적 권위로서 가정내 갈등 조정하는 (역할이었다면 요즘은 그런 가부장의 권위가 많이 사라졌다.) 갈등의 은폐와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가 아니라 상처 입고 상처 입히는 우리 스스로의 불완전성을 긍정하는 것으로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가부장제의 시간이 가고, 신뢰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규약의 시간이 오고 있다.
신뢰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규약의 시간이 오려면 멀었다. 적어도 우리집에선.
* 내가 아는 위아래 관계가 있다. 직급으로 얽힌 관계인데 어느 날 위가 혼자 사는 아래에게 묻는다.
- 집에 가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나요?
대체 이런 질문을 왜 하는 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모두들 잔인하지만 아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때 아래의 눈이 살짝 떨렸다.
- TV랑 대화해요. 대화 안 하고 있을 때도 있고.
아래는 웃으면서 이야기 했다. 바로 옆에서 아래의 떨린 눈을 본 후로 갑자기 모든 게 너무 쉬워졌다. 개인적으로 아래가 맘에 들진 않지만 모두들 안간힘을 내며 버티고 있다는 것을, 그런게 사회라는걸 새삼 깨달았다. 내가 사무실에서 미움을 받은건 어쩌면 제 본성대로 굴어서, 그들의 안간힘을 우습게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군필자 가산점 : 징병제니 국가 기관뿐 아니라 사기업에서도 남자에게 가산점을 줘야한다.
호주제 폐지 : 특별한 케이스만 호주제 적용 예외를 하고 대부분의 (정상적인) 가정은 호주제로 한다. 호주제 때문에 기형아가 나올 수 있다.
여성부 : 이건 왜 있는거임?
밥 먹으면서 '위'가 이런 주장을 했다. 조목조목 반박하고 싶었다. 당신이 위에 있는건 여성부가 양성평등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서다. 호주제는 이혼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호주란 이름으로 불합리한 (어떤?)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가산점 문제는 남자들한테도 공평하지 않다, 사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직할 사람이 아니라면 군필한 보상을 어디서 받으란 말인가. 군대에 갈 수 없는 사람의 역차별은 어떻게 하나, 군대 다녀온 게 그렇게 손해라면 모병제로 바꾸지 왜 자꾸 지엽적인 가산점을 물고 늘어지나 등등.
몇년 전과 다를바가 없다. 의문은 한바가지인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에선 늘 막힌다. 여성주의가 내 삶을 변화시키고, 생각의 결을 다르게 한다고, 여성주의 공부하겠다고 한지가 몇년째인데 여전히 제자리 걸음. 얌체같은 여자 때문에 여자들 전체가 욕먹는 문제, 정말 호주제가 폐지되면 마구잡이로 결혼을 하고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걸까. 성희롱에서 여자랑 남자가 가해 피해를 넘나들 때 누구 편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관점은 뭘까. 여성 혐오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