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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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서재에서 김중혁 붐이 일었다. 그때 나는 김중혁이 누군지 모르고 관심도 없었지만 '사람들이 저렇게 좋아하는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거야'라는 생각에 그의 책을 읽지도 않고 그의 유머에 담뿍 빠져들었다는 식의 글을 쓴적이 있다. (아치, 대체 왜) 기대보다 껄렁해서 재미 없었던 '대책 없이 해피엔딩'과 그의 단편집에서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가의 면면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노력한다고 좋은점이 찾아지진 않았다.


 사람들이 김중혁을 웃기다고할 때, 나도 웃기는 부분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럴 때마다 나 홀로 소주 한병씩 들이키며 달을 본건 아니고 우연히 이 책을 봤다. 단박에 그의 글이 좋아진건 아니지만 김중혁이란 사람이 궁금해졌다. 취미로 카메라를 사면서 이런 글을 쓰는 40대의 한국인 남자 말이다.


씀씀이의 규모를 생각하면 마땅히 싸구려 렌즈를 사야 했지만, 그리고 사진 실력을 생각하면 싸구려 렌즈조차 과분한 것이었지만, 나는 기어코 고급 기종의 카메라 렌즈를 사고야 말았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명필이 붓을 가리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평생 동안 좋은 붓을 질릴 정도로 써봤기 때문일 것이라 확신하며, 셀 수 없이 많은 붓을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평필이 된 것이라 추측하며, 돈을 지불했다.


 다단계의 합리화와 그 합리화를 뻔뻔하게 수긍하지 못하는 미세한 균형감. 나와 다른 사람의 글이 좋아 열광 할망정 공감할 수 없는건 동 떨어진 어떤 세계는 내가 죽었도 깨나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남다은이 <감독, 독립영화를 말하다>에서 김곡(영화를 시나리오가 아닌 이미지로 인식하는 방식)과 인터뷰를 해도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계급 지향이나 사회적 지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의 글들을 읽을때면 다름에서 오는 긴장감이 좋지만 이해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김중혁은 살짝 다르다. 누구처럼 모르는 노래 얘기를 하지 않고 다른 누구처럼 미묘한 감성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책을 좀 더 읽어보기로 했다.


 김중혁은 빈 수레의 삶을 지향한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 늘 그런 무소유의 정신으로 산다기보다는 항상 요란하니까. 요란하고 분주하고 시끄럽고. 그 덕분에 김중혁의 글은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잔치가 됐다. 말하자면, 소문난 잔치. 거기 먹을 게 있으려나? 아니, 이 책에 건질 게 있으려나. 그건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추천사니 이렇게 쓸 수밖에. 건지겠지, 뭐라도 건지겠지. 마음이 착잡하다.


 애석하게도 김연수의 추천사는 이 책의 백미다. 이 책의 온도는 딱 이 정도 같다. 이 정도의 유머와 이만큼의 빈틈. 김중혁의 발명과 그라는 사람의 이야기. 조목조목 따지고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현실인식이 없는건 그나마 다행이다. 대한민국 40대 남자의 현실인식이라면 꽤나 낭만적일텐데 다른 나라의 아우라 강한 소설가들에 비하면 평이하다. 공감은 가되 작가의 태도에 푹 빠질 정도는 아니다.


사람들을 하나의 단위로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나자 주위가 달라 보였다. 저 사람은 어떤 단위로 쓸 수 있을까. 잘 걷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이름(홍길동이라고 치자)을 단위로 쓰고,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야, 나 오늘 밖에 나갔다가 38길동이나 걸었잖아. 죽는 줄 알았지 뭐야.


 물론 이런 깜찍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정말 '종종' 보인다. 뭐라도 되겠지라며 태평한 생각을 하다간 이곳저곳을 떠돌다 객사할 것 같은 세상에서 이렇게 한가한 이야기를 해도 되나 싶다. 그런데 바꿔 생각하면 모두가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덤벼도 누군가는 낙오되는 시스템이라면 한가하게 잡담나누는 것도 방법 같다. 김선우의 책을 읽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 어떨까란 생각을 해봤다. 하고 싶은게 없으면 잠을 자거나 게으름을 피우는거다. 실패자들의 벤치마킹이 이뤄지고 너도나도 실패해보겠다고 경쟁을 한다면? 먹고 사는 문제를 공동체가 해결해준다면? 그리고 그리고......


 뭐라도 되겠지, 빈수레 김중혁의 글에선 건질만한게 없다. 안타깝게도 그와 나는 취향이 다르다. 다만 그의 책을 읽고나니 한가한 생각들, 왠지 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요란한 빈수레다. 





사족: 책이 좋다는 글은 거리낌없이 쓸 수 있는데 좋지도 싫지도 않은 글은, 좋아하는 사람이 다수인 작품에 대해선 뭐라고 말해야할지 애매하다. 책 읽는게 다인 독자랍시고 평점을 매기는게 미안하고 같잖지만 별세개를 줬다. 최근 G씨의 에세이를 읽다  뒷목 잡고 쓰러질 정도의 언해피함을 느낀터라 상대적으로 이 에세이가 괜찮아 보였다. 출판사에서는 별로인 에세이를 이름값으로 출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름값 못하는 에세이' 같은 페이퍼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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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3-27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목 잡고 쓰러지게 만든 G씨...는 누굽니까? 나한테만 살짝 알려줘봐요.

Arch 2012-03-27 14:35   좋아요 0 | URL
아휴, 다락방. 비판은 아주 섬세하고 조목조목 수긍가게 해야하는데 제가 그럴만한 소질이 없어서 실명 쓰는걸 망설였어요. G면 김씨는 아니겠죠? 이럼 다락방이 다 알겠구만.

다락방 2012-03-27 15:09   좋아요 0 | URL
모르겠어, 모르겠어, 모르겠어요!!


2012-03-27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7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7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7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2-03-27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G씨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가 아니라 알 것 같아요 ㅋ
저는 아치님과는 달리 <뭐라도 되겠지> 정말 좋게 봤답니다. 그러니가 초반부에는요. 처음부터 읽기 시작하면서, 와 이 사람 정말 대책없이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생각했어요. 복잡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답니다. 억지로 뭔가 하려고 하기보다는 지금 이 시간들을 즐기는 그만의 방식이 좋아요. 물론 딱히 건질 것이라고는 없는 책이라고 저도 생각하지만...^^;;
그래도 지치고 심심할 때 지하철에서 읽기에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Arch 2012-03-27 15:58   좋아요 0 | URL
진짜요? G씨가 뭐라하면 어쩌죠!

저도 편했어요. 너무 편해서 강박처럼 책을 끝까지 읽던 것도 잊고 2/3쯤 읽다 그만뒀지만. 책을 읽고 뭔가를 남겨야한다는 강박 때문에 이 책을 안 좋아하는거라면 그건 좀 아니다란 생각이 들면서도 그 정도 강박도 충족시켜줄 수 없는 책쯤이야란 콧방귀도 뀌고 싶지만 난 그렇게 대찬 독자가 아니니 살짝 물음표만 동동.
술술 잘 읽히고 가끔씩 귀여운 부분은 있었어요. 그럼요!

비로그인 2012-03-27 22:09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2/3쯤 읽다가 덮었어요. 누구라도 그래도 되는 책인 거 같아요 이 책은...
작가님이 좀 실망하시려나... 아마 알고 쓰셨을 거에요 ㅋㅋ

Arch 2012-03-28 09:59   좋아요 0 | URL
그래도 혹시 이 글과 댓글을 본다면 속상할 것 같아요. 아마 안 보겠죠?

2012-03-27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8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