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옥찌들과 잘 지낸다고 자신할 수 없다. 이 문제는 a와 b, 관심을 보이는 몇몇의 사치스런 관점과 원만한 눈길에 따라 종종 다른 결론을 보여준다. 김규항은 단순하게 보수적인 부모는 당당하게 학원을 보내고 진보적인 부모는 불편한 낯으로 학원을 보낸다며 이 둘을 가른다. 그의 글이 가리키고 있는 지점은 너무 확고하다. 그런데 생활과 사람 맘이 무 자르듯이 명쾌하게(무, 생각보다 잘 안 잘린다) 잘릴 수 있을까.


 얼마 전부터 지희는 '이 색이 무엇이냐'란 질문을 영어로 어떻게 하는지 묻는다.(What color is it? 인데 What color it is?라고 알려준 아치) 영어 시간에 원어민 선생님이 와서 영어로 말을 하는데 자기는 하나도 모르겠다고, 아이들은 어느 정도 하는 것 같다며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거였다. a와 b는 당장 학원에 보내자고 했다. 아이가 친구들에게 기가 죽고 상처받으면 안 되니까. 영어 수업하기 전에 지희에게 3학년이면 영어를 배울텐데 방과후 교실이나 다른 기관에서 하는 영어 공부를 할거냐고 물어본적이 있지만 지희는 영어를 공부하기 싫다고 했다. 지희는 영어 공부가 싫지만 영어 수업시간에 창피하니까 영어 공부를 하려는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럴땐 어떻게 해야할까.


 모든 아이들이 선행학습을 받고 부모들은 내 아이가 옆집 아이만큼(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지만)은 하길 바란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정말 아이에게 뭘 해줘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를 때가 더 많다. 학벌사회니까 아이들을 경쟁시켜야 한다는 사람도 많겠지만 한편으로는 내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다만 경쟁을 선택했다면 최신 메뉴얼로 갱신된걸 눈 딱 같고 따르면 되지만 다른 선택을 했을 경우 이러 저러한 상황마다 뭐가 최선인지 헷갈린다.

 

 














 내가 선택한, 혹은 선택할 수 없어 주어진 인생이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 것도 고민이다. 귀농을 한 농부시인 서정홍의 산문집을 보다가 정말, 이럴 때는 어떡하나 싶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가난 때문에 아이가 친구들과 영화 한편 보지 못하고 얼버무리며 집으로 돌아설 때, 그 부모 맘은 어땠을까. 내가 농담처럼 시골 들어가서 산다고 할 때마다 현실감각 있는 친구는 누가 갑자기 아프면 어떡할건지, 아이를 낳는다면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다. 궁리해낸 답은 있다. 불안은 보험으로 통제되지 않는다, 아이를 안 낳을거란 말은 못하겠지만 아이의 행복에 관한 것도 기준의 문제라고. 어쨌든 궁리를 해야한다.

 

 며칠 전부터 미술 수업을 받는 지민. 누나도 옆에 있겠다, 가끔 이모도 보이니까 맘이 놓였는지 이름으로 캘러크래피 만드는걸  끝내놓고 교실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지민이가 돌아다니니 다른 아이들도 돌아다닌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 될까. 선생님은 칭찬 스티커를 안 주는 벌을 준다.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했더니 원래 첫시간엔 안 그러는데 (지민이가 유별나다란 말을 빼고)... 지민인 왜 그럴까, 왜 그럴까. 그러다 이 책을 봤다.


 어렸을 때부터 산만했다는 김중혁씨. 그는 산만함 때문에 꾸중을 들어서 산만해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단다. 그러다 그 역시 고미 타로의 책을 보고 띵한 충격을 받았단다.

 

고미 타로<어른들(은, 이, 의) 문제야>

‘저는 마음이란 산란해지기 위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란해지지 않는 마음은 이미 마음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마음 심이라는 글자를 좋아하는데, 특히 그 글자의 생긴 모양이 시선을 모읍니다. 권이나 군 같은 글자는 획들이 모두 확실하게 붙어 있지만 심은 각각 떨어져 있습니다. 즉 처음부터 산만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말라는 것은 마

음을 갖지 말라는 뜻이며, 깜짝 놀라고, 두근거리고, 용기 없이 우물쭈물하는 등의 인간적인 감정을 갖지 말라는 뜻입니다.’



 지민이의 산란한 마음. 나랑 선생님이, 주위에 있는 어른들이 재미있게 본다면 좋지 않을까, 란 민폐 돋는 생각은 잠시. 지민에게 또 돌아다니면 미술 못한다고 겁을 주었다. 


 지희에겐 가끔 영어 동화책을 읽어준다. 처음에 영어가 너무 배우고 싶다고 한 것에 비해 열의는 사그라들었다.(옥찌는 나의 분신) 자기는 영어 선생님 제임스 티쳐랑 노는게 좋다고, 맨날 영어 시간이면 좋겠단다. 고민은 크고 구체적으로 살아나가는 일들은 게을러지기 일쑤다. 대안을 찾을 수 없고 즐겁게 지낼 궁리도 안 떠오른다. 결국 이런 페이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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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3-21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제가 고미 타로의 팬인 이유가 있다니까요. ㅎㅎ

Arch 2012-03-21 14:28   좋아요 0 | URL
^^ 산란한 맘을 이해해주는 어른들이 많았음 좋겠어요.

치니 2012-03-21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김규항 글을 그다지 잘 읽지 않는 이유를, 저기 든 예에서 깨달았다면, ㅎ 좀 과장이긴 하죠? 단순하게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 건 쉽지만, 경계에서 어그적거리는 느낌을 주지 않아서 시원하지만, 마음이 동하지는 않아요. 김규항 트위터 팔로우하다가 만 이유도 거기에 있는 거 같아요. (본문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얘기만 계속 하는군요, 제가. 아이고)

학원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고 안 보내는 채로 죽 아이를 키웠는데, 지금 이 글을 읽고 보니 저 자신 신념이 확고해서라기 보다는 아이가 먼저 학원 가고 싶다고 한 적이 없어서, 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학원 안 가도 재미있는 게 일상에 많으면 대부분의 아이는 만족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학원 = 경쟁, 이라는 식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학원에 가야만 아이가 즐겁다면야, 그 또한 아이 의사를 존중해줘야죠. 물론 우선 좋은 학원을 고르는 데 엄청난 힘이 들겠지만. ^-^;

Arch 2012-03-21 14:36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신념이 확고하고 의지력이 있는 인간이라면 고민하지 않았겠죠. 내가 잘 하는걸까, 혹시 고집을 피우는건 아닐까란 생각이 드니까 헷갈리고 그러거든요. 김규항의 확고함은 답답하지만 때론 이런 저런 이유로 합리화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도움이 되는 것 같고...

저도 한쪽으로 생각한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선행학습이나 교과를 알려주는 학원이 아닌 악기나 운동 학원엔 호의적이었구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건 아이란걸, 가끔 까먹어요. 학원을 고르는 데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는데서, 갑자기 피곤함이...^^

아, 진중권의 아이콘을 보는데 김규항씨 부분에서 스믈스믈 웃겼어요. 추천해준 치니님 고마워요. 다른 꼭지도 괜찮았거든요.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