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실 옆에 건물을 올렸다. 작년 9월쯤 공사를 시작해 후다닥 끝나버렸는데 10년이나 된 사무동 건물이나 최신식 건물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10년을 아울러 변화가 없는 건축물을 짓는 설계가에 비해 군더더기로 더욱 난감해진 설계에도 인부들은 꿋꿋했다. 한번씩 커피셔틀을 하며 벽돌이 아닌 빔을 세우고 콘크리트로 어떻게 건물을 짓는지 캐물어도 콧방귀를 껴주시는게 또 어찌나 쿨하시던지.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한산한 오후에는 고사를 올린다고 했다. 피아노를 치다가 시간 맞춰 갔더니 슬픈 표정의 돼지가 구멍마다 돈을 꽂고 있었다. 귀에 꽂음 뭐가 좋고 코에 꽂음 뭐가 좋고. 얼굴 모양을 유지하려고 살짝만 데쳐서 바로 먹을 수 없다는 돼지는 끝까지 슬픈 얼굴이었다. 돼지 머리 뒤쪽엔 뼈와 혈관 등등이 뒤엉켜 있었다.

 절 대표로 에이미를 내세우자 푼수떼기 누구누구는 자꾸 날 부추겨 절을 하라고 한다. 나는 대표가 있다, 절을 할 수 없는 몸이다라며 버텼다. 고사가 끝나고 음식을 먹자며 우르르 몰려갔다. 얼굴은 알지만 낯선 타부서 사람들과 주거니 받거니 머릿고기 누른 것을 김치에 싸서 꿀꺽꿀꺽 먹었다. 채식위주의 식생활은 이제 바야흐로 굳이 찾거나 사서 먹지는 않지만 있으면 먹는다주의로 바뀌는 것일까. 근무중 먹는 막걸리는 참말로 맛있었다. 나는 이렇게 나에게 관대하다.

 푼수떼기는 여기저기서 캬캬거리고 에이미는 뭘 만졌는지 모를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는다. 옆에 서 있는 남자의 세번째와 네번째 손가락 마디는 잘라져 있다. 남자는 연거푸 막걸리를 먹으며 내게 건배를 해왔다. 우린 친하지 않지만 쑥쓰럽지 않게 건배를 했다. 꽤 마신 듯 얼굴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왼쪽에 있던 남자는 a를 봤다며 어서 결혼을 하란 말을 한다. 그놈의 오지랖은 나이탓인지 에이미 말대로 다크호스여서 기발한 참견을 해대는건지 알 수가 없다. 취기가 올라 알딸딸해진다. 왼쪽 남자의 말쯤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홍조가 아니라 갱년기 유사 증상이라고 하는 열기가 다시금 얼굴에 꽉찼다. 맞은편 전면거울에 떼뚱한 표정으로 부지런히 입을 오물거리는 네모진 내가 있다. 나는 그 광경이 퍽 생경하다.

 가끔 잠자리에서 노력하지 않는데도 잠이 와버려 황망히 잠이 들때면 나는 이렇게 살겠구나, 이렇게 어렵지 않게 잠들고 개운치 않게 깨면서 이렇게 살겠구나 싶을 때가 있다. 막걸리가 먹고 싶은지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싶은건지 즐거운지 쓸쓸한건지 모른채 이렇게 살겠구나 싶은 순간 말이다.

 

* 일이 끝나고 막걸리와 김치 냄새를 풍기며 장구를 치러갔다. 장구를 치는 곳은 온갖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차 있다. 장구를 어깨에 매고 부지런히 쳤다. 알딸딸한 기운이 오랫동안 몸속에 남아 장단에 맞춰 피가 끓고 맥박이 뛴다. 나른하게 늘어졌던 기운들이 빠르고 느린 장단에 맞춰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같이 풍물을 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안 나오기 일쑤라 나름 총무인 나는 살짝 서운하고 속상하다. 한달째 같은 장단을 질리도록 연습했다. 그런데도 단순한 리듬과 몸의 움직임이 참 신났다. 타악기의 울림은 깊고 부지런하다. 박자를 맞추며 오금을 폈다 접었다. 처음은 어렵지만 언젠가 내 몸에 맞을 것이다.

 

* 집에 가면 똥오줌 잘 가리고 식구들을 미친듯이 반기는 까만 미니핀이 있다. 이 녀석의 곰살궂음이 좋기보단 살짝 부담스럽다. 예쁜 똥을 싸고 개냄새가 안 나게 하기 위해(아직까지 내가 아는 이유는 이런 것) 맛없어 보이는 사료를 먹고 추운 집에서 낮동안 혼자 지내야하는 녀석이 안쓰럽지만 안쓰러움이 애틋하고 예쁜 맘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까만 미니핀을 집에서 기르려고 한건 늦게까지 일하고 퇴근하는 a와 b에게 따뜻한 환대를 해주고 싶어서였다. 나랑 단 둘이 있을 때는 생각지 않았다. 단둘이 있을 때 이 녀석도 나도 어쩔줄 몰라 허둥지둥댄다. 새침한 까만 미니핀이었다면 나는 환대받기 위해 노력했을까.

 

* 지금 나는 우리 동네 까페에서 페이퍼를 쓰고 있다. 얼른 쓰고 집에 가야하는데 쓰고 싶은 말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쥐어짜는 느낌이다. 그럼 안 써야하는데 나는 기어코 페이퍼 하나를 써낸다. 빈번한 글은 글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조각조각 이어붙이고 검토하고 살을 붙여 멋진 글을 쓰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예전에 썼던 글을 보며 어떻게 이런 글이 나올 수 있었지라며 생뚱맞게 내 글에 감탄했던 글을 쓰고 싶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나의 최선이다. 일기장이 아닌 페이퍼에 쓰는 나의 최선이 이 글을 볼 누군가에게 전해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렇게 쓸 수 밖에 없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12-01-2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가 아치 동네 까페에서 쓴 페이퍼, 이맇게 쓸 수밖에 없던 페이퍼를 내가 읽었어요. 지금, 여기, 내 방에서요!

Arch 2012-01-30 10:15   좋아요 0 | URL
음, 다락방님이시구나. ^^

무스탕 2012-01-28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월의 마지막 금요일에 쓴 글을 전 1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읽었어요. 작년에 만들어서 냉동실에 넣어 뒀다가 생각나면 해동시켜 야곰야곰 먹어치우는 약식을 앞에 두고요. 건포도랑 밤이랑 대추랑 마구 씹혀요. 누른고기만큼 맛있어요 :)
난요, 장구보다 꽹과리가 치고 싶어요. 꽹과리 치는 법좀 배웠으면 좋겠어요.

다락방 2012-01-28 18:37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무스탕님의 이 댓글을 읽는데 사랑이 막 샘솟아요. 사랑합니다, 무스탕님.

Arch 2012-01-30 10:26   좋아요 0 | URL
저도 약과가 좋아요. 장구 장단을 어느 정도 익히면 꽹과리도 금방 익힐 수 있을거에요. 누른고기에는 막걸리라 좀 많이 먹어버렸죠.

다락방은^^

무스탕 2012-01-30 15:29   좋아요 0 | URL
어므낫~ 월요일부터 핑크빛 폴폴 날리는 고백이라뇨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