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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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자평이 안 써져서 본의 아니게 리뷰를 쓴다.

 

 데이빗 핀처가 만든 영화는 호불호가 불분명하다. 파이트 클럽과 세븐은 좋았지만 다른 영화는 준수한 정도였다. (그러고보니 세븐과 밀레니엄에선 성서가 등장한다-이걸 또 무슨 대단한 발견인양) 할리우드 감독들의 영화는 구분하기가 어렵다. 크리스토퍼 놀란과 가이 리치의 경우도 종종 헷갈려서 한번 분류를 해봤다.

 

 

 

 세 감독 다 그저 그런 영화를 만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자신만의 고유함도 찾기 힘들다. 가이 리치는 전작에선 자기 색깔이 느껴졌지만 셜록 홈즈에선 독특한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 할리우드란 시스템의 일률적인 영화 제작 때문인지 섬세한 결을 파악하지 못하는 감상자의 둔한 눈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후자쪽일 가능성이 많겠지만.

 

 영화를 볼 때 배우나 시나리오 작가, 스토리보다 감독을 보고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하는 편이다. (그렇다 이건 다 100자평이 안 써져서다. 밀레니엄을 말하면서 ‘나의 영화 선택관’ 따위까지 말할 필요는 없는데) 좋아하는 배우가 선택하는 작품이라면 기대되지만 그 영화를 보고 좋아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플란다스의 개의 봉준호, 킬리만자로의 오승욱(감독님 차기작은 언제 나오나요), 조용한 가족의 김지운. 초기작부터 그 감독을 좋아하면 ‘오늘’로 대사뿐인 영화를 만든 이정향이라도, ‘악마를 보았다’로 스타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걸 보여준 김지운이라도 몇 번씩 기회를 주게 되는 것이다.


 파이트 클럽을 본 기억이 너무 강렬해 밀레니엄을 봤는데 역시나 이 영화, 모호하다. 어톤먼트처럼 원작이 있는 영화의 경우 원작을 옮기는데 충실하다보니 컷이나 시점은 물론 이야기를 재구성하는데도 그다지 공을 들이지 않는 것 같다. 현란한 오프닝은 나름 신선했고 북구적인 분위기와 이야기 자체는 괜찮았지만 긴 런닝타임을 꽉채우기엔 부족했다. 긴장감은 늘어지고 퍼즐은 성글었다. 인물간의 관계맺음이나 전달하려는 주제도 모호했다. 조디악이나 소셜 네트워크처럼 살짝 김빠진 결론도 싱거웠다. 반전도 데이빗 핀처도 다니엘 크레이그도 기대에 못미쳤다.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로 스릴러를 만들기란 쉬운게 아니었다.


 헌데 루니 마라가 등장했다. 소셜 네트워크에선 존재감은 물론 나왔었는지 기억도 안 나던 그녀!


 미카엘과 리스베트를 병렬적으로 배치한 영화 초반, 리스베트는 차곡차곡 자신의 성격을 구축해나갔다. 반면 미카엘은 정의로운 기자라지만 영화상에선 그런 느낌이 그다지 살지 않았다. 매력적인 중년으로 보이긴 했지만 영화를 끌고 갈 만한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극적인 상황으로 그녀를 보여줬지만 그녀는 똑똑하고 본능적이란걸 느끼게 해줬다. 팜므파탈이나 남자 같은 여자 등등으로 여자를 규정짓는 말보다 리스베트는 그저 리스베트로 존재한다. 그 점이 탁월했다.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관계 설정은 단순하다. 사건의 실마리를 공유하는 것과 섹스. 리스베트가 나중에 후견인에게 좋은 친구가 생겼다고 했는데 미카엘의 어떤 모습 때문에 그렇게 느꼈는지 와닿진 않았다. 둘 사이는 마지막 장면에서까지 겉돌았다. 이야기의 큰 줄기를 다루느라 배우들은 내팽개쳐진 느낌? 하지만 데이빗 핀처 설렁설렁 인물을 다룬 연출과 다르게 리스베트는 전무후무한 인물이 되었다. 처음 섹스를 시작할 때의 건조하지만 민첩한 준비와 일에 열중하면서도 스웨터 안에 파고든 손을 보고 ‘손은 그대로 놔둬’라고 말하거나 자신이 섹스할 때 어떤게 좋은지를 아는 여자-배우라니. 그에 반해 뭐라고 뭐라고 하다가 내일 일찍 간다는 편집장의 말에 침실로 들어서고, 총알 맞아서 징징대는 미카엘은 얼마나 대조되는지. 성적인 면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면은 왜 날 이렇게 벅차오르게 하는걸까.


 밀레니엄 얘기를 해야하는데 나는 영화보다 리스베트가 등장하고 그녀가 말하고 몸을 움직이고 골똘히 뭔가에 빠져있는 모습에 대해 얘기하는게 더 좋다. 리스베트는 씩씩한 여자 주인공이 갖는 여성성 결핍에 대한 갈망이 없고(한국영화는 조폭 마누라처럼 이런걸 꼭 과도한 여성성이나 모성으로 풀어내려고 한다) 자신이 똑똑하단 자의식이 없다. 꽃중년이란 것 말고는 그 매력 알 수 없는 다니엘 크레이그와 친구로도 힘들겠다는걸 안 순간 선물을 내팽개쳐질 때는 맘이 아팠지만 부러 쿨함을 가장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면도 참 좋았다. 밝음을 조장하지 않고 센척 거드름을 피우지도 않는다. 리스베트는 그냥 리스베트라, 좋았다. 장르 문학은 별로지만 밀레니엄은 한번 읽어보고 싶다. 이게 다 리스베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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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1-17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건 김새는 얘기일지 혹은 스포일러일지 모르겠으나 책에서는 리스베트가 여성성 결핍을 느껴요. 갈망하고요. 그래서 3부에서는 여성적이기 위한(아니, 성숙하기 위한)변화를 시도하고 실행하죠. '과도한' 여성성을 추구하는건 결코 아니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그것이 '결핍'되어 있음을 계속 느끼고 있거든요. 물론 그 결핍으로 인해서 그녀가 남자와 혹은 여자와 사랑을 하는데 위축되거나 하지는 않지만 말예요.

아치의 영화감상 좋네요. 전 아직 이 영화를 볼지말지 결정도 못했지만 말예요. 아, 그리고 [밀레니엄]책은 아치가 별 셋 정도 준다에 만원 걸어요. ㅎㅎ

Forgettable. 2012-01-17 15:11   좋아요 0 | URL
나도 만원 ㅋ

Arch 2012-01-17 15:37   좋아요 0 | URL
이 만원쟁이들^^ 좀 더 걸어보아요~

그렇구나... 책을 보면 작가가 묘사하는 리스베트란 사람이 더 잘 보일 것 같은 기대를 했는데. 헌데 그런 갈망이라면 어떤건가, 한편으론 궁금하긴 해요. 별 셋, 별셋... 무슨 주문 같지만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보려구요. 독서를 통해 대체 여성성이란 무엇인가란 페이퍼로 써보고. 히~

다락방 2012-01-17 15:52   좋아요 0 | URL
리스베트가 여성성의 결핍을 느끼느냐 안느끼느냐와는 별개로 저는 리스베트가 좋아요. 리스베트의 능력이 부럽구요. 그리고 리스베트가 '용서'보다는 '응징'을 하는 쪽인것도 마음에 들어요. 그녀가 응징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반드시 응징이 필요한 대상들이기도 했구요.

Arch 2012-01-17 16:32   좋아요 0 | URL
응, 다락방 얘기 들으니까 그래요. 그간 봐온 드라마나 개그 프로에서 과도한 설정으로 여성성의 결핍을 큰 문제처럼 다루는게 별로여선지 리스베트가 그렇지 않은게 더 좋아보였어요. 다락방이 말한 정도가 나도 좋으다^^

용서란 것도 알고 보면 용서할만한 힘이 있는 사람이나 베풀 수 있는거란 얘기를 드라마에서 본적이 있어요. 리스베트는 용서란 이름으로 피해자의 입을 막아버리는 방식(신고했다면 응징할 수 없었겠죠)을 택하지 않고 자신만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죠.

다락방이 얘기를 해주니까 여성성이나 용서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