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교육을 받으며 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였다. 밥을 먹고 식판만 옮기면 되는데 교육 마지막 날에는 부대찌개를 먹는 바람에 밥공기며 반찬 그릇까지 여러 개가 놓여 있어 어떻게 치우나 싶었다. 담당자는 식당에 계신 분이 치운다고 하셨는데 영 께름칙했다. 음식점에서야 모르겠지만 여지껏 밥 먹은 사람들이 식탁을 치워오다가 식판이 아니라고 안 치우겠다는건 좀 그랬다. 좀 그렇고 말면 될 것을 나서서 치우기 시작했다. 일하시는 분이 혼자서 음식 준비에 치우기까지 다 해야하는데 같이 도와서 하면 일찍 끝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신나게 치우고 있는데 그냥 가려던 사람들이 어색하게 돕기 시작했다. ‘나는 이게 좋아서 치우는거에요.’라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돌이켜보니 자발적인 행동이라고 했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미지, 혹은 튀려는 수작은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곳 담당자에게 돈을 주고 치우는 것까지 맡겼으니 치울 필요가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같이 하면 일찍 끝나고 좋지 않냐며 계속 치우려고 했더니 나를 잘 아는 선생님이 말하셨다.
‘네가 이러는게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
장면2. 회사에는 새벽 4시에 나오셔서 12시간 일을 하고 퇴근을 하시는 청소 용역 선생님들이 계신다. 얼마 전 내가 맡은 곳의 청소를 그분들과 같이할 일이 생겼다. ‘치마도 못 입고 구부려서 일만 하게 생겼네’ 라며 하기 전부터 말이 많았던 나. 9시에 출근해서 걸레를 들고 갔는데 벌써 다 청소를 해놓으셨다. 하기도 전에 투정한게 죄송스러워 냉커피를 대접해드렸다. 안에 들어가서 편하게 드시라고 해도 한사코 마다하시던 분들은 내게 당신들 드시려던 슈크림 빵을 주었다.
두 번째 경우에도 같이 하면 빨리 할 수 있으니 기꺼이 함께 했어야 했다. 하지만 영악한 감각은 그 일은 해도 안 해도 티가 안 난다는걸 잽싸게 알아차렸다. 어떤 곳에서 누군가를 도와줘야 티가 나는지 정말 귀신처럼 잘 아는거다. 결국 위선이었던거다.
강준만의(그동안 선생님을 붙였더니 안 그럴려고 해도 자꾸 편애하는 맘이 새록새록 생겨나 그냥 이름만 적는다.) 새 책이 나왔다. 관심 있는 분야의 제목을 잘 뽑아내는데다 목차만 슬쩍 훑어봐도 마구 읽어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솜씨는 여전하다. 인물 비평을 확장해 ‘강남 좌파’의 자장 안으로 사람들을 그러모았다. 정치에 대한 얘기인데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재미있고, 동어반복인 느낌이 없지 않지만 여전히 승자독식, 지역차별, 정치에 대한 냉소와 열광의 이면에 대한 그만의 시각이 파닥파닥 살아있다.
나는 강남좌파가 아니고 될 일도 없지만 내가 떠는 위선을 접하다보니 이런 이중성은 어떻게 사이좋게 지내야할지 고민 된다. 남들의 이목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도와줌’을 선의인양 포장하는건 정말 아닌 것 같은데. 진정성은 희박하되 위선이라도 떨어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할까.
나는 그렇다치고 자칭 공인인 정치인들의 이중성은 어떻게 봐야할까. 내가 막연하게 바라는 것들을 강준만은 오랫동안 고민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심을 다해 얘기한다. 정당 민주주의가 좋지만 한국식 모델에 맞는걸 고민해야한다, 인물형 정치보다 정책과 정당이 추구하는걸 봐야한다, 검증되지 않은 정치 신인에게 몰빵으로 투표하는건 재고해봐야한다, 탈권위는 당사자가 권위를 내려놓았다고 말함으로써 인정되는게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시선(대통령 혹은 권력을 가진 사람의 친인척이니까 잘 보여야한다는 인식)이 바뀌어야 가능하다, 민주화 이후에도 독재 정치 시대의 마인드로 핍박받는 정치인 이미지를 지향하면 결국 대중과 괴리될 수 밖에 없다, 총론은 진보지만 각론은 보수일 수 밖에 없는 국민들의 이율배반은 어떻게 봐야할까 등등. 거친 정리지만 결국 그가 말하고 싶은건 ‘봐라, 내가 말한대로 됐지.’가 아니라 ‘왜 자꾸 정치에서 이런 구태를 반복하는지 알아보자. 이런 방법은 어떻겠나’란 현상 분석 내지는 대안 제시와 맞닿아있다.
그 동안 인물 비평으로 쌓은 만만치 않은 내공과 직설적이지만 화끈함 대신 성실함으로 쓰여진 이 책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놈현 관장사’에서 비롯된 유시민과 한겨레의 촌극은 한심했고 노무현 대통령과 남상국의 자살에 대한 부분은 대략적인 윤곽이 그려지는데도 여전히 진의가 (인터넷에 보니 진영에 따라 견해가 갈렸다.)의심스럽다. 뭐가 옳고 그른지,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선거를 치르고 (이런건 사비로 해야한다) 누구도 관심없었던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건다는 둥의 실소를 자아내는 쇼를 벌이고 있는 정치인은 좀 사라졌음 좋겠다는 바람 정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