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행, 나쁜 여행, 이상한 여행 - 론리플래닛 여행 에세이
돈 조지 지음, 이병렬 옮김 / 컬처그라퍼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여러 사람의 글을 모은 것 중에 괜찮은건 드물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개의 책만 해도 분별없거나 맥락 없이 뒤죽박죽이니까. 가끔 가다 특출 난 누군가의 글이 돋보이긴 하지만 한권의 책을 놓고 봤을 때는 여전히 뭔가 아쉬울 때가 많다. (한겨레 인터뷰 특강은 나름대로 선전하고, 현장감과 밀도감 있는 글이 맘에 들지만-비슷한 기획으로 프레시안이 기획한 불량사회와 그 적들도 있다.) 아무래도 쓰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출판사의 요청에 못 이겨 주제나 기획에 맞는 글을 써야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여러 명이 경험한 여행에 대한 책은 어떨까. 에세이를 좋아하고 그 중에서도 여행 책을 좋아하지만 괜찮은 여행 책은 드물다. 그래서 괜찮은 여행 책을 발견할 때마다 작고 예쁜 보물을 찾는 것 같다. 어떤 장르라고 말하기 애매한 여행 에세이류 중에서 괜찮은 책은 독자층이 얇을테고 그렇다면 ‘괜찮은 여행 책’을 찾아낼 확률도 다른 것보다 낮을거 아닌가. 그럼 나의 발견은 꽤 희소성 있지 않을까란 김칫국. 물론 이런 얘기는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세계적인 전문 여행 작가들과, 세계적인 여행가이드북 론리플래닛 홈페이지에서 후원한 여행 수기 공모 대회를 통해 응모한 작가들의 여행기를 엮은 책은 길 위의 모험과 우연한 사건들에 관한 이 31개의 여행담 속에는 쓴 웃음이 나는 것에서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이야기까지 모든 영역의 유머가 담겨 있다. 장소와 주제, 어조 모두 천차만별이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여행에서 얻는 큰 보물은 우리를 웃게 만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상황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알라딘 책소개 중>

 이 책엔 여행을 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만치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책을 처음 집었을땐 빌 브라이슨의 책을 읽을 때처럼 ‘얼마나 나를 웃기나 한번 보자’란 심보였다. 우연찮게 랜덤으로 펼친 챕터마다 재미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장소의 여행담을 들을 때마다 정말 이런 곳도 있나 싶어 자꾸 갈증이 났다. 하지만 이것도 얼마 못 갔다. 걔중엔 좀 지루한 글도 있고 어디에서 웃어야할지 모르겠는 부분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역시 여러 저자들의 글을 모은건 이러저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없을까.

 하지만 이런 부분들, 누군가의 경험과 스치듯 짧게 기록되는, 그래서 결국은 몇백개의 단어 중 하고 싶은 말은 한줄 정도 밖에 안 되는 여행서를 넘어서는 이런 구절 앞에선 속없이 기분이 좋아지고 만다. 

간단히 말해, 황량한 땅 끝 마을에 오면 나는 늘 섹스를 하고 싶다.

 남편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그는 노란 잡종개와 ‘수브마리노스(핫초콜릿의 일종)’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비밀은 작은 포일에 싸인 초콜릿에 있지.” 엉덩이를 땅에 대고 숨을 헐떡이며 듣는 개에게 남편은 강의를 하고 있었다. “뜨거운 우유에 초콜릿들을 넣고 아주 적당한 속도로 저어줘야 한단다.”

 “우리 방에 가서 할까?” 나는 물었다.

 남편과 개 둘 다 내 존재를 잊고 있었던 듯 깜짝 놀라며 내게 고개를 돌렸다. 개는 관심 없는 듯 낑낑댔다.

“그거 좋지.” 남편은 말했다. 남편에 대해 내가 늘 감탄하는 한 가지는 시간과 날씨에 구애 없이 이런 거라면 언제든 환영한다는 것이다.

 '빗나간 여행 계획은 당신을 어딘가로 데려가 사람들과 이어주고 어떤 상황으로 당신을 몰아간다. 그렇게 당신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수도 있다.<미국에서 살고 싶어요 중에서>' 로또 같은 여행을 기대하는걸까. 이번은 반반이었지만 아마 나는 앞으로도 한동안 여행 책을 읽을 것 같다.

  p.s 정말 이 책의 정체는 뭘까 싶어 다시 책을 뒤적이는데 앞에 있는 구절만큼 통통 튀는 누군가의 여행담이 넘쳐나는거다. 어떤 이야기는 좀 심심해, 저건 좀 더 밀어붙여야했어. 라고 했지만 여행병 걸려서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시 읽어도 재미있었다. 글이 아니라 그저 여행담으로는꽤 괜찮은 책이란 결론.
 
 이런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 총잡이와 함께하는 묻지마 프라하 시티투어, 사파리에서 사자가 아니라 코끼리와 잠을 잔 사연, 후지산에 오른 바보들, 화장실만으로도 여행기를 만들 수 있는 더그 랜스키의 씁쓸한 유머 챕터, 요리의 카오스 법칙, 원정대의 별명짓기 놀이, 히피 남자들과 함께 살다 위장결혼에서 진짜 결혼까지 하는 ‘미국에서 살고 싶어요’, 삼촌 덕분에 더없이 즐거운 버몬트 주 여행(그 장소를 잘 알고 좋아하는 사람과의 여행은 참 괜찮은 방식), 죽으라고 고생한 에티오피아 여행기, 펜과 양을 맞바꾼 사연, ‘카펫 말이’ 놀이(나도 해보고 싶어!), 말뿐인 바탐방의 쾌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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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7-20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다.
저 분홍색 인용구 읽을 때, 아치, 내 생각 나지 않았어요? 어쩐지 그랬을 것 같아요. 그런데 '뜨거운 우유에 초콜릿들을 넣고 아주 적당한 속도로 저어줘야'하는 그 음료, 내가 마셔 보고 싶어요. 마시자마자 눈을 감게 될, 그러니까 황홀함에 취하게 될 그런 음료가 될 것 같아서요. 아, 나는 여행책은 정말 별로라 인데, 아웃오브안중 인데, 이거 읽어볼까요, 말까요?

Arch 2011-07-20 17:58   좋아요 0 | URL
글을 다시 써야할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까 이 책에는 멋쩍은 듯 개에게 저런 조리법을 설명해주는 남자를 보는 듯한 몇몇 풍경이 있거든요. 그걸 다 살리지 못했어요.
의외로 다락방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해남이 생각났달까.(유먼데..ㅡ,.ㅜ;)

나는 다락방을 좋아하지만 우리 취향은 그리 맞지 않아요. 그래서 난 추천 못하겠어요. 게다가 이번건 반반이니까 더더욱. 그렇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는 어떻게 보면 단편소설 같아요. 그 점은 추천. 추천 역시 반반? ^^

다락방 2011-07-20 18:18   좋아요 0 | URL
나는 '그거 좋지'라고 말하는 남자가 좋아요.

승주나무 2011-08-0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정체를 모르는 책은 무서워서 잘 안 읽게 되는데, 아치님의 모험심이 항상 부럽습니다. 예전부터...

Arch 2011-08-05 10:57   좋아요 0 | URL
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