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과 ‘시크릿 가든’ 김은숙 추천사에 빨간 표지, 한유주의 번역까지 곁들여졌다.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든 건 김은숙이 이 책이 스펙타클하며 기존의 작법 책과 다르다고 강조한 부분 때문이었다. 읽은지 얼마 안 돼 정말 괜찮은 책인지는 모르겠다. 작법 책을 읽는 것보다 직접 쓰는게 더 중요하다는 통설만 놓고 봐도 그렇다. 그렇지만 이런 부분은 참 좋다.

재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구나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당신은 자신의 재능을 확신해야 한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지 않다. (이 나이에 뭐가 되고 싶다 이러는게 주책맞다는거 안다.) 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말하는 능력이 없다. 아니, 흥미가 없다. 나는 직접적으로 얘기하는데 익숙하고 분위기나 상황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것보다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글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만약에 본격적으로 글을 쓴다면 이런 책을 내고 싶다.

 서평을 쓰는 것도 고심하는 주제에 패디먼 같은 맘과 정성을 들여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원래 목표는 크게 잡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기계발서 안 읽는다면서 하는 소리하고는) 의학과 사람 사이의 관계, 문화적인 차이까지. 내가 좋아하는 요소는 다 들어 있다. 그리고 앤 패디먼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몽족의 아이, 리아가 미국에서 치료를 받는 과정을 통해 현대의학과 다른 문화가 만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리아의 나라>에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가란 질문만 있는건 아니다. 다른 문화는 신념이나 그 사회의 전통, 민족의 기질과 관련된 문제인데도 상대방 문화의 가치를 처음부터 평가 해버려 서로 소통을 할 수 없는 부분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몽족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다.

<리아의 나라>는 몽족 예찬이나 현대의학의 이면을 파헤치는 것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객관화된 시선을 담보로 한다고 할 때 객관화의 기준조차 때론 모호할 때가 있다. 객관화란 말은 주관적인 주장을 해놓고 그 주장을 방어하려할 때 쓰는 말 같다. <리아의 나라>가 객관적인 전달 대신 이해 가능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수 있었던건 이 책의 저자인 앤 패디먼의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 덕분이었다.

예컨대 이런 부분

몽족은 차를 몰고 친척들을 보러 가야하기 때문에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부정 행위를 해서라도 면허증을 따려고 한다.

  그날 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능력이 다른’이란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그것은 진보적인 기자들 사이에 한때 유행하던 표현으로, ‘장애를 가진’이란 말의 대용어였다. 나는 그 말이 완곡하면서 겸손한 체하는 표현 같아 늘 싫었다. 그런데 그날 문득 그 말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전에 나는 온종일 몽족이 윤리적인가 아닌가를 놓고 이리저리 재어보고 있었고, 드디어 늦은 밤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들은 ‘윤리가 다른’ 이들이었던 것이다!

 결론은 얼마나 슬프고 아름다운지. (급 마무리!)

 어떤 글을 쓰고 싶나에서 시작한 페이퍼인데 <리아의 나라> 적극 홍보 글이 되고 말았다. 리뷰를 꼭 쓰고 싶어서 책 귀퉁이를 수십 개는 접어놨는데 정리가 잘 안 된다. 리뷰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예전부터 말했지만 나는 잡글을 쓰고 싶다. 소소한 일상, 일상의 편린, 오늘의 단상. 이런 거창한 것 말고 남들하고 같은걸 봐도 나만 달리 볼 수 있는 것, 남들과 다른 경험을 했다면 경험 자체보다는 그런 부분이 어떻게 다른 경험들과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 쓰고 싶다. 시시껄렁한 글을 계속 쓰고 있지만 계속 이렇게 쓸 것 같지만 우선 꿈은 크게 갖는거다. 자기 계발서는 짭쪼름한 의욕을 심어준다는 면에서 때때로 쓸만하다는걸 이젠 고백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작가에게’ 보내는 ‘개코 원숭이도 될 수 있어’ 부분을 소개한다.  

 악인도 작가가 될 수 있다면, 미친 사람도 작가가 될 수 있고, 개코 원숭이도 작가가 될 수 있으며, 슬러지나 아메바도 작가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 작가로 남아 있는 것 그것은 기나긴 여정이 될 것이다. (할런 엘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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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5-17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재능을 가지고 있을까요?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재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요? 아니면 재능이 있는데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걸까요? 재능이란 것에 대해서 저는 참 회의적이에요, 아치님.

앤 패디먼의 [리아의 나라]는 제가 좋아할 만한 책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앤 패디먼 이라고 하니까 조금 읽어보고 싶기도 하고. 흐음.

Arch 2011-05-17 09:53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긴 해요. 그렇지만 저런 말을 들으면 어쩌면 확신이 문제일지 몰라, 막 이렇게 되고. 변덕이 죽 끓듯 그래져요. 알랭 드 보통도 그런 얘기를 했어요. 재능이 없다고 말하는 대신 그만큼 해봤는지 자신에게 물어야한다고. 이게 난 자꾸 안 해서 안 되는거야 이러니까 정말 재능이 없는데도 자신을 희망 고문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리아의 나라>는 다락방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전 모처럼 책에 빠져들었어요.

pjy 2011-05-20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계발서는 짭쪼름한 의욕을 심어준다는 면에서 때때로 쓸만하다는걸....
리뷰가 멋지다고 꼭 그책이 땡기는건 아닙니다ㅋ 저는 자기 계발서가 아주 가끔 쓸만하다고 느끼는 1人 이라서요^^;

Arch 2011-05-20 10:42   좋아요 0 | URL
리아의 나라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음 좋겠어요. 전 이 책을 제 나름대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려구요. 올해 출간된 책이 아니라 올해 내가 읽은 책이란 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