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푼젤 - Tangle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어제 라푼젤을 봤다. 한겨레 영화평이 좋아서 기대를 했는데 예상만큼 괜찮았다. 맨날 보던 디즈니표 뮤지컬, 동물들 한둘쯤 의인화시켜서 역할을 맡긴 것, 어떻게든 해피엔딩이란 구태의연함은 여전했다. 그렇지만 라푼젤이 머리카락으로 온갖 ‘짓’을 다 하고, 꿈에 대한 망설임이나 막연함과 설렘을 얘기하는 것, 예쁘기만한 공주님이 나오지 않은 점은 썩 맘에 들었다. 맨디 무어가 또박또박 발음해주는 영어 대사에 그만, 영어 공부를 다시 하고 싶은 맘이 생긴 것까지도 맘에 들었다. 그런데 단 하나 걸리는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머리카락 타래에 걸려 죽은 여자 때문이었다.

 그 여자는 젊어지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마법의 꽃을 보고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젊음을 찾곤 했다. 그런데 왕비가 아프다며 그 꽃을 꺾어 가버린다. 꽃이 누구 소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유하고 있는 사람은 확실히 여자였다. 그래도 여자는 화를 내거나 마법을 부리며 고약한 짓을 하지 않았다. 대신 꽃 달인 물을 먹고 자란 아이의 머리카락을 조금만 잘라오려고 했다. 그런데 웬걸, 머리카락이 잘리는 순간 마법이 사라지는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 선 여자는 아이를 납치해 자신의 딸로 삼고 머리카락의 마법을 유지시킨다.

 어느새 18살이 된 여자의 딸 ‘꽃’은 자신의 생일 때마다 달라지는 별자리를 직접 보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엄마인 여자에게 바깥 세상에 나가고 싶다고 부탁 하지만 번번히 거절당하고 만다. 우연히 만난 남자와 모험을 떠나게 된 딸은 엄마의 말과 자신의 이상 사이에서 갈팡질팡 한다. 여자는 딸을 찾아내 남자와 딸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종국에는 남자를 칼로 찌른다. 딸은 여자에게 칼에 찔린 그를 머리카락으로 살리는 대신 자신은 감금당하겠다고 한다. 딸이 그를 치료하려는 순간, 그는 딸의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죽음에 이른다. 이 광경에 놀란 여자는 뒷걸음치다 머리카락에 걸려 성에서 떨어진다.

 여자가 남자를 칼로 찌르고 거짓말을 일삼으며 자신의 욕심 때문에 딸의 자유를 침해한건 명백한 잘못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꽃을 빼앗겨서 안 됐다는 위로나 (그 꽃으로 젊어지는건 그녀의 꿈이었는데!) 그동안 감금은 했을지언정 딸을 키운 것에 대한 고마움, 엄마로 알고 있었던 사람의 죽음에 대한 슬픔 같은 것이 이 영화에는 없다. 애니매이션에서 왜 그런걸 기대하냐고 물으면 할말은 없지만. 물론 납치해서 감금한채 키운게 잘했다는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자신을 키워준 엄마에게 참 너무했다 싶다.

 사람들은 왜 젊어지고 싶을까. (난데없는 화제전환) 아마도 매력적이고 싶기 때문이지 않을까. 만약에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매력적인 여성이 현명하고 지적인 사람, 주관이 분명하지만 자기 확신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사람, 취향이 고급스럽다기보다 재치 있고 독특한 사람, 나이에 상관없이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그래도 여자가 -원래 동화에선 마녀(상추 좀 훔쳤다고 아이를 납치하다니)- 성을 지키는 사람들을 뚫고 아이를 납치해오는 대담무쌍한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사람들의 사회적인 취향인 호불호가 아니라 자기 만족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랬을지 모르지만. 

 디즈니 영화의 여성상이 조금 변했나 싶었는데 결국 모험은 하되 그 속에서 여성이 맡고 있는 역할은 어떻다란 공식은 뻔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소통을 이끄는 역할(무섭게 생긴 사람들의 꿈을 끌어내는 -여자인-라푼젤)이란 고정관념을 사심 가득하게 유포한단 생각마저 든다. 물론 가만히 있다가 왕자가 키스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기존의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꽤나 멀리 간건 인정한다. 게다가 라푼젤은 신나고 현명하며 열정이 가득한 ‘Flower' 이야기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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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1-02-25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전 결말이 좋았어요! 설마 그럴 줄이야??!!! 자기가 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인걸 알면서도 ㅠㅠㅠㅠㅠ
디즈니도 많이 변하고 있죠??
빤한건 정말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소소한 것들이 파격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이번 여행가서 이 영화 봤는데.. 친구랑 ㅋㅋㅋㅋㅋ 저 엄마 좋다 좋다 하면서 ㅋㅋ 저 패션과 머리스타일. 성격 모두 다 좋다고;;;; 저렇게 살아야지 했는데. 결국은..

악당들이 꿈에 대해서 노래부를 땐 저도 어쩐지 눈물까지 나더라구요.

Arch 2011-02-25 16:04   좋아요 0 | URL
난 깜짝 놀랐어요. 머리를 자르면 마법이 사라진다는걸 알고는 있었는데 남자가 그럴줄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 캐릭터는 좀 흐릿했어요.

아, '여자'를 좋아했구나. 그러니깐요. 막 사악하고 못되지 않았는데. 성격도 오락가락하는게 현실감 있고 좋았는데^^

뽀가 울 것 같았어요.

양철나무꾼 2011-03-19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리뷰 찬찬히 읽다가 생각났어요.
Arch님의 옥찌들은 잘 있나요?^^

Arch 2011-03-21 09:05   좋아요 0 | URL
옥찌들이랑 같이 안 봤는데^^
잘 있죠, 녀석들은 옥수수처럼 자라고 있어요